“지휘는 통제보단 소통...연주자·음악과 교감해야”

2023. 5. 1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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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슈텐츠 지휘 ‘마스터클래스’
국내외 대표 차세대 지휘자 3인 참석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3색 해석
리허설·콩쿠르 못잖은 프로무대 열기
“세계적 마에스트로와의 경험 놀라워”
하나의 곡으로 세 명의 지휘자가 연주한 마스터 클래스는 지휘자들의 각기 다른 해석과 접근방식, 지휘자로의 역량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의 지휘 철학과 가치관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우리 모두 멜로디를 들어야 해요. 바바바바 바바바~”

스페인 출신의 지휘자 프란시스코 발레로테리바스는 연주를 멈추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멜로디를 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곤 이내 다시 시작. “26번 해볼게요!” 곧이어 왼손으로 호른에 신호를 보낸다. 그제야 직전엔 흘려보낸 그 멜로디, ‘바바바바 바바바~’가 귀에 들어왔다.

시종일관 여유가 넘쳤다. 불규칙한 리듬과 불협화음, 빽빽하게 채워진 음표들이 재미난 듯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번졌다. 나비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유연한 손짓을 만들더니, 관악기의 스산한 소리가 이어질 땐 이내 눈빛이 돌변한다. 포디움에 선 지휘자는 ‘마스터 클래스’를 ‘리허설’로 바꿔놨다.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습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58)는 세 명의 젊은 지휘자와의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했다. 서울시향 정기연주회 지휘(5월 18~19일, 예술의전당)를 위해 내한한 슈텐츠는 바쁜 일정 와중에도 이번 마스터클래스를 무척이나 고대했다. 그는 “모든 마에스트라, 마에스트로는 저마다 다르고, 모든 지휘자는 특별하다”며 “지휘 마스터클래스에선 지휘자들의 이런 특별함을 더 공고하게 하고, 나의 지휘 스타일과 모든 경험을 나눠주고자 했다”고 귀띔했다.

▶ 쟁쟁한 참가자들...“리허설 테크닉과 음악성 배우고 싶어”= 참가자는 총 세 명. 이들의 이력이 화려하다. 세계 유수의 악단을 객원 지휘, 이미 세계 무대에 서고 있는 차세대 지휘자들이다. 이번 서울시향의 마스터 클래스는 나이 제한을 두지 않았다. 참가자들이 제출한 이력과 영상 등을 통해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쳐 실력 위주의 지휘자로 선발했다.

세 사람이 마스터클래스에 지원한 데에는 세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자리했다. ▷지휘자(마르쿠스 슈텐츠) ▷악단(서울시향) ▷지휘곡(‘봄의 제전’) 때문이다.

최다정은 “한국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라는 어려운 곡을 지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점에서 지원하게 됐다”며 “특히 슈텐츠 지휘자는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고 음악 색깔이 뚜렷한 훌륭한 마에스트로다. 뛰어난 리허설 테크닉과 음악의 에너지를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명의 해외 참가자들은 오직 슈텐츠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석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않고 날아왔다. 대만 출신으로 현재 파리에 거주 중인 브라이언 리아오는 “지휘자로서 끊임없이 배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슈텐츠는 오케스트라는 물론 오페라 연주에 있어서도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그의 음악성을 배우고 싶다”고 강조했다. 리아오는 프랑스 릴 국립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를 역임했다.

▶ 입으로 노래하며 소통...“대박”한 마디에 웃음바다= 세 명의 참가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각각 30분.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한 분야의 전문가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슈텐츠는 악단의 자리로 내려와 ‘단원’의 입장이자, ‘음악감독’의 시선으로 차세대 지휘자들이 연주하는 ‘봄의 제전’에 집중했다. 세 지휘자를 마주하며 그는 지휘자로의 음악적 테크닉과 이해, 소통방식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첫 주자는 유일한 한국인 참가자 최다정. 그가 연주할 때 슈텐츠는 가까이 다가서 지켜보고, 일대일 강습도 실시간으로 진행했다. 손을 움켜쥐다가 놓는 제스처를 취하며 음악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을 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최다정은 “슈텐츠 지휘자에게 ‘봄의 제전’은 한순간도 리듬을 놓지 말고 끝까지 지휘자가 역동적인 비트를 보여줘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고 말했다. 슈텐츠는 프로 오케스트라와의 리허설 진행 과정에서 “지휘자가 꼭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지휘자는 정확하고 완벽한 청력과 예리한 감각으로 모든 사람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며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듣는 사람이자 동기부여를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언급했다.

두 번째 참가자인 브라이언 리아오는 음악적 교감은 물론 소통에도 능했다. 유창한 한국어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저는 브라이언입니다”라고 인사하며 연주를 시작했고, 연주를 마칠 때마다 ‘땡큐 베리 머치’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악기 별로 중요한 부분이 이어질 땐, 리아오의 시선도 같은 방향을 향했다. 입으로 선율을 노래하며 단원을 이끄는 모습도 생동감이 넘쳤다. 원하는 연주를 마치고선 “대박”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발레로테리바스의 무대는 자신만의 음악색을 만들어온 지휘자의 역량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를 역임한 그는 로린 마젤에게 캐슬턴 페스티벌 초대받은 촉망받는 지휘자다. 2021년엔 KBS교향악단을 객원지휘한 경험도 있다. 단원들과 섞여 앉은 슈텐츠는 그의 리허설 과정을 끊지 않고, 유심히 지켜봤다. 주어진 시간을 확인하며 30분을 모두 쓴 뒤에는 “오, 예스!”라고 말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박수를 보냈다. 발레로테리바스는 “슈텐츠 지휘자에게 오케스트라 지휘를 위한 악보의 핵심적인 아이디어와 음악적 아이디어를 효율적이고 간결하게 오케스트라에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많은 팁을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 “지휘에선 통제보단 소통...연주자·음악과의 교감 중요”=이날의 마스터 클래스는 세 지휘자의 ‘봄의 제전’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과 접근방식, 지휘자로의 역량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본격적인 피드백은 각자에게 주어진 30분 뒤에 이어졌다. 이 시간엔 슈텐츠의 지휘 철학을 만날 수 있었다. 음악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그는 공연에서도 지휘봉 없이 무대에 선다. ‘지적과 통제’보다는 ‘소통’을 더 강조하는 마에스트로다. 슈텐츠는 “지휘를 할 땐 오케스트라 연주자와의 교감, 동시에 음악과의 교감이 중요하다. 이 두 가지는 실시간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마스터클래스를 마친 참가자들은 “슈텐츠와 같은 저명하고 훌륭한 마에스트로와 함께 한 것은 놀라운 경험”이라고 입을 모았다. 리아오는 “슈텐츠 지휘자의 예리한 관찰력과 세심한 주의력에 감탄했다. 참가자들이 지휘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통찰력 있는 피드백을 줬다”며 감탄했다.

서울시향과의 만남도 좋은 기억이 됐다. 최다정은 “모든 지휘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지휘자의 요구를 폭넓게 수용한다”며 “굉장히 젊고 에너지가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춘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발레로테리바스 역시 “유연하면서도 음악적 요구가 굉장히 높다. 수준 높은 실력의 악단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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