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영원한 강자는 없다

경기일보 2023. 5. 1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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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호 국회의장 정무수석

영원한 강자는 없다.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새로운 물결에 휩쓸려 사라지게 된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제국의 흥망이 그러하다. 승자는 변화를 싫어한다. 간난신고 끝에 얻어낸 현실의 안온함을 즐기면서 거센 도전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감지하지 못 한다. 마치 서서히 데워지고 있는 가마솥에서 나른함을 즐기고 있는 개구리 신세와 다를 바 없다.

무적함대. 1571년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튀르크 함대를 격파한 스페인의 자랑. 하지만 승리의 찬가는 그리 오래 불리지 못했다. 불과 17년이 지난 후 칼레 해전에서 해적이자 군인인 드레이크를 비롯한 영국 해군에 참패해 세계경영의 제해권을 넘겨주게 된다.

당시 무적함대는 신대륙을 오가던 덩치 큰 범선에 군인을 잔뜩 싣고 갈고리를 상대 선박에 던져 육박전을 전개하는 ‘바다의 육군’이었다. 반면 영국 해군은 허가받은 해적들이 노략질을 일삼던 날렵한 사략선(私掠船) 위주였다. 이들 사략선은 레이스 빌트 갈레온선(船)으로 덩치는 작지만 선수와 선미의 무게중심을 낮춰 안정성과 기동성을 갖춘 ‘아웃 파이터 전함’이었다. 영국 해군은 또 고가의 청동 대포에 비해 가격이 4분에 1에 불과한 주철로 만든 신형 대포로 무장했다.

무적함대의 패배는 승리에 안주하고 변화에 게으른 탓이었다. 스페인은 세계 최강 보병의 위력만 믿고 전함 개발이나 대포 혁신에 무관심했다. 성공의 경험에 집착해 신기술 도입을 거부한 것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레판토 해전의 참전용사인 대문호 세르반테스의 표현을 빌리면 ‘대포라는 악마 같은 발명품’ 때문에 무적함대의 대부분이 칼레 해전에서 수장(水葬)되는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때론 결핍이 혁신을 부른다. 목 마른 자가 샘물을 찾기 마련이다. 영국 해군의 드라마 같은 승리는 역설적으로 절대적 자원의 부족에서 비롯됐다. 영국 해군이 스페인과 달리 포격전에 치중했던 것은 애초에 영국에는 적함에 뛰어들 만한 보병 병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철 대포를 만든 것도 청동 대포를 만들 만한 자원과 재정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승리의 기억에 도취한 자는 오만하고 위험하다. 자신이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잘못에 기인한 ‘만들어진 신화’를 진짜라고 믿는다. 동굴에 비친 그림자를 실제로 착각하는 어리석음에 빠진다. 자신의 승리를 객관화할 줄 모른다. 지금까지 잘된 것은 ‘내 덕’이고, 뭔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네 탓’이다. 이쯤 되면 개인도 기업도 정당도 위험에 직면한다.

이때가 흥망의 갈림길이다. 실제 바둑을 두는 것보다 훈수가 훨씬 나은 법. 이곳저곳에서 애정 어린 충고가 쏟아진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내부에서도 자성과 혁신의 담론이 분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과는 늘 비슷하다. 뼈를 깎는 혁신이라는 말은 구두선에 그칠 뿐이다. 하여 시작은 창대하나 끝이 미미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혁신은 말처럼 쉽지 않다.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어제의 대승을 실력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오늘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고 안주한다면 내일은 반드시 패배할 것이다. 때로는 변화에 저항하는 세력을 헤치고 지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정확한 지도를 가지고 목표 지점을 향해 우직하게 걸어가야 한다. 멀리 보면서 가까이에 있는 장애물도 피할 줄 아는 현명함은 성공을 위한 필수 덕목이다. 혁신의 속도, 폭, 깊이가 내일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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