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없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 초읽기… ‘중계기관’ 지정은 숙제
심평원·보험개발원 등 중계기관 지정 문제 남아
의료계, 비급여 데이터 축적·통제 우려로 반발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의 번거로운 보험금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려는 이른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 국회에서 14년 만에 입법 7부 능선을 넘어서면서, 최종 통과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그동안 가장 큰 쟁점이던 ‘청구 전문 중계기관’ 지정 문제가 남아있다. 중계기관 지정을 두고 의료계가 민감하게 반응하며 입법을 반대해 왔는데, 이번에 국회는 이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면서 정부에 숙제를 넘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1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가 질병, 상해로 입원하거나 통원 치료를 받았을 때 실제 부담한 의료비 일부를 보험회사가 보상하는 보험금 청구 절차를 전자 방식으로 개선하는 것을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전날 오후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이 국회에 오른 지 14년 만이다. 최종 통과까지 정무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 국회 본회의까지 3개 관문이 남아 있다. 보험업계 등 시장에선 큰 진전이 없었던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최종 통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개정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의료기관이 바로 보험사로 관련 서류를 전송할 수 있게 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실손보험 계약자나 피보험자가 요청하면 병·의원 등 요양기관은 진료비 계산서 등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전산 시스템을 통해 전자적인 방식으로 전문중계기관(전송대행기관)을 통해 보험사에 전달하게 된다.
현재 실손보험 계약자(환자)는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뒤 보험금을 청구할 때는 의료기관에 방문해 직접 종이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 팩스로 보내거나 여러 장의 서류 사진을 일일이 찍어 보험사 애플리케이션 등에 올려 청구하는데, 이런 청구 절차와 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쟁점인 ‘청구 중계기관’ 지정 문제가 남아 있다. 이번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는 실손보험 청구 전문중계기관(전송대행기관)을 공공성·보안성·전문성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여지를 남겨뒀다.
공공성·보안성·전문성 등을 고려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둬야 한다고 국회 일부 의원과 보험업계 등은 주장한다. 심평원은 진료비 심사와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 업무를 하는 준정부기관이다.
반면, 의료계의 반발이 크다. 앞서 대한의사협회는 “공공기관인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해 의료기관에 보험사로의 청구를 강제화하는 것에 반대한다”면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에 대해 ‘조건부 찬성’ 입장을 표했다. 의료계는 환자 개인의 의료 정보 유출 우려와 전산 시스템 구축 비용 부담 등을 반대 이유로 내세웠다.
여기엔 공공기관인 심평원이 중계기관을 맡게 되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제도권 밖 비급여 의료항목의 의료비와 진료정보 등 주요 데이터가 공개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얘기다. 국회와 보험업계에서는 심평원을 전문중계기관으로 해 보험금 인상 부담을 키우는 의료비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 있다.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을 의식해 국회에서 대안으로 나온 게 ‘보험개발원’을 중계기관으로 두는 것이었는데, 최근 의료계는 “보험개발원에 수집된 청구자료를 심평원으로 넘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다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민간보험사가 환자 진료기록 데이터를 축적해 보험가입 거절 및 보험금 지급 기준을 강화해 거절 근거를 만들 것이란 의심도 제기됐다.
국회 본회의 최종 통과까지 복잡한 이해관계 속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와 중계기관 지정 해법을 찾아야 할 과제가 남아있는 셈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이뤄지면 의료 및 보험 시장에도 여러 변화가 예상된다. 신진창 금융위원회 금융산업국장은 지난달 열린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실손보험 가입자가 불편한 절차 때문에 청구하지 않는 보험금이 연간 2000억~3000억원으로 추정된다”면서 “청구 절차가 간소화되면 국민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로선 보험금 지급 행정적 부담이 과다한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실손보험 청구가 간편해진 영향으로 보험사들의 손해율이 오르고 그 영향으로 결국 보험료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 손해율이란 보험사가 거둬들인 보험료 가운데 보험금으로 지출한 금액의 비중을 뜻한다. 보험사들의 손해율 상승은 보험료 인상 요인이다. 이성림 성균관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청구 간소화에 따른 보험 청구 증가가 보험료 할증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소비자의 현명한 보험 청구 판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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