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서류' 안 떼도 된다…실손청구간소화 도입 초읽기
기사내용 요약
진료비영수증 요청, 사진 제출 안 해도 전산 통해 보험금 청구
보험개발원, 중계기관 유력…"올해 본회의 통과 시 2025년 서비스 이용 가능할 것"
[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실손보험청구간소화(전산화)를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14년 만에 도입 초읽기에 들어갔다. 해당 제도가 도입되면 '종이서류' 없이 병원에 요청하는 것만으로 전산을 통해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그간 불편함에 미뤄졌던 연간 3000억원 상당의 소액 보험금이 제 주인을 찾게 될 것으로 보인다.
17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전날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는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전문 중계기관에 위탁해 청구 과정을 전산화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실손보험청구간소화는 2009년 국회에 올랐지만 개인정보 유출 등의 악용을 주장하는 의료업계의 반발로 14년째 국회에서 공전했다.
개정안은 향후 정무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를 차례로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국정과제고, 개정에 여야가 합의한 만큼 본회의까지 최종 통과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크다.
병원에 '종이서류' 요청해 사진 찍어 보험사에 안 보내도 돼
하지만 현재 보험 소비자들은 실손보험금 청구를 위해 병원에서 종이서류를 따로 발급한 후 모바일앱·팩스·이메일·우편 등의 방법을 통해 보험사에 직접 청구해야 한다. 물리적·시간적 비용이 필요 이상으로 발생하는 만큼 소비자들이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여전히 잦아 오랫동안 불편함으로 지적됐다.
실손보험청구간소화는 보험금 청구를 위한 종이서류를 전자서류로 대체하는 것이 골자다. 보험 소비자가 보험금을 받기 위해 관련 자료를 의료 기관에 요청하면, 의료기관은 이 자료를 전산망을 통해 제3의 중계기관을 통해 보험사로 전송하게 된다.
2020년 소비자와함께 등 6개 소비자단체가 실손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손의료보험 청구 관련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2년 이내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었음에도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전체 응답의 절반 수준인 47.2%에 달했다. 특히 그 중 30만원 이하의 소액청구 건이 95.2%를 차지했다. 또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발간한 보고서 '실손 의료보험 지속성 강화와 역할 정립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실손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이유로 '청구 금액이 소액이라서'(73.3%)'(중복포함), 서류 발급을 위한 병원 방문이 귀찮아서'(44%) 등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0월 건강보험공단의 본인 부담금 통계 자료와 보험사의 실손보험 청구내역 최근 3년치를 분석해 공개했다. 그 결과 지난해 지급가능 보험금은 13조5500억원으로 추정됐지만, 실제 지급될 보험금은 13조2600억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그 차액이 2800억원에 달했다.
의료계는 '의료기록 등 환자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가장 큰 이유로 이를 반대해 왔다. 하지만 정부협의체 설문조사를 통해 국민들이 개인정보 유출 우려보다 불편함 해소의 바람이 더 크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한 후, 최근 몇 년간 협의체에 불참하는 등 외려 더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에 일각에선 의료계가 실손보험청구간소화를 반대하는 실제 이유가 중계기관으로 오랫동안 거론돼 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비급여 항목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구체적으로 '비급여 위주의 과잉 진료' 현황이 드러날 것을 염려한다는 것이다. 최근 지역 내 1·2차 병의원은 환자의 감소로 병·의원 간 경쟁이 심화되고, 병원 경영에도 압박을 받는 등의 악순환이 지속됐다. 이에 일부 병의원들 사이에서 과잉 진료를 통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
보험개발원이 2021년 발표한 '보험산업과 모럴 해저드 사례와 대응방안에' 따르면 의원급(병원급 포함)의 보험금 지급 총액과 비급여 비중이 상급(종합)병원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특히 최근 3년간 전체 실손보험의 보험금 증가률은 53%포인트에 그친 데 반해, 의원급의 보험금 증가율은 116%포인트에 달했다.
실제로 상급병원은 이 법안에 덜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 등 일부 대형병원은 보험사·핀테크사와 연계해 전산청구 서비스를 서비스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전체 의료기관 약 10만 곳 중 1%에 그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남은 논의는…중계기관 어디가 맡나
다만 보험업계는 해당 청구 시스템 구축·운영을 서두르고 있지만 의료계에선 여전히 반발이 커 실제 시행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느 기관이 중계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것인지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여야는 소위에서 제3자 중계기관을 보험사·의료기관이 직접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거나 공공성·보안성·전문성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에 위탁하도록 하는 것에 합의했다.
현재로선 보험개발원이 가장 유력하다. 그동안 관련 인프라를 갖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오랫동안 거론됐지만 의료계의 거센 반발로 올 들어 정치권과 금융당국, 의료계 사이에서 보험개발원을 중계기관으로 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의료계 일부에선 여전히 법안 자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개원의협의회와 산하 의사회들은 1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실손보험 간소화법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 법이 시행되면 보험 소비자가 납입한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받기 어려워지고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어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이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가입자의 보험금 청구 과정에 또 하나의 문턱을 놓는 것이며 결국 보험사가 보험금 심사와 지급을 복잡하게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부당하다"고 역설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의료계는 심평원이 중계기관으로 지정될 시 비급여 진료 정보가 노출, 통제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며 "보험개발원에도 축적된 보험금 청구자료가 있다는 염려가 있어 보험개발원을 중계기관으로 선정하는 것에도 반대도 있는 상황인데, 개정안이 올해 안에 통과되면 늦어도 내후년엔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nam_j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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