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간호’ 문제는 해결할 필요가 없는 건가
(지디넷코리아=이균성 논설위원)국회는 간호법을 제정하고 대통령은 이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은 이와 관련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국민 건강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며 “정치·외교도, 경제·산업 정책도 모두 국민 건강 앞에서는 후순위”라고 말했다고 한다. 말인즉슨 옳다. 그런데 이 말이 진실로 옳으려면 간호법 제정이 국민 건강에 해롭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간호법은 국민 건강에 해로운 법인가.
대통령은 그렇게 판단한 듯하다.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면서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의견에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간호법 제정 찬반 논란 과정에서 일반 국민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쟁점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간호법을 놓고 패를 나눠 다투고 있는 줄은 알았는데 정확히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를 아는 데 한참 걸렸다. 기껏해야 이권싸움이려니 싶었는데, 그 이권싸움에 여와 야가 뒤엉켜 싸우고, 대통령이 거부권까지 행사하니, 사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최대 쟁점은 ‘지역사회 간호’라는 새로운 표현이었다. 이 표현이 왜 갈등을 일으키는 지 국민들도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대통령에 의해 거부된 간호법 1조에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조항이 있다. ‘지역사회’라는 단어는 이 법에 한 번 더 나온다. 의료법에는 없던 표현이다. 그런데 국민이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를 받게 한다는 데 뭐가 문제일까. 오히려 장려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말로만 보자면 그리 생각하는 게 상식이다.
의사들한테는 그런데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의료행위는 의사의 지도하에 의료기관 안에서만 행해져야 한다는 게 의사들 생각이다. 그런데 법 조항에 ‘의료기관’과 함께 ‘지역사회’를 명시함으로써 의료기관 밖에서도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사들은 특히 이 조항을 근거로 간호사들이 의사 없이 개원도 가능해질 상황을 우려한다. 그렇게 될 경우 밥그릇을 뺏길 수도 있는 탓이다.
의사들의 우려와 주장엔 그러나 무리가 있다. 지역사회 표현만으로 간호사가 의사 없이 개원하는 것은 현행 의료법 33조에 의해 불법이기 때문이다. 간호법 제정안 10조2항에서도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간호사의 업무에 대해 ‘의료법에 따른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우려하는 일은 의료법과 간호법에 의해 막혀있는 것.
간호법이 ‘지역사회 간호’라는 새로운 표현을 제시한 것은 변화된 시대를 반영하려는 목적 때문으로 보인다.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질환도 변하고 있다. 특히 만성질환이 늘고 있다. 의료기관을 방문해 의사의 진료나 시술을 받지 않아도 간호나 돌봄은 꼭 필요한 환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의 건강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고,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게 ‘지역사회 간호’인 듯하다.
문제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직접 경험했듯 간호 인력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그 노동의 필요성에 비해 처우가 박하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신규 간호 인력의 40~50%가 1~2년 내에 이직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국민 건강이 위태롭지 않겠는가. 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뽑는 인원은 제한해놓고, 간호사는 밥 먹듯 직장을 때려치우는 게 현실이라면, 뭔가 개선이 필요하지 않나.
이 법을 일러 굳이 ‘간호사법’이 아니라 ‘간호법’이라고 한 까닭은 간호사의 이권만을 챙기려는 법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간호 업무를 발전시키려는 대의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간호라는 직역(職域)은 의료의 일부로 시대가 변하면서 진료와 시술을 중심으로 한 의사의 직역과 연계되기도 하지만 때론 독립적인 상황도 잦아졌다는 뜻이고 이 부분을 법이 반영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 간호’는 시대 변화에 따라 국민 모두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화두이지만 이 문제를 푸는 데 깊은 토론보다는 이권다툼이라는 갈등으로만 포장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라는 대통령의 표현 또한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란 뒤 이은 발언과 연결돼 사안을 한 쪽에서만 본 측면이 있는 듯하다. ‘지역사회 간호’에 대한 해법은 안 보이는 탓이다.
이균성 논설위원(sereno@zdnet.co.kr)
Copyright © 지디넷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