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끈기력, 터치감 두 단어는 간혹 쓰이는 신조어라고 생각했다. 웬걸, 검색해보니 활자매체에 이들 단어를 활용한 기사가 줄줄이 올라온다. 둘은 군더더기 단어들이다. ‘끈기’에 역할이 없는 ‘력을 덧붙일 이유가 없다. ‘끈기’의 뜻에 ‘쉽게 단념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견디어나가는 기운’이 있고 유의어가 ‘지구력’이기 때문이다. ‘터치감’은 ‘터치’에 ‘감’이 덧대진 낱말이다. 말짱한 단어 ‘촉감’이 있고 ‘촉감’으로 충분한데도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군더더기 단어다.
글의 군더더기인 반복이나 중첩을 피해야 한다. 수사적인 목적 등이 아니라면 같은 단어를 반복하면 안 되고, 비슷한 구절을 중첩해서 써도 안 된다. 반복이나 중첩을 피하는 글쓰기는 단어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 글자라도 허투로 붙이면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약 50만 원 정도’라는 중첩 문구를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 채 쓰게 된다. ‘약’을 썼다면 ‘정도’는 필요 없고, ‘정도’를 쓸 요량이면 ‘약’을 넣지 않아야 한다. 이런 중첩을 의식하지 않는 필자는 더 큰 단위에서 반복이나 중첩을 저지르게 된다.
글쓰기 책과 강습에서 반복이나 중첩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나조차 이 지침을 어길 때가 있다. 그런 실수는 그만큼 이 지침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근거가 된다. 내 실수는 소책자를 소개하는 다음 세 문장을 두 군데에서 그대로 반복한 것이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2022년 개점 42주년을 맞아 기획한 소책자가 있다. 〈우리 사이의 순간들〉이다. 소설가, 시인, 수필가 등 27인이 ‘책과 나’를 주제로 쓴 산문이 이 소책자로 엮였다.
나는 이 세 문장이 잘 정리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매체에 월 1회 기고할 때 두 차례 활용했다. 문제는 기고문을 책으로 편집하면서 세 문장을 그대로 둔 데에서 비롯됐다. 둘 중 한 군데에서는 서술 방식을 바꿨어야 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2022년 개점 42주년을 맞아 소책자 〈우리 사이의 순간들〉을 기획해 펴냈다. 이 책에는 소설가, 시인, 수필가 등 27인이 ‘책과 나’를 주제로 쓴 산문이 실렸다.
〈문장강화〉(1940)는 상허 이태준이 쓴 글쓰기 길잡이 책이다. 이 책에는 내용이 반복되는 꼭지가 있다. 다음 글이다. 이 글에서 ①과 ② 문장이 여러 번 반복됐다.
언어의 표현 가능성과 불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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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사람이 의사를 표현하려는 필요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의식 속에 있는 것을 무엇이나 다 표현해내는 전능력(全能力)은 없는 것이다. 말도 역시 신이 아닌 사람이 만든 한낱 생활도구다.완미전능(完美全能)한 신품(神品)이 아니다. 뜻은 있는데, 발표하고 싶은 의식은 있는데 말이 없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래 옛날부터 ‘이루 측량할 수 없다’느니 ‘불가명상(不可名狀)’이니, ‘언어절(言語絶)’이니 하는 말이 따로 발달되어오는 것이다. 이것이 어느 한 언어에만 있는 결점이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거의 세계어인 영어에도 inexpressible이니 beyond expression이니 하는 유의 말이 얼마든지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 것을 보면 ①세계 어느 언어에나 표현 불가능성의, 암흑의 일면은 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가 있다.그런데 ②이 표현 가능의 면과 표현 불가능의 면이 언어마다 불일(不一)하다. 갑(甲) 언어엔 ‘그런 경우의 말’이 있는데 을(Z) 언어엔 그런 말이 없기도 하고, 을 언어에 ‘그런 경우의 말’이 있는 것이 갑 언어엔 없기도 하다. 영어 wild eye에 꼭 맞는 조선말이 없고 또 조선말의 ‘뿔뿔이’에 꼭 맞는 영어가 없다. 꼭 wild eye를 써야 할 데서는 조선말은 표현을 못하고 마는 것이요, 꼭 ‘뿔뿔이’를 써야 할 데서는 영어는 벙어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어느 언어가 아직 이 표현 불가능의 암흑면을 더 광대한 채 가지고 있나 하는 것은 지난한 연구재료의 하나려니와 우선, ①어느 언어든 표현 가능성의 일면과 아울러 표현 불가능성의 일면도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②이 표현 불가능성은 언어마다 불일(不一) 해서 ⓐ완전한 번역이란 영원히 불가능한 사실쯤은 알아야 하겠다. ⓒ이것을 의식하기 전엔 무엇을 번역하다가 자기가 필요한 번역어가 없다고 해서 이 언어는 저 언어보다 표현력이 부족하니, 저 안다는 이 언어보다 우수하니 하고 부당한 단정을 하기가 쉬운 것이다. ⓑ번역을 받는 원문은 이미 그 언어의 표현 가능면의 말로만 표현된 문장이다. ②그런데 표현의 가능, 불가능면은 언어마다 불일하다. 나중의 언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것도 있을 것은 오히려 지당한 이치다. ⓓ이 우열감은 하나는 구속이 없이 마음대로 표현한 것이요, 하나는 원문에 구속을 받고 재표현해야 되는 번역, 피(被) 번역의 위치관계이지 결코 어느 한 언어와 언어의 본질적 차이는 아니다.