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었다’는 기이한 해명[꼬다리]

2023. 5. 17.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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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왜 기자가 되고 싶냐’는 것이었다. 매번 이런저런 답을 했지만 늘 아쉬웠다. 뻔히 놓인 모범답안을 미만한 내가 알지 못해 헛소리할까 두려웠다. 질문의 능선을 넘고 나면 ‘기자’라는 업의 본질이 놓여 있을 것 같았다. 일을 해본 적이 있어야 핵심을 장악할 텐데, 지원자가 어떻게 알겠느냐고 되묻지 못한 채 기자가 됐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5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중앙윤리위원회 참석에 앞서 입장 표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은 딱히 답이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언론은 민주사회의 ‘제4부’라지만, 민주 정체의 개념 규정도 실은 또렷하지 않다. 면접장 질문은 ‘당신 생각에 기자는 뭐하는 직업 같은가’에 가까웠던 것 같다. “저는 ‘거짓말’을 싫어합니다.” 책임 있는 권력자의 답을 듣고, 진위를 따져 묻겠다는 한 지원자의 답변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각자 언론관이 달라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최소강령이라고 여겼다.

몇 년새 그 생각은 위기를 맞았다. 정치인들은 위기 때마다 거짓말을 했고, 거짓임이 밝혀지면 또다시 거짓 해명을 내놨다. 지지자들은 ‘사실 보도’를 믿지 않았다. 수사 내용을 보도하면, ‘검찰이 기획수사를 했다’는 식으로 고개를 돌렸다. 외려 검찰과 수사 내용을 알린 언론을 공격했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둘러싼 의혹은 한 정점이었다. 당선 전 윤석열 대통령 관련 의혹을 다룰 때도 비슷했다. 열정적인 시민들은 세상을 쪼갤 듯 여론전을 치렀다.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601일부터 801일 사이 하루평균 22건의 거짓말을 했다고 분석했다. 영국 옥스퍼드사전이 2016년 선정한 ‘올해의 단어’, ‘포스트 트루스(post-truth·탈진실)’는 다들 아는 말이 됐다. 동료 기자들과 술을 마시며 여러 번 한탄했다. 거짓 해명을 어디까지 검증해야 하나. 거짓말이 너무 많아, 거짓말이라는 지적의 효용이 사라진 것 같았다.

한 선배의 말이 위로가 됐다. 해명을 내놓는 건 거짓말인 게 들키면 큰일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겠냐고. 해명조차 거짓이었다는 걸 밝혀내면 더 큰 비판을 받지 않겠느냐고 그는 말했다. ‘거짓 해명’도 결국은 ‘거짓말해선 안 된다’는 신화적 명제의 자장 안에 있노라고, 그렇게 마음을 다졌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공천이나 최고위원회의 행보와 관련해 전혀 그런 언급을 한 적이 없다는 걸 오늘 다시 밝힌다. 제 모든 것을 건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가 징계 심의를 연 지난 5월 8일, 태영호 최고위원이 윤리위에 출석하며 한 말을 듣고는 다시 아득해졌다. 그가 보좌직원들을 모아놓고 ‘이 정무수석이 공천 문제를 거론하며 한·일 관계 옹호 발언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발언한 음성파일이 보도돼 파장이 일자 내놓은 해명이었다.

거짓말했다고 ‘자폭’할 만큼 숨기고픈 뒷얘기가 있을 거란 추정이 정가에 돌았다. 합리적 의심이지만, 어쩐지 찜찜하다. 영화 <타짜>는 “구라치다 걸리면 피 보는 거 안 배웠냐”는 아귀의 물음으로 절정을 맞는다. 거짓이 판친다는 도박판의 룰이 그러하다. “내 말이 거짓말이라는 데 모든 것을 건다”는 고백이 집권당 지도부 입에서 나오는 세상은 어떠한가. 그는 끝내 최고위원에서 사퇴했지만, ‘거짓말이었다’는 해명은 그대로 남았다. 콕 집어 말은 못 하겠지만, 뭔가가 무너져 내린 느낌이다.

조문희 정치부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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