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없는 망언은 없다[오늘을 생각한다]
지난 3월 30일,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그는 공항에서 바로 체포됐다. 2018년 기무사 계엄령 문건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검찰로부터 소환 요구를 받았지만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서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검찰은 신병 확보를 위해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지명수배를 걸었다.
5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그의 모습은 꽤 여유로워 보였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기자들과 문답을 나누는가 하면, 수갑도 차지 않고 검찰과 팔짱을 끼고 걸어갔다. 왜 귀국하지 않고 도주했냐는 기자의 질문엔 “도주한 게 아닌 거죠. 귀국을 연기한 거죠”라고 대답했다. 5년간 도망 다닌 지명수배범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고, 비난이 쏟아졌다. 차라리 이러저러한 이유로 수사에 응할 수 없었다고 자기 항변이라도 했다면 그만한 욕은 먹지 않았을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건 다 옛말이다. 말의 무게가 깃털보다 가벼운 세상이다. 마이크를 쥔 이들이 듣는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말에 달릴 책임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하는 것인지, 둘 다인지 알 수 없다. 이상한 말을 많이 할수록 유명해지고, 지지자가 생기며, 그 유명세가 다시 말에 무게를 더해주는 시대다.
얼마 전 모 의원이 코인 투자로 거액을 벌었지만 재산 신고를 하지 않았고, 도리어 가상 자산 과세 유예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의원은 ‘내돈내투’라고 항변하면서 검찰의 정치 수사를 의심했다. 동료 의원은 방송에 나와 그가 구내식당 밥을 자주 사먹는 검소한 사람이라며 코인을 정식 자산화하는 일은 여당도 반대하던 사안이라고 감쌌다.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돈 봉투가 오갔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같은 당 의원들은 밥값, 차비도 안 되는 액수라는 말부터 뱉었다. 국민의힘에서는 최고위원 2명이 연일 5·18민주화운동과 제주4·3사건을 폄훼하는 말을 하다가 윤리위에 회부됐다.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지칭해 비속어를 사용했는가에 대해 논쟁이 불거지자 그 참모들이 기자회견까지 열어 다시 듣기를 호소하던 장면은 말할 것도 없다.
몰라서, 실수라서 이런 말이 터지는 게 아니다. 이상한 말들은 곧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돼 재생산된다. 그 논리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고, 세력을 이룬다. 다 자기 말에 실린 힘이 프레임을 짜고 세를 모으기에 충분하다는 걸 알고 말을 뱉는다. 공인의 망언과 실언은 욕먹는 것보다 남는 게 많다는 계산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들이 교묘하게 공론장을 사유화하는 사이 세상은 갈수록 어지러워질 뿐이다.
민주주의의 권력은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힘이다. 국민이 빌려준 마이크를 제 것인 양 착각하는 이들이 민주주의를 삼류 저질 촌극으로 무너뜨리며 공론장을 우습게 만든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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