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재정 '줄줄'…3년간 사무장병원 등 489곳이 2조 9천억 원 빼가

유영규 기자 2023. 5. 17.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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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약국(면대약국) 등 불법 개설기관의 부당 청구로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나 세금으로 조성한 의료급여재정이 해마다 줄줄 새고 있지만, 당국이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 발만 동동거리고 있습니다.

불법 개설기관은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개설할 수 없는 사람이 의사나 약사의 명의를 빌리거나 법인의 명의를 빌려 개설ㆍ운영하는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말하는데, 개설 자체가 불법이기에 건보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진료비를 청구해 받아내다 적발되면 건보공단은 환수 조처를 합니다.

오늘(17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건강보험재정 건전화 계획의 일환으로 불법 개설 의심 요양기관에 대한 행정조사를 확대하는 등 단속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건보공단은 최근 3년간 (2020∼2022년) 지방자치단체, 대한약사회 등 유관기관과 협업해 불법 개설 의심 기관 489곳을 적발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건보공단은 이 기간 이들 불법 개설 의심 기관이 요양 급여비와 의료급여비 명목으로 불법적으로 진료비를 청구해 2조8천984억 원을 빼내 간 것으로 추산합니다.

이처럼 사무장병원 등의 불법행위로 건강보험과 의료급여(극빈층에 국가가 세금으로 지원하는 의료비) 등 국가 의료재정이 축나지만, 의료당국이 회수하는 금액은 미미합니다.

실제로 건보공단의 '불법 개설기관 환수 결정 및 징수현황' 자료를 보면 2009년부터 2022년까지 14년간 사무장병원 등이 부당 청구해서 타낸 요양급여액 중 공식 조사와 확인을 거쳐 환수 결정한 금액은 3조3천415억 원(불법 개설기관 1천672곳)에 달했지만, 징수 금액은 2천186억 원(징수율 6.54%)에 불과했습니다.

이렇게 사무장병원 등이 건보재정을 갉아먹는 등 폐해가 심각해 건보공단도 불법 개설 의료기관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해 지속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체 수사권이 없어서 역부족입니다.

그렇다 보니 일선 경찰에 사무장병원에 대한 수사를 의뢰할 수밖에 없는데, 경찰은 보건의료 전문 수사 인력이 부족한 데다 다른 주요 사건에 밀려 수사가 평균 11개월을 넘기면서 장기화하기 일쑤입니다.

건보공단이 이미 사무장병원 등에 지급한 진료비를 환수하지 못해 재정 누수가 가중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까닭입니다.

이를테면 건보공단은 80∼90대 연령의 고령 의료인을 고용해 사무장병원과 사무장약국을 설립, 운영한 A 연합의원과 B 약국을 적발해 2020년 12월 중순 정식으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약 11개월이 지난 2021년 10월 말에야 수사 결과를 통보받으면서 불법으로 빼내 간 요양 급여비 2억여 원을 제때 환수 조치를 하지 못했습니다.

건보공단은 특히 수사 권한이 없다 보니 사무장병원으로 의심돼 행정조사에 들어가더라도 제대로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힙니다.

자금흐름과 계좌를 추적할 수 없는 데다, 공범으로 추정되는 법인 임원과 전직 직원 등 직·간접 관련자를 직접 조사할 수 없어 혐의 입증에 한계를 노출하는 게 빈번합니다.

건보공단은 불법 개설기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자체 수사권을 확보하려고 현장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건보공단 임직원에게 특별사법경찰권(특사경)을 부여하는 법을 입법화하려고 애쓰지만, 국회 관문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사경은 특수한 분야의 범죄에 대해 통신사실 조회와 압수수색, 출국 금지 등 경찰과 같은 강제 수사권을 지니고 수사하는 행정공무원을 말합니다.

건보공단은 불법 개설기관 단속에 필요한 자원을 가진 건보공단 임직원이 특사경으로 활동하면 신속한 수사 착수와 종결로 연간 약 2천억 원의 재정 누수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와 별도로 건보공단은 불법 개설기관의 부당이득금에 대한 징수율을 높이고자 올해 6월 28일부터 '은닉재산 포상금제'를 도입해 불법 개설기관이 숨긴 재산을 신고하면 20억 원 이하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행정조사 단계에서 확인된 불법 개설기관의 재산을 검찰 기소 시점에 즉시 압류, 재산처분 행위를 사전에 막아 환수하고 압수 등의 경험이 많은 수사관 경력직원을 배치해 현장 징수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불법 개설기관이 재산을 빼돌리지 못하게 '사해(詐害)행위 취소소송'의 대상과 은닉재산의 종류를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사해(詐害)행위는 채무자가 은닉·매매·증여 등의 방법으로 자기 재산을 줄여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어렵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경우 민법 제406조에 따라 채권자는 법원에 이 재산을 다시 채무자 명의로 돌려놓아 달라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이를 사해행위 취소소송이라고 합니다.

나아가 불법 개설기관 체납자의 인적 사항을 공개하고 신용정보원에 체납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회적 압박을 통해 자진 납부하도록 유도할 계획입니다.

유영규 기자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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