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집 『문명의 바깥으로』 나희덕 “문명의 위기 및 전환 시대 시 쓰기는 공동체 존재들과의 우정”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3. 5. 17. 07: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평론가보다는 시인으로서 정체성을 더 생각해온 데다가 개별 평론도 아닌 특집 기획에 들어간다는 말에, 그는 적잖이 부담이 됐다. 더구나 젊을 때부터 비평을 가급적 쓰지 않으려 피했던 그가 아니던가. 왜냐하면 현장비평을 시작하면 시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있고, “비평의 칼”을 휘두르면 결국 그 칼이 자신을 겨눌 수밖에 없다는 인과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시에 나타나는 생태시 경향에 대한 비평을 100매 정도로 써 달라.” 몇 해 전, 그는 한 문예지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다. 잠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결국 쓰겠다고 대답했다. 좋아, 이번 기회에 이 주제에 대해서 한번 공부해 보자. 다른 시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천천히 따라가면서 공부를.

‘공부하는 시인’(신형철 평론가)인 그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시들을 읽어나갔다. 시의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서 시적인 언어나 요소들을 연관 지어서 보려고 했고, 시에 담겨 있는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시와, 시인의 마음과, 시와 시인과 담론 사이에서 어른거리는 어떤 자장들이 들어왔다. 시를 공부하고 시인의 마음을 읽으려한 결과를 담아서 2020년 문예지에 「‘자본세’에 시인들의 몸은 어떻게 저항하는가」를 발표했다.

“평론가로서보다는 시인으로서 시를 읽으면서 그 시인이 시를 쓸 때의 내면 상태, 그 시가 시작될 때의 느낌을 주로 생각합니다. 마치 시인 옆에서 관찰하듯이, 그 과정에 참여한다는 느낌으로, 최종적인 텍스트보다는 시인의 시적 과정을 바라보죠. 비평가와 텍스트를 대하는 방식에서 조금 차이가 날 것 같아요.”

중견 시인이자 평론가, 에세이스트 나희덕이 지난 20년간의 비평과 연구, 산문을 모은 시론집 『문명의 바깥으로』(창비)를 들고 돌아왔다.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후 20년 만이다.

시론집은 크게 근대문명의 위기와 생태문명으로의 전환 속에서 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쓴 주제론인 제1부와, 문학적 스승과 동료가 돼 준 시인들에 대한 시인론의 2부와, 백석과 김수영, 김종삼 등 자신의 시 스승들에 대한 시인론인 3부로 이뤄졌다.

참고로, 그는 처음 출판사로부터 시론집의 제목으로 『문명의 바깥에서』를 제안 받았지만, 최종적으로 『문명의 바깥으로』로 정했다. 문명의 바깥이나 자본주의 바깥이란 게 과연 가능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울러 “자본주의 문명 속에서 우리의 삶과 의식은 한시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문명의 바깥을 향해 눈을 두고 나아가자는 다짐에서”였다.

백석문학상과 대산문학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시단의 기둥으로 성장한 나희덕은 한국 현대시에서 무슨 표징을 읽은 것일까. 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어떻게 변화해 왔고, 앞으로 어디를 향해 갈까. 나 시인을 최근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책머리에」에서 20년 만에 시론집을 펴내는 사이 “시도, 시에 대한 생각도 적지 않는 변화를 겪었다”고 했습니다.

“처음 시를 공부하고 쓸 때는 시 자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시의 소재와 주제, 방법에 대한 미학적 질문을 훨씬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오히려 시를 통해서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진 것 같아요. 시를 통해서 시인이 이 세계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더 많아졌어요.”

―읽기 쉽지 않은 요즘 평론집과 달리, 잘 읽히면서도 시적이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기본적으로 담론과 무관하게 쓸 수는 없지만, 담론과 실제 작품들의 거리를 최대한 좁혀서 쓰려고 했습니다. 주제와 연관된 책들을 읽으면서 담론과 텍스트 사이의 연관성을 생각해 보려고 했고, 되도록 간결한 문장으로 전달력을 높이려고 애를 썼고요.”

시론집을 여는 글 「자본세에 시인들의 몸은 어떻게 저항하는가」는 문명의 위기와 전환 시대를 사는 시인들이 어떤 의식을 토대로 어떻게 저항하고 있는지를 백무산과 김혜순, 허수경의 시를 통해서 살펴본다.

“이 세 시인들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대립구조 속에서는 다른 경향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과 죽음, 노동과 계급, 문명과 자본주의, 전쟁과 폭력 등에 대한 지속적 탐구와 시적 실천을 해왔다는 점에서 친연성을 지닌다. 자본세의 디스토피아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그들의 몸은 언어라는 가장 무력한,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로 맞서 싸우고 있다.”(17쪽)

백무산 시가 최근 계급적 당파성을 넘어서 생태적 사유로 한결 풍부해졌다고 평가하고, 주체의 목소리와 타자의 목소리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겹쳐지는 김혜순 시의 ‘되기’적 특징에 주목하기도 한다.

