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 한 달 만에…광주비엔날레 박서보상 폐지가 남긴 것들

노형석 2023. 5. 1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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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과 스밈
지난달 9일 광주 용봉동 비엔날레 전시관 앞에서 대구지역 젊은 작가들이 박서보 예술상 폐지 펼침막을 펴들고 2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다. 이들의 시위에 동감한 광주 지역 미술인들이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일일 시위에 돌입하고 지역 여론도 부정적으로 돌아서면서 그뒤 한달만에 박서보 예술상은 폐지되는 운명을 맞았다.

“지난해 2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미술행사라는 광주비엔날레가 원로 모더니즘 작가 박서보의 예술상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졌어요. 현장 미술인들끼리 연대해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시대 살아 숨 쉬는 시각예술을 다루는 축제인 비엔날레의 본질을 완전히 거스르는 상이었으니까요.”

대구 지역 미대 졸업반인 청년 작가 박소현(26)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지난달 6일 저녁 비가 내리는 가운데 광주시 용봉동 비엔날레 전시관 앞에서 열린 광주비엔날레 14회 개막식 행사장에 들어가 박서보 예술상 1회 시상 때 기습 시위를 벌인 주역이다. 그는 대구에서 함께 온 그의 동료 2명과 함께 비엔날레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상을 폐지해야 한다는 노란색 유인물을 뿌리고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그들 말고도 서울과 울산에서 온 청년 미술인들도 현장에서 펼침막을 드는 등 기습시위에 동참했다. 이들은 서로 얼굴을 모르고 몇달 전부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으로만 교감해온 사이였다.

어쨌든 시위는 성공적이진 못했다. 곧 들이닥친 현장 요원들에 의해 제지를 당했고 펼침막 내용을 온전하게 개막식 현장에 전달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들의 기습시위는 그동안 잠잠했던 광주 지역 예술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박 작가는 말한다.

“박서보 작가는 20세기 초중반 수명을 다한 근대미술 흐름인 모더니즘 추상그림을 그리며 한국 제도권 화단에서 군림했던 인물입니다. 1980년대 이후 낡은 모더니즘을 전복시키면서 컨템포러리란 이름 아래 새롭게 시작된 동시대 현대미술 컨템포러리의 미술축제에 모더니즘 원로 작가가 얼굴을 내미는 게 말이 안된다는 거죠. 이런 내용의 유인물을 뿌리면서 시위를 하다 광주의 미술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모더니즘과 컨템포러리 미술의 이질성에 대한 저희의 생각에 대해 적극적으로 교감해 주셨어요.”

실제로 김병택 광주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 회장은 다른 지역에서 상을 반대하는 몸짓을 보이기 위해 일부러 찾아 온 청년 작가들과의 만남이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고 증언했다. 유신독재시절 정권의 하명으로 민족기록화를 제작했고 광주항쟁 당시 관변예술단체 간부로 침묵했던 박서보 작가의 과거 이력이 광주정신과 걸맞지 않는다는 대의명분을 넘어서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예술사적 논리를 전개하면서 지역 미술계에서 박서보 상 폐지운동을 본격화하는 기폭제 구실을 했다는 말이었다.

4월6일 기습시위 이후 각성한 광주 미술인들은 상 폐지를 위한 시민예술인 모임을 곧장 꾸렸다. 사흘 뒤인 9일 광주 미술인과 다른 지역 청년미술인들이 함께 비엔날레 전시관 앞에서 연대 시위를 벌였고 시위는 이달 10일까지 날마다 이어졌다. 한달 사이 미술계 논란이 커졌고, 지역 여론도 부정적으로 돌아서자 지난 10일 비엔날레 재단 쪽은 작가와 합의해 박서보 상 폐지를 발표했다. 제도권 시각으론 전례 없는 불상사지만, 박소현 작가처럼 현장에서 활동하는 진보적 전위적 성향의 청년미술인들 눈으로 보면 아웃사이더들이 한국 미술판 제도를 뒤바꾼 전례 드문 쾌거가 되었다.

구시대적 모더니즘을 업고 90줄 나이에도 실세로 군림하는 제도권 원로작가가 광주정신을 안고 태어난 비엔날레에 수상 권력을 쥐고 개입한다는 데 대한 공분이 컸다고 대구에서 온 박 작가와 다른 익명의 시위 참여 작가들은 털어놓았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는데 공감해 서로 그냥 연락하고 모였다”고 입을 모았다. 박 작가는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 제도를 바꾸겠다고 미술가들이 직접 행동에 뛰어들어 성과를 거둔 사례를 들은 바 없는데 이번에 굉장히 의미심장한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국제미술잔치에서 국내외 권위자들의 심사를 거쳐 첫 시상식을 한지 한 달 만에 주위 반발로 상 자체를 없앤 것은 블랙코미디 같은 촌극이다. 광주항쟁의 저항 정신과 예술의 동시대성이 바탕에 깔린 비엔날레 정체성을 숙고하지 않고 이름값 명예에만 휘둘린 노작가의 욕망과 그의 욕망이 묻은 후원금을 덥석 받아 상을 만든 재단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단과 재단 이사회 쪽은 상 폐지 발표 뒤로 책임을 지는 어떤 행보도 보이지 않고있다.

다른 지역 청년 미술가들이 비를 맞으며 선도한 개막식 시위를 보고서야 심각성을 깨치고 따라나선 광주 미술인들도 책임 공방을 피해가지 못한다. 지난해 상 제정 당시 일부 비판의 목소리가 있기는 했지만, 지역 미술계 인사들은 대부분 ‘그들만의 리그’란 식으로 방관하며 별다른 제동을 걸지 않았다. 외국 미술계에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 ‘왜 이런 상황까지 방치했느냐’란 반응들이 나왔다는 전언도 들린다.

한국 비주류 미술운동 역사에서 의미심장한 성과로 남게 될 박서보 예술상 폐지 파동은 권위 없이 상금만 앞세운 상, 미술계 유력자의 이름을 딴 상을 남발해온 한국 미술판 특유의 못난 관행이 수십년째 되풀이되는 데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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