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콕에도 그랜드슬램”···2023년, 천재 안세영의 꿈이 시작된다[창간 특집 인터뷰]

김은진 기자 2023. 5.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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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이 지난 8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스포츠경향 창간 18주년을 기념해 인터뷰하며 태극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한국 배드민턴 에이스 안세영(21)은 중학교 때 태극마크를 달고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뛰었다. 만 15세, 역대 배드민턴 최연소 국가대표로 등장한 이후 꾸준히 성장해 한국 여자단식의 기둥이 되었다.

한국 배드민턴은 여자 단식에서 방수현 이후로 국제종합대회 우승이 없었다. 올림픽은 1996년 애틀랜타에서, 아시안게임도 1994년 히로시마에서 방수현이 금메달을 딴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명맥을 이으려 많은 스타들이 도전해 세계무대 상위권에서 활약했지만 금메달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물러났다. 선배들이 이루지 못한 그 꿈은 이제 안세영의 꿈이 되어 있다.

안세영은 타고난 셔틀콕 재능에 ‘천재’라고 불리며 등장했다. 그러나 목표를 설정하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쉴 때는 뭐 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말문이 막히는 ‘노력형 선수’다. 패배를 하면 다시 일어서 도전하고 또 도전해 결국 이겨내는 ‘오뚝이’ 같은 선수 이기도 하다.

2023년은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다. 한국 스포츠의 모든 시선이 쏟아지는 이 대회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노메달,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는 여자복식 동메달 1개를 따는 데 그쳤던 한국 배드민턴이 명예 회복에 도전하는 대회이기도 하다.

안세영은 그 중심에 서 있다. 지난 3월 배드민턴 오픈 대회 중 최대 메이저대회인 전영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해 1996년 방수현 이후 27년 만에 한국에 금메달을 안기며 2023년을 힘차게 출발했다.

스포츠경향은 창간 18주년을 맞이해 안세영과 함께 꿈에 대해 이야기 해 보았다. 중국 쑤저우에서 지난 14일 시작된 세계혼합단체배드민턴선수권대회(수디르만컵)를 준비하기 위해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훈련 중이던 안세영은 “모든 대회를 다 한 번씩 우승하는 기록을 남겨 모두가 ‘배드민턴’ 하면 안세영을 떠올릴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2023년은 그 출발점이다.

■도쿄올림픽 그 이후

안세영은 2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단식 8강 탈락 뒤 펑펑 울었다. 3년 동안 하루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독하게 훈련했지만 또 같은 상대, 천위페이(중국)에게 져 4강 진출에 실패한 만 19세의 안세영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되는 거면,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거겠죠?”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엄마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고 하셨는데 아직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계속 도전해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던 안세영은 국제무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가로막혔던 가장 큰 벽을 이제는 훌쩍 넘어섰다.

천위페이는 안세영에게 ‘천적’이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1회전에서 그를 만나 0-2로 져 탈락했고 첫 올림픽에서도 8강에서 무릎 꿇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달라지고 있다. 무려 7전 전패로 밀리던 안세영은 지난해 7월 말레이시아 마스터즈 대회에서 처음으로 꺾은 천위페이를 이제는 계속 꺾고 있다. 올해는 1월 말레이시아 오픈 준결승에서 2-1로 이긴 뒤 3월말 전영오픈 결승에서 2-1로 꺾고 우승한 데 이어 4월말 아시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다시 만나 2-1로 승리했다. 최근 3연승을 거두며 상대전적을 4승8패로 만들었다.

안세영은 “아시안게임 첫판에서 그 선수에게 졌기 때문에 올림픽에서도 분명 만나겠다 생각해서 진짜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운동했는데도 이기지 못하니 그때는 눈물이 나왔다”며 “이제는 그런 생각을 마음에서 떨쳐낸 것 같다. ‘천적’이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천적을 연파하면서 안세영은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되었다. 코트 안에서 가장 필요한 무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안세영은 “전에는 나를 못 믿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열심히 훈련하면서 왜 그런 너 자신을 못 믿느냐’고 할 정도로 자신감이 없었다. 천위페이를 한 번, 두 번 이기면서부터 그 부분이 달라졌다. 하면 진짜 된다는 것을 느꼈기에 이제 못 이길 선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앞으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도 그런 선수를 이겨야 내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태극마크 6년째, 아픔과 영광을 여러 번 경험하며 성장한 안세영은 자기관리의 노하우도 얻었다. 안세영은 “전에는 그저 무조건 많이 뛰고 좋다는 것은 다 했는데 경험을 통해서 이제는 내게 필요한 것을 확실히 알고 운동한다. 이제는 전처럼 무식하게 운동하지는 않는다”고 웃었다.

