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돼지·닭과는 다른 ‘개식용 금지’ 이유

이학범 수의사·데일리벳 대표 2023. 5. 1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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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범의 펫폴리] 전 세계적으로 개식용 합법인 나라 없어… 비위생적이고 불투명한 유통 과정

※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반려동물과 행복한 동행을 위해 관련법 및 제도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멍냥 집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반려동물(pet)+정책(policy)'을 이학범 수의사가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식용금지법’ (동물보호법 개정안)의 의안 원문 일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캡처]
최근 정치권에서 '개식용 금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4월 14일 '개식용금지법'(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4월 13일 국회 정책조정회의에서 "개 불법 사육, 도축, 식용을 금지하는 개식용방지특별법(손흥민차별예방법)을 발의하고 통과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도 4월 2일 한 동물단체와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대통령 임기 내 개식용 종식"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개식용 금지에 대한 요구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이렇게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온 것은 처음입니다.

개식용 금지가 논의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소, 돼지, 닭은 먹으면서 왜 개는 안 된다는 거야"라는 질문인데요.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 중에도 '개식용 여부는 개인의 자유이자 선택의 문제이고 국가에서 강제로 금지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해 서울대 수의과대학 수의인문사회학교실이 진행한 '개식용 금지에 대한 대중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개고기를 먹은 사람은 21.7%뿐이었으나 개식용 금지 법제화에 찬성하는 비율은 64.1%에 그쳤습니다. 국민 10명 중 2명은 개고기를 먹지 않음에도 개식용 금지에는 반대하는 거죠.

그렇다면 왜 유독 개만 먹지 말라는 것일까요. 개는 가축이 아닌 반려동물이니까? 개가 사람과 가장 친한 동물이라서? 이런 답변은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돼지나 닭도 반려동물로 기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죠. 그보다는 개식용이 비위생적이고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금지해야 합니다.

가장 비위생적인 음식, 개고기

소, 돼지, 닭고기는 합법화돼 있습니다. '축산물 위생관리법'에 따라 사육부터 운송, 도축, 유통 단계까지 철저한 위생관리가 이뤄집니다. 소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모든 젖소는 매년 결핵 검사를 받습니다. 우유를 통해 사람에게 결핵이 전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우도 여러 질병 검사를 받습니다. 아무런 질병이 없어야 도축 허가가 나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도축장에서도 검사가 이뤄집니다. 도축 과정에서 이상 부위가 나오면 수의사인 검사관이 바로 그것을 폐기합니다. 도축 후에 샘플을 채취해 실험실 검사를 진행하고 정기적으로 정육점과 마트에 나가 수거 검사도 실시합니다. 수입 축산물은 공항, 항만에서 검사가 이뤄집니다. 이처럼 위생관리가 확실하기 때문에 쇠고기를 먹으면서 "식중독에 걸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고기는 어떤가요.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먹여 키우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운송되고, 도축되며, 사육 과정에서 어떤 항생제가 사용됐는지, 고기에 어떤 세균이 있는지 아무도 검사해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개고기는 '보신탕(補身湯)'이 아니라 가장 몸에 해롭고 위험할 수 있는 음식인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많은 사람이 "그럼 개식용을 합법화해서 안전하게 먹으면 되잖아"라고 되묻곤 합니다. 하지만 개식용 합법화(축산물 위생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것)는 불가능합니다.

합법화 한다면 수백억 재원 소요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12월 24일 경기 용인시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를 방문해 강아지를 안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전 세계적으로 개식용이 합법인 나라는 없습니다. 중국, 베트남에서 개식용이 이뤄지긴 하지만 합법은 아닙니다. 또 중국,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라 한국이 '세계 유일 개식용 민주주의 국가'로 더 부각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개고기를 먹는다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받는데, 세계 최초로 개식용을 합법화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게 분명합니다.

실제로 올림픽,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같은 국제 행사가 열릴 때마다 개식용은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1988 서울올림픽, 2002 한일월드컵, 2018 평창동계올림픽 때 그랬고, 유치에 성공한다면 2030 부산세계박람회 때 또다시 논란이 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다른 나라의 비판이 뭐가 중요하느냐"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하지만 이는 국가 이미지 실추, 국제 행사 유치 실패는 물론, 국내 기업의 해외 사업에도 타격을 입혀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경제적 손실을 감수한다 해도 개식용 합법화는 어려워 보입니다. 소, 돼지, 닭의 경우 이미 사육이나 운송, 도축, 유통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된 상태입니다. 어떤 환경에서 사육해야 하고, 어떻게 운송해야 하며, 무슨 방법으로 도축해야 하는지 법에 명시돼 있죠. 그러나 개는 전 세계적으로 이런 연구가 전무합니다. 만약 한국이 세계 최초로 개고기를 합법화한다면 식용 목적인 개의 기준부터 사육, 운송, 도축 등의 방법을 전부 새로 연구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 수년의 시간과 수백억 원의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앞서 소개한 설문조사에서 '향후 10년간 개고기를 먹을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12.9%로 지난 10년간 개고기를 먹어본 비율(21.7%)보다 낮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고기를 먹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국민 혈세 수백억 원을 투입하는 법안이 과연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까요? 아마 반대할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개식용 금지뿐인데요. 이때 개고기 생산·판매를 생계로 삼는 분들의 업종 전환을 돕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앞서 경기 성남 모란시장, 대구 칠성시장, 부산 구포시장에서 개시장을 없앨 때 지방자치단체, 시장 상인회, 동물단체가 함께 상인들의 업종 전환을 도왔습니다. 이 모델을 참고해 개식용 금지에 따른 대안을 마련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학범 수의사·데일리벳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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