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로스팅 머신 제조 강소기업 스토롱홀드
생두를 열에 볶아 원두로 가공하는 로스팅 과정은 커피의 맛을 가장 크게 좌우한다.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기에 생소할 수 있지만, 당신이 자주 찾는 카페의 이면에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는 기업이 있다.
세계 로스팅 머신 업계는 독일, 일본, 네덜란드 등 오랜 시간 제품을 생산해온 국가의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정밀한 기술을 필요로 하고 생산 단가도 높아 신흥 기업이 쉽게 도전장을 내밀긴 어려운 구조다. 이러한 구도에 균열을 내는 기업이 있으니 한국의 '스트롱홀드’다.
스토롱홀드는 유려한 디자인과 IT를 이용한 기술 혁신으로 레드오션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2010년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스트롱홀드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로스팅 대회인 월드커피로스팅챔피언십(WCRC)의 단독 스폰서이며 2019년부터는 중국커피로스팅챔피언십(CCRC)과 한국커피로스팅챔피언십(KCRC)의 공식 스폰서로 선정됐다. 후발 주자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서울 금천구, 핸드폰 부품 공장을 리모델링한 스트롱홀드 본사에서 우종욱(42)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숙련자의 감(感) 아닌 데이터로 자동화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에 저는 카페에 가면 자몽차, 아이스티를 주문하던 사람이었어요.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했는데 졸업 후에는 창업을 하겠단 계획이 있었어요. 여러 분야를 공부하다 커피 로스팅 분야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서 엔지니어 4명과 함께 회사를 차렸죠.
어떤 문제점을 발견하신 건가요.
제가 사업을 시작할 때 즈음 한국은 로스팅된 원두를 수입하는 대신 생두를 수입해 현지에서 볶기 시작하던 전환기였어요. 그런데 이 과정을 살펴보니 로스팅은 한 10~15분 정도 소요되는데 장인 몇 명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어요. 심지어 제자들도 못 들어오게 하고 골방에서 혼자 로스팅을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볶아진 원두는 생두 가격의 3~5배까지 받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로스팅을 자동화해 기술을 보편화하면 많은 매장에서 훨씬 더 저렴하게 좋은 커피를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통 있는 수입산 로스팅 머신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는데요. 망설여지지는 않았나요.
물론 세계적인 기업들이 있었지만 제가 느끼기에 기존의 로스팅 머신의 접근 방법은 지나치게 공급자 위주였어요. 기계를 다루기 힘들어 숙련된 전문가만 사용할 수 있거나, 다품종 소량생산이 어려운 대형 머신이 대부분이었어요. 로스팅 진행 상황을 알려주는 그래프도 보여주지 않아 오로지 숙련자의 감과 경험에 의존해야 했죠.
스트롱홀드는 어떻게 다르게 접근했나요.
원두는 종류마다 로스팅 방법이 달라요.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은 원두마다 최적의 로스팅 프로파일을 찾는 일인데, 이 작업은 노동 시간으로 치면 1%에 불과해요. 나머지 99%는 만든 로스팅 프로파일을 가지고 동일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단순 반복 작업이죠. 저는 반복 업무는 사람보다 기계가 더 잘해낼 수 있다고 봤어요. 공정이 자동화되면 로스터도 반복 업무보다는 최적의 프로필을 만드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스트롱홀드 제품은 로스팅 프로파일을 저장하고,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재현해요. 또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샘플링을 경험하고 학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양한 원두에 맞는 알고리즘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제공한다고 자부해요.
사업을 시작한 2010년이면 한국에 스페셜티커피가 굉장히 생소했을 때였는데, 그런데도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을 봤나요.
저는 커피를 잘 몰랐잖아요. 그래서 시장의 합리성만 봤어요. 어떤 솔루션이 비용을 줄이고 품질을 올릴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외부인이었기에 가질 수 있었던 관점이죠.
해외에서 인정받고 국내시장 공략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시작하셨나요.
