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간호법 후폭풍 대응전략,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갈라치기’

문광호·조문희 기자 2023. 5. 1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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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조무사 고등교육 기회 박탈
윤 대통령이 약속한 법과 다르다”
이철규, 사실과 다른 ‘억지 주장’
대한간호협회 유튜브 갈무리.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이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 공약을 파기했다는 비판과 관련해 야당이 통과시킨 간호법이 윤 대통령이 약속한 간호법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정상적인 생각을 한다면 간호사들의 권익을 신장시키기 위해서 그보다 약자인 간호조무사들의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겠다는 약속을 할 수 있겠나”라고 반박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갈라치기로 거부권 행사에 대한 비판 여론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간호법이 간호조무사들의 고등교육을 박탈하는 법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총장은 이날 KBS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간호협회를 방문했을 때 거기서 말하는 간호법과 현재 간호법은 전혀 별개”라며 공약 파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대선 후보로 간호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간호법 제정 등 내용이 담긴 ‘간호협회 정책제안’ 서류를 전달받으며 “간호협회의 숙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대선 캠프 정책본부장이었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1월24일 “이건(간호법은) (윤석열) 후보께서 직접 약속을 하셨다”고 확인했다. 윤 대통령이 당시 간호법의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았으니 이 총장 주장의 사실 여부를 밝히기는 어렵다. 다만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이 간호사들의 숙원사업을 이뤄주겠다는 약속을 파기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간호법 제정안 재의요구서에서 “간호법안은 특정 직역을 차별하는 법안”이라며 “간호조무사에 대해 학력 상한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총장은 이에 대해 “간호사들이 새로운 특권을 신설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라며 “간호사의 처우 개선은 보장하되 간호법에 간호조무사의 권익을 박탈하고 억제하는 규정을 넣을 수 있겠나. 정부로서는 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되면 간호조무사 또는 요양보호사분들이 가만히 있겠나”라며 “간호조무사의 학력 제한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장예찬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SBS라디오에서 “(거부권 행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간호조무사 학력상한제 같은 이상한 기준을 두는 것은 간호조무사들의 처우에 해가 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도 BBS라디오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의료 직역 간 협업 과정을 완전히 갈등으로 만들어 버리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이 같은 주장은 간호사와 다른 직역 간 갈등을 이유로 거부권 행사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6일 간호법 관련 국무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간호법안의 경우 간호조무 관련 학원과 특성화고를 졸업한 사람에게만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하고 있는 등 최고 학력을 규정하고 있는 방식으로 다른 직역에서는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간호조무사와의 갈등을 강조하며 거부권 행사를 옹호했다.

간호법이 간호조무사의 학력을 제한한다는 주장은 사실과는 다르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간호법이 간호조무사의 자격 기준을 고졸 이하로 제한하는 학력 차별적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지난 15일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자료에서 2022년 간호조무사 4만여 명의 응시자 중 대학 이상 학력 소지자는 1만6198명으로 40% 정도다. 이 중 1만4338명이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앞서 간호사 출신인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3일 입장문을 내고 “보건복지부는 직역 간 갈등을 부추기는 언행 멈춰야 한다”며 “간호법의 간호조무사 응시자격은 2012년 보건복지부가 직접 만든 것이고, 2015년 의료법 개정을 통해 지금까지 유지돼왔다”고 비판했다.

다만 학력 조항으로 현행 의료법 중 관련 내용을 그대로 옮겨오면서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간호조무 관련 학원과 특성화고 졸업을 응시 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자격을 고졸로 제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간호조무사들의 주장이다. 의사들이 의료법으로 간호사들을 차별하듯이 간호사들이 간호법으로 간호조무사들을 다시 차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간호협회가 의료법에서 관련 조항을 그대로 가져온 것은 전문대 간호조무과가 생기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대에 간호학과가 있는 상황에서 간호조무과가 생기면 의료 현장에서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간호협회의 주장이다. 실제 간호조무사의 학력 규정은 지난 2012년 한 전문대학에 간호조무과가 생긴 것을 계기로 논란이 된 바 있다. 특성화고와 학원 측이 반발했고 현행 규정이 유지됐다.

국회에서 다시 논의하게 된 간호법은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간호법 재의요구한 것을 더불어민주당이 (본회의) 표결에 부친다면 당론으로 부결시키기로 하는 안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재의요구된 법안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확정된다. 국민의힘 의원 수가 115명으로 모두 반대 표를 던지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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