한국 여자 배드민턴의 간판 안세영이지난 8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스포츠경향 창간 18주년 기념 인터뷰를 하며 미소짓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전영오픈 그 이후

전영오픈 우승은 안세영의 많은 것을 바꿔놨다. 가장 큰 무대에서 천적을 이긴 자신감과 함께 ‘방수현 이후 처음’이라는 부담과 책임도 현실로 안겨주었다. 안세영이 따낸 금메달은 방수현 이후 전재연, 성지현 등 세계랭킹 상위에 랭크된 강자들이 도전했어도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중학교 3학년에 성인 선수들을 제치고 국가대표에 선발된 뒤 언젠가 여자단식의 세계 제패 꿈을 이뤄주리라 했던 모두의 기대가 전영오픈 우승으로 진짜 거대한 가능성으로 바뀌었다.

커진 기대에 체감하는 영광은 안세영에게 어느 정도 부담과 책임감을 키워주고 있다. “언젠가는 내리막길을 탈 것이라는 사실이 지금 가장 큰 고민이다. 그때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느라 잠을 못 잘 때도 있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안세영에게는 훌륭한 ‘멘토’가 있다. 지난해 은퇴하고 지도자로 변신해 현재 국가대표 여자단식 선수들을 지도하는 성지현 코치다. 안세영 바로 전에 여자단식의 가장 큰 스타였던 성지현 코치야말로 ‘방수현 이후 처음’이라는 부담을 선수 생활 내내 안고 도전했던 주인공이다.

안세영은 “그런 부담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데 성지현 코치님이 많이 얘기해주신다. ‘네가 가져가야 할 숙제는 맞지만 그걸 생각하고 있기에는 할 일이 많다’고 ‘하루씩, 한 게임씩만 생각하면서 해라.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거기에 빠져들지 말라’고 하셨다”며 “부담이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올해 목표는 내가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는 경기를 하자는 것인데 잘 되고 있다. 나는 멘털이 강한 편이다”고 웃었다.

■내 꿈은 셔틀콕의 그랜드슬램

안세영은 “‘배드민턴, 하면 안세영’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모두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는 꽉 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성실함과 함께 길이 남을 성적이 동반돼야 한다면 올해, 2023년이 그 출발점이다.

안세영은 “테니스에서 4대 메이저대회를 다 우승하면 그랜드슬램이라고 부르듯이, 나도 그럴 수 있을만한 타이틀을 갖게 되는 것이 최종 목표다. 모든 급 대회를 전부 우승해보는 것이 꿈인데 이제 가장 큰 3개 대회만 남았다”고 말했다.

배드민턴에서 오픈 대회는 ‘BWF(세계배드민턴연맹) 월드투어’라는 이름으로 슈퍼 100, 300, 500, 750, 1000시리즈까지 5개 등급으로 나눠 열린다. 그 중 가장 큰 대회인 1000급 대회 전영오픈을 우승해 만 21세에 전부 우승한 안세영은 지난해 ‘왕중왕전’인 월드투어파이널까지 제패했다. 이제 세계(개인)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그리고 올림픽이 남았다.

한국 배드민턴 역사상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를 모두 석권해본 선수는 남자복식의 박주봉-김문수, 짝을 바꿔 혼합복식을 모두 제패한 김동문뿐이다. 방수현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993년 영국 버밍엄 대회 준우승이 최고 성적으로, 단식에서는 이 3개 대회를 모두 우승해본 선수가 아직 없다. 안세영의 꿈은 한국 배드민턴 최초의 꿈이기도 하다.

그 중 2개 대회가 올해 열린다. 8월 덴마크에서 세계선수권대회가, 9월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내년 열릴 파리올림픽을 위한 올림픽 랭킹포인트 레이스는 5월에 시작됐다. 한꺼번에 다 이루기는 어렵겠지만 하나씩 깨 나갈 출발점이 바로 2023년이다.

안세영은 “올림픽 레이스가 시작됐으니 어느 정도 안정권을 만들어놓은 뒤 아시안게임 전에 있는 세계선수권 대회를 먼저 목표로 하려고 한다. 다가오는 것들을 하나씩 잘 해치워나가는 것이 목표”라며 “갈 길이 멀다. 금메달은 누구나 원하는 목표로 삼고 열심히 하지만, 나는 훈련을 많이 할수록 자신감이 그만큼 같이 생긴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무기인 것 같다”고 웃었다. 한국 배드민턴의 역사를 향한 안세영의 발걸음이 시작됐다.

진천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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