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용역 제공시간' 제한, K팝 업계 우려 이유

이재훈 기자 2023. 5. 1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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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이승기법' 대중문화예술산업법 개정안 일부 내용, 업계 비상
뉴진스·아이브 등 활동 제약 생길 수도…현실과 괴리 지적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자기결정권 등 존중해야

[서울=뉴시스] 한매연, 연제협, 음산협, 음레협, 음콘협 로고. 2023.05.16. (사진 = 각 단체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최근 '이승기법'으로 통하는 '대중문화예술산업법 개정안'에 포함된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용역 제공시간 제한' 내용과 관련 K팝 업계 내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매니지먼트연합(한매연)·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한국음반산업협회(음산협)·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음레협)·한국음악콘텐츠협회(음콘협)(가나다순)는 16일 공동 성명을 내고 "자의적으로 연령을 세분화해 법률로써 용역제공 시간을 제한하는 이번 개정안은 현실을 외면한 '대중문화산업 발전 저해법안'"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지난달 2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개정안엔 연예기획사가 회계 내역 및 지급해야 할 보수에 관한 사항을 소속 예술인의 요구가 있을 때뿐만 아니라 연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아울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불공정행위 조사를 위해 관계자 출석요구, 진술 청취, 자료 제출 등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신설했다. 표준계약서 제·개정 시 대중문화예술용역 계약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반영하게 하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또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조항도 대폭 확충됐다. 학습권 침해행위, 과도한 외모 관리 강요, 폭언·폭행 등 구체적 금지행위 항목이 신설된 것이다.

다만 한매연 등 대중음악 관련 다섯 개 단체는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들의 노동시간 상한선을 낮춘 것이 아이돌 그룹의 원활한 활동에 방해요소가 될 것이라고 근심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기존 15세 미만 주 35시간, 15세 이상 주 40시간인 청소년 연예인 노동시간 상한 규정을 12세 미만 주 25시간 및 일 6시간, 12~15세 주 30시간 및 일 7시간, 15세 이상 주 35시간 및 일 7시간 등으로 각각 강화했다.

그런데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돼 있는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이 대거 포함된 '뉴진스'·'아이브'·'엔믹스' 등의 K팝 아이돌 그룹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주·일 노동시간이 제한되면 앨범 발매, 콘서트 개최 등 음반 관련 집중적인 홍보와 활동이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돌의 경우 대중의 눈에 보이는 활동 외에 메이크업 등 준비 시간, 트레이닝 등 훈련 시간 등 기타 관련 노동이 많이 소요된다. 이번 개정안이 K팝 업계 현실과 괴리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매연 등은 "K-컬처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의 경우 한 그룹 내에도 다양한 연령의 구성원이 있는데 법률로 연령별 활동 가능 시간에 차이를 둔다면, 구성원별 활동 가능 시간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발생함은 물론 사실상 정상 활동이 불가능해진다"고 토로했다.

이번 개정안이 상임위에서 의결된 까닭은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학습권·휴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도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인권을 보호해야한다는 취지로 정부기관과 연예 기획사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런 취지엔 대중음악 산업계도 적극 동의한다. 그동안 업계는 스스로 자정 노력을 통해 청소년 예술인을 위한 지침 등을 마련하고, 야간활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전 동의를 구하는 등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권리를 강화하고자 노력해왔다. 아울러 현행법에서 규정한 기존 15세 미만 청소년에 대한 용역 제공시간인 주 35시간을 준수하고 있다.

특히 하이브·SM·JYP·YG 등 K팝 한류를 이끌고 있는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들은 앞장서 관련 담당 부서를 설치하거나 담당자를 두고 관련 내용들을 살피는 중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검토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청소년 연예인의 평균 활동 시간은 줄어들어 2020년에는 현재 개정안이 제한하는 용역제공 제한시간보다 활동 시간이 단축됐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RM 역시 얼마 전 스페인 매체 엘 파이스(El Pais)와 인터뷰에서 K팝 시스템에 대해 불합리하다는 것에 일부 동의하는 지점이 있다면서도 "(연습생 생활이) 산업을 굉장히 독특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젠 계약이라든가, 정산,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많이 개선되고 있다. 전담 강사도 있고 심리상담사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이 '규제 전봇대'가 돼 방송가에 청소년 출연자를 기피할 수 있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한매연 등은 "이로 인해 제2의 보아, 제2의 정동원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것이야말로 이들에겐 역차별이고 불평등"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뉴진스. (사진 = 어도어 제공) 2023.05.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대중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청소년 자기결정권 존중해야