그런데 언어에는 못 표현하는 면이 으레 있다 해서 자기의 표현을 쉽사리 단념할 바는 아니다. 산문이든 운문이든 문장가들의 언어에 대한 의무는 실로 이 못 표현하는 암흑면 타개에 있을 것이다. 눈매, 입모, 어깻짓 하나라도 표현은 발달하고 있다. 언어 문화만이 암흑면을 그대로 가지고 나갈 수는 없다. 훌륭한 문장가란 모두 말의 채집가, 말의 개조 제조가들임을 기억할 것이다. 출처: 이태준, 문장강화, 창작과비평사, 1988, 28~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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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를 별도 문단으로 분리하고 반복을 들어내면서 문장을 재배치한 대안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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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이 차이로 인해 완전한 번역은 도달하지 못할 경지가 된다. ⓑ왜냐하면 그 언어로 표현 가능한 면으로만 쓰인 원문에 번역 언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면이 전혀 없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람은 어떤 언어로 쓰인 원문을 우리말로 옮기다가 필요한 우리말이 없다고 해서 우리말은 그 언어보다 표현력이 부족하니, 그 언어가 우리말보다 우수하니 하고 단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두 언어는 우열 관계가 아니라, 하나는 원문에 쓰인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그 원문을 번역할 때 구사할 언어라는 관계일 뿐이다. ⓔ반대로 우리말 원문을 영어로 옮길 때에도 우리말로는 쉽게 쓰였으나 영어에는 마땅한 표현이 없는 대목을 마주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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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 주제를 정리한 두 글을 책 한 권에 연이어 편집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두 글에는 겹치는 대목이 있기 쉽다. 다음이 그런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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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를 모르는 사람들은 보통 낚시 미끼 하면, 지렁이나 떡밥을 생각한다. 하지만 지렁이와 떡밥은 붕어 낚시에 주로 해당하는 것으로 낚시꾼이 잡으려는 대상 어종이 달라지면 미끼 역시 달라진다. 붕어 미끼만 해도 수십 종이 넘고 잉어를 잡으려면 또 다른 미끼를 사용해야 한다. 바다낚시로 가면 미끼 또한 더욱 다양해진다. 갯지렁이, 크릴새우, 오징어살, 바지락, 민물 새우, 미꾸라지 등이 대표적인 미끼다. 감성돔 낚시에는 심지어 수박껍질도 동원한다. 아이들이 먹는 젤리 종류인 ‘왕꿈틀이’를 사용해서 노래미나 우럭을 잡는 낚시꾼도 본 적이 있다. (중략)인조미끼를 사용하는 낚시를 통칭하여 루어(Lure)낚시라고 한다. (중략) 숟가락 비슷한 데다 낚싯바늘을 단 스푼 루어가 있고, 플라스틱 재질의 벌레 모양으로 만든 웜 루어도 있다. 물고기 모양을 흉내 낸 것은 미노우라고 한다. (하략)출처: 개뿔 같은 내 인생, Human & Books, 2021, 2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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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미끼는 대상 어종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낚시 자체가 물고기의 먹이 활동을 연구하면서 발전했기에 물고기가 다양한 만큼 미끼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낚시 미끼는 지렁이나 새우와 같은 생물 미끼다. 생물 미끼는 자연 생태계에서의 물고기의 먹이다. 이를 꾼들 용어로 ‘생미끼’라 한다. (중략)민물낚시에서 바다낚시로 눈을 돌리면 미끼의 세계는 바다 어종이 다양한 만큼 광대무변(廣大無邊)하게 확장된다. 생미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창의성을 발휘해서 생미끼에 변형을 가하기도 한다. (중략) 한술 더 떠서 아이들이 먹는 ‘왕꿈틀이’라는 젤리를 우럭 미끼로 사용하는 꾼도 있다. (중략)그래도 먹을 수 있는 미끼라면 좀 낫다. 아예 못 먹는 미끼도 있다. 생미끼 대신 쇳조각이나 플라스틱 등 여러 재료로 아예 가짜 미끼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틀어 루어(Lure)라 한다. (중략)루어로 많이 알려진 것만 해도 스푼(spoon), 웜(warm), 미노우(minnow), 메탈지그(metal jig), 에기(egi), 타이라바(tie-raba) 등 수십 종이 넘고, 해마다 새로운 제품들이 출시된다. (하략) 출처: 개뿔 같은 내 인생, Human & Books, 2021, 2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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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두 원고를 합쳐서 다시 정리해 책에 싣는 방법이다. 이게 여의치 않다면 글 앞에 편집자 주를 넣어 독자의 양해를 구할 수도 있다.
반복이나 중첩을 피하자. 다시 서술된 같거나 비슷한 내용은 친절하지 않다. 오히려 독자를 피곤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