스트롱홀드라는 사명은 군사작전에서 요새, 성곽이라는 뜻이에요. 녹록지 않은 커피 업계에서 사상의 근거지가 되는 전초기지를 만들어 임팩트를 남기자는 의미로 지었죠. 사명에서 알수있듯 처음부터 수출을 생각하긴 했지만 당초 계획은 국내에서의 인정이 먼저였어요. 하지만 사업 초반, 국내 커피 업계에서는 자동화 머신에 로스팅한 커피에 대한 불신이 너무 크더라고요. 저희가 샘플을 보내면 냄새만 맡고 버리는 경우도 있었죠. 그래서 계획을 수정했어요. 반대로 해외시장 문을 먼저 두드렸어요. 2016년부터 무작정 해외 대회 현장에 가서 제품을 홍보했죠.
반응은 어땠나요.
당연히 처음엔 관심도 없었어요. 그래도 세 번, 네 번 꾸준히 시도했죠. 그러다 이전에 행사에 참여했던 회사가 빠져 공백이 생기자 주최 측에서 저희에게 "이런 거 해볼 수 있어?"라고 묻더라고요. "물론이지, 다 해줄게" 하면서 해외시장에 저희 제품을 선보였죠. 그렇게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로스팅 대회에서까지 저희 제품을 쓰게 된 거죠.
사업하면서 또 다른 어려움은 없었나요.
사업 초기, 각 원두에 맞는 로스팅 알고리즘을 만드는 게 어려웠죠, 커피는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콩을 볶았을 때 단순히 "맛있다"는 주관적 평가로는 부족해요. 객관적 지표를 위해 이화학적 평가를 거쳐야 하고, 매번 프로파일을 만들 때마다 수백에서 수천 번씩 테스트했어요. 10년 동안 여러 환경에서 동일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걸 학습하는 데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갔어요. 저희가 최고의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유예요.
해외에서 바라본 한국 커피 시장은 어떤가요.
5, 6년 전만 해도 한국 커피는 아시아에서 굉장히 영향력이 컸어요. 한국 커피 시장을 외국에서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많았죠. 최근엔 한국 시장을 인정하긴 하지만 이제 따라 하진 않아요. 아무래도 저가 커피가 확산하면서 다양성이 좀 위축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과거 커피 업계에서 일본이 선두 주자였다면 한국과 대만이 이어받고 이제는 중국으로 넘어가는 단계인 것 같아요. 중국 시장이 현재 한국보다 3배 정도 큰데, 앞으로 200조 원 규모로 성장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요. 일반 대중이 소비하는 커머셜 시장은 이미 중국이 우리보다 크고, 스페셜티커피도 시장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시장에서 중국이 커피를 싹 쓸어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앞으로 스트롱홀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한국의 카페 90% 이상은 외부에서 원두를 납품받아요. 가공된 식재료를 납품받는 것보다 원재료를 직접 가공하는 게 저렴하듯, 카페에서 원두를 직접 볶으면 원가가 굉장히 절감돼요. 저희는 로스팅 머신을 파는 것을 넘어 원두부터 로스팅 머신 그리고 원두에 맞는 최적의 프로파일까지 묶은 솔루션을 판매하려고 해요.
일종의 카페 컨설팅 솔루션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거군요.
그렇죠. 저희 고객 중에는 초보자 사장님이 많아요. 업계에 오래 몸담은 사람들은 커피를 수입할 때 어디서 싸게 사는지 알 수 있지만, 처음 하는 분들에겐 생두 구입 자체가 굉장히 어려워요. 그래서 저희가 생두 유통부터 로스팅까지 솔루션을 판매하는 거죠. 현재 고객사 3% 를대상으로 시험 운영 중인데, 재구매율이 94%가 넘어요. 또 로스팅한 원두는 수출이 어렵지만, 솔루션은 해외 수출이 가능하거든요. 그렇게 전 세계에 유통되는 커피의 10%가 저희 솔루션을 사용하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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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홍석 기자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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