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헬렌 토마스’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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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현역 작가로 남고 싶다는 고 박완서 작가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대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지만 마지막까지 현장에 남아 있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잔잔한 전율을 일으키며 마음에 새겨졌는데 지금도 한번씩 그때의 설렘이 떠오른다.
인터뷰에 응했던 한 저널리스트는 항상 부족한 인력난만 탓할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넓은 안목을 가진 선배 그룹을 현장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당사자의 각성과 조직문화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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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현역 작가로 남고 싶다는 고 박완서 작가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대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지만 마지막까지 현장에 남아 있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잔잔한 전율을 일으키며 마음에 새겨졌는데 지금도 한번씩 그때의 설렘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작가의 바람을 다시 생각할 기회가 생겼다. 알고 지내던 언론인 한 명이 관리자 역할을 마치고 다시 현역으로 돌아온 것을 최근 보았기 때문이다. 지역 지상파에서 보도국장을 지냈던 기자가 다시 현역 기자로 뉴스 리포팅을 하는 것을 본 순간, 신선했다. 또 반가웠다. 지역방송 조직에서 보도국장을 역임했던 보직자가 현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글을 쓰는 신문과 달리 특히 방송에서 뉴스룸에서 의사결정권자 역할을 수행했던 언론인이 다시 현역으로 돌아와 활동하는 경우를 만난 기억이 내겐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 언론계에서는 백발이 성성한 ‘70대 대기자’의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제도의 문제도 있겠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문화’의 문제 때문에 그렇다. 한국 언론계의 경직된 고용시스템, 엄격한 기수 문화, 출입처 제도, 상명하복의 뉴스룸 분위기 등이 대기자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방해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가령 출입처 시스템을 통해 기사를 생산하는 한국 언론계에서 보도국장을 지낸 기자가 다시 현역으로 돌아올 경우 한참 후배들인 동료 기자들은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출입처 관계자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보직에 있다가 현장으로 돌아가면 ‘저 사람 물먹고 돌아 왔구나’라고 인식하는 게 보통이다. 또 언론사 내 직책을 능력과 동일시하다 보니 간부직을 맡지 않고 현장경험을 쌓아 관록 있는 대기자가 되겠다는 저널리스트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문화들이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언론사가 대기자(언론사에 따라 선임기자, 전문기자라는 표현을 쓰는 곳도 있다) 제도를 논의하고 시범적으로 도입했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실패하게 만든 이유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50여년간 백악관을 출입하며 ‘전설의 백악관 여기자’로 불렸던 헬렌 토마스 같은 대기자를 만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대기자 제도는 오랜 경륜과 경험에서 오는 통찰력으로 품질 높은 기사를 생산할 수 있는 좋은 방안 중 하나다. 추락해가는 한국 저널리즘의 신뢰도를 높이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당장 현실적으로는 부족한 제작인력을 보충해 줄 효율적인 인력 활용 방안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전국의 지역방송을 대상으로 시사보도 프로그램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을 때 확인한 사실인데, 언론사 조직에는 의외로 ‘뒷방 늙은이’들이 많았다. 일찌감치 관리자의 길로 들어서며 현장 욕심을 없앤 보직자도 있었지만 한국 언론계 풍토 때문에 되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보직자도 있었다. 인터뷰에 응했던 한 저널리스트는 항상 부족한 인력난만 탓할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넓은 안목을 가진 선배 그룹을 현장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당사자의 각성과 조직문화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엄격한 기수문화에서 기인하는 기자와 에디터(보직자) 간의 위계 문화를 탈피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보직자의 현장 행이 더 많아지기를, 부디 내가 본 지역방송 보도국장의 현역 복귀가 좋은 선례로 정착하기를 희망한다.
한선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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