이와 별개로 이번 개정안이 청소년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청소년일지라도 연예 활동은 개인의 의견에 따른 각자의 이익이 우선이어야 하며, 정부는 교육·건강 등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대중문화예술에 몸 담은 청소년들과 이들 부모들 사이에서는 형평성·자율성이 화두가 되고 있다. "역량을 키우고 싶어 늦은 밤까지 책과 씨름하는 학생들과 다르게, 세계적인 대중문화예술인으로 성장하고 싶은 청소년은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는 토로가 나오는 이유다.

K팝 업계 관계자는 "청소년 연습생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실력을 갈고 닦는 시간이 곧 노동시간이다. 그런 시간을 제한한다는 것이 불합리할 수 있다"면서 "더 연습을 하지 못해 성공 못하면 결국 연습생 손해"라고 말했다.

대다수의 K팝 아이돌의 전성기는 20대다. 이를 위해 청소년 시기에 피·땀·눈물을 흘려가며 지독하게 연습을 한다. 이런 점을 간과하고 시간 제한 등의 조치에만 몰두한다면 오히려 10대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상황이다.

K팝 업계 내에 법망을 피한 '음지의 사교육'이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는 걱정도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이 같은 조치가 향후 스포츠 선수들에게 적용이 될 경우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연습생이 어린 시절부터 가혹한 경쟁에 내몰려 혹사 당하는 환경은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고, K팝 업계 역시 크게 동의하는 부분이다.

K팝 업계 관계자는 "수많은 연습생 중에 아이돌 그룹 멤버로 데뷔하는 이들은 극소수"라면서 "아이돌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와중에도 다른 진로를 모색할 수 있는 여건·제도를 우리 업계와 정치권·정부가 같이 고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일·주 단위로 노동 시간을 제한하는 대신 연 단위 등으로 노동 시간의 총량을 제한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음반 활동이 특정 기간에 집약된 만큼 효율성을 높이자는 의도다.

아울러 K팝 업계도 공연계처럼 '샤프롱(chaperon) 제도' 도입을 검토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프랑스어인 샤프롱의 원뜻은 과거 젊은 여성이 사교장 등에 나갈 때 보살펴 주는 사람을 가리킨다. 주로 해외 공연계에서 활용돼 온 제도인데 국내에서도 뮤지컬 '마틸다' 라이선스 공연 등에 도입됐다. 매니저와 별개로 샤프롱 등이 도입되면, 대중문화예술에 종사는 청소년을 좀 더 밀착해서 보살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정부·산업계가 참여하는 협의체 신설해야"

특히 K팝 업계가 이번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 개정안을 통과시킨 과정에 대해 아쉬워하는 건 산업계와 충분한 논의를 거친 게 아닌, 일방통행식 심사였기 때문이다. 자칫 이런 조치는 극히 일부 사례를 일반화해 음악업계 전체를 불공정 집단으로 규정·매도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한매연 등은 연 1회 이상 정기적으로 회계 내역 및 보수에 대한 내역을 공개하는 조항 신설에 대해 찬성하는 등 업계 투명성을 위한 조치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이로 인해 K팝의 위상이 전 세계적으로 남달라지면서 현실적인 부분을 제대로 톺아보지 않은 채 정치권 등에서 주목 거리를 만들기 위해 피상적으로만 다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K팝 업계 관계자는 "우리 역시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을 보호하고 싶다. 보호 장치를 확실히 만드는 게 안정성 등 업계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다"면서 "특히 대형 기획사는 인권 등을 더욱 중요시하는 세계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지금도 노력 중"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현실적으로 더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 고심이 깊은데 이런 부분을 정치권 등이 더 귀담아 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매연 등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돼 있는 법안에 대한 심사를 즉각 중단하라면서 국회, 정부, 산업계가 참여하는 협의체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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