―왜 백무산과 김혜순, 허수경의 시를 통해서 근대문명의 위기나 생태문명으로 전환 징후를 읽어내려 한 것인가요.

“노동시인으로 널리 알려 있는 백무산은 리얼리즘 계통에서 노동뿐 아니라 자본 문제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사유를 해온 시인입니다. 반면, 김혜순은 모더니즘 계열에서 병들고 죽어가는 존재들의 고통을 직접 몸으로 담아내는 시 쓰기를 치열하게 해 오신 분이고요. 얼핏 보면 문학적으로 달라 보이지만, 문명적 상황에서 고통 받고 디스토피아를 살아낸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어떤 한 진영에 속하기보다는 대립적인 문학적 입장이나 관점들 사이를 오가며 공통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데 관심을 가져왔어요. 지금은 문명적 위기라는 문제에 그 생각들의 교집합이 있는 듯해요. 제 시론은 비평적 자의식보다는 공부와 애도의 기록으로서 쓰여졌고, 텍스트를 선정할 때 제 주관적 편애가 작용을 했지요. 두 시인은 제가 깊이 영향을 받고 존경하는 분들이거든요.”

―김혜순의 시가 특히 시론집의 글 여러 곳에 나옵니다. 김혜순은 시인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젊었을 때는 김혜순 시인이 여성적 글쓰기의 치열한 전범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성 시인으로 자신의 몸과 글쓰기를 연결 지어서 열어가는 데 배운 바가 많았어요. 최근에는 젠더적 관점만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삶과 죽음, 영혼의 세계까지 넘나들고 감싸 안는 글쓰기를 하시는 것 같아요. 용광로처럼 강력한 에너지와 폭발력을 갖고서 모든 걸 녹여내는 어떤 힘이 느껴지죠. 저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경지를 늘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지요. 제 시 쓰기의 기질이나 방식은 좀 다르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의 경우 존재론적 전환을 몸으로 수행하는 방식보다는 타자에 대한 공감을 좀더 사회적인 차원에서 풀어내는 편이지요.”

「인간―동물의 관계론적 사유와 시적 감수성」은 2010년대 이후 한국 현대시에 나타나는 동물 담론의 경향이나 특징 등을 들여다보는 글. 이장욱, 강성은, 이근화 시인 등 젊은 작가들의 동물시들을 주로 다룬다.

―‘식물성의 시인’으로 불릴 정도로 식물적 사유를 많이 해왔는데, 동물권이나 동물시들을 살펴본 글이라서 눈에 띄는데요.

“문예지들을 꾸준히 읽어온 편인데, 2010년대 이후 시에서 동물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 변화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이전의 동물시들에서 동물은 단순히 소재로 차용되거나 시적 화자를 대변하는 비유나 상징으로 나타났다면, 최근에는 독립된 행위 주체로서 동물을 인식하고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 인간과 동물 간 새로운 관계론을 모색하고 있죠. 게다가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시인들도 많아지고 있고, 비거니즘을 표방한 잡지 『물결』을 발간되고 있지요.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시인들도 적지 않고, 황인숙과 이민화 시인처럼 일상을 고양이를 위해 살아가는 경우도 있고요. 자크 데리다나 조르조 아감벤의 동물 논의를 읽으면서, 동물에 관한 한국 시인들의 새로운 감수성을 정리해 본 거죠.”

「김종삼의 ‘라산스카’ 시편들에 대하여」는 김종삼의 시 가운데 아직도 풀리지 않고 의문으로 남아 있는 「라산스카」라는 제목을 가진 시 여러 편을 분석한 비평이다. “하늘 속 맑은/ 변두리/ 새 소리 하나/ 물방울 소리 하나/ 마음 한 줄기 비추이는/ 라산스카”(『문학사상』, 1983년 7월호)와 “집이라곤 비인 오두막 하나밖에 없는/ 초목의 나라// 새로 낳은/ 한 줄기의 거미줄처럼/ 수변의/ 라산스카”(시집 『평화롭게』, 1984년) 등 여러 시편에 보이는 라산스카 정체는 과연?

―라산스카의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진진하군요.

“아직 정해진 답이 없고, 어느 것 하나를 정설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김종삼 시인이 알쏭달쏭하게 남겨놓고 갔죠. 먼저 원본 확정 과정부터 조금 논란이 있어요. 판본이 여러 개죠. 문예지에 발표한 시하고 시집에 실린 시가 다르고, 문예지에 발표는 했는데 시집에는 안 실린 경우도 있고, 한 편의 시를 두 개로 쪼개서 실은 것도 있고요. 라산스카를 일반적으로는 성악가의 이름이라고 하지요. 김종삼 시인이 생전에 음악 피디를 했기에 그의 시를 음악과 연관시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다른 의견으로는 라산스카를 시인이 꿈꾸는 이상향, 근원적인 장소나 돌아갈 본향을 가르키는 대명사로 읽기도 하고요. 시는 어느 쪽으로 읽든지 다 통해요. 그러니까 재미있는 거죠. 저 역시 라산스카가 누구/무엇/어디인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진 않았어요. 이렇게 라산스카라는 기표를 하나의 기호로 확정하지 않고 몇 가지 뉘앙스를 동시에 살려서 읽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에요. 무엇으로 확정하는 순간 신비가 사라지니까요.”

그러면서 시인 김종삼에 대해 “모더니스트로서 노스탤지어를 간결한 음악적 언어로 표현한 시인”이라며 “그에겐 투명하고 슬픈 감수성과 예술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있다”고 했고, 그의 시에 대해선 “읽으면 간결하고 쉬운 것 같으면서도 읽을수록 수수께끼 같은 데가 많다”며 “언어와 언어 사이에 거리가 넓어서 그 사이에서 어떤 음악 같은 것이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평했다.

「길 위에서 부르는 만신의 노래」는 시집 『바리연가집』(2014)에 실린 시들을 중심으로 ‘어린 영혼에게 시의 불꽃을 처음으로 당겨준 시인’ 강은교에 대한 시인론. ‘바리데기’에서 모든 것들의 어머니 ‘만신’으로 된 강은교의 마음을 만날 지도.

―인연의 연쇄 때문인지, 강은교와 그 시들을 보는 시선이 아련한 것 같습니다.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진 않지만, 길 위의 나그네처럼 가끔 만나면 어제 만난 것처럼 얘기를 나눕니다. 강 선생님이 심사 때문에 광주에 오시면 만났고, 제가 부산에 가면 해운대 바닷가에서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죠. 선생님과 기질적으로 다른 것 같으면서도 시인다운 어리숙함이나 인생의 여정이 비슷해서 그런지 남다른 친근감을 느낍니다.”

마지막 「현대시와 공동체」는 1930년대 백석과 1970년대 신경림을 거쳐서 2000년대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공동체적 경향을 살펴본 글이다. 특히 최근 한국시에서 공동체 개념의 확장뿐만 아니라 낯선 화자들의 출현에도 주목했다.

“명료한 목표나 지향이 없기 때문에 집단이 개체를, 중심이 주변을 억압하지도 않는다. 그로 인해 새로운 경향의 시들은 난해하거나 산만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나는 그 우연성이 빚어내는 혼돈의 세계에서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단일한 ‘나’로 존재하는 것을 포기하거나 반납함으로써 새로운 ‘우리’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280쪽)

―최근 공동체적 경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990년대 개인화된 세계로 흩어졌던 시인들이 각자의 밀실에서 글을 쓰다가 다시 공동체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용산참사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용산 참사와 세월호 사고,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등의 사안에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자본주의의 모순과 불평등이 사회적 약자들을 철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죠. 그때마다 재난 현장에 시인들이 모여서 낭독회를 하고, 함께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카페를 만들어 토론을 했어요. 희생자들의 삶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같이 목소리를 내면서 문학적 공동체가 만들어진 거지요. 그 무렵 모리스 블랑쇼, 조르주 바타유 등의 공동체 논의를 철학적 기반으로 삼아 시인들이 공동체에 대한 글을 많이 썼지요. 한국시에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나 필요성이 대두된 시기를 생각해보면 대체로 공동체적 가치나 기반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흔들릴 때 나타났던 것 같아요.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로 인해 농촌 공동체가 붕괴되고 유민 현상이 나타나는 등 민족 공동체 자체의 존립이 부정되던 1930~40년대에 백석이나 이용악 시인 등이 문학 작품을 통해서 공동체적 복원을 시도했어요. 다시 공동체적 요구가 나타난 것은 1970년대 산업화로 인해 농촌 공동체가 파괴되고 도시화로 인한 소외가 발생하면서였지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오면서는 생명 공동체, 비인간까지를 아우르는 ‘퇴비 공동체’ 논의까지 확대되었고요.”

그는 이 대목에서 “적자생존의 자본주의 경쟁체제 속에서 서로를 돌보고 살리는 공동체적 노력이 없으면 이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며 자신의 공동체 경험과 고민의 역사를 털어놨다.

“어릴 때부터 공동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엄마의 직업 때문에 보육원에서 자라면서 공동체적 분위기가 아주 익숙했어요. 개인주의적 감수성이라든지 핵가족 분위기를 잘 느끼지 못하며 성장했지요. 청년기에도 공동체에 끌려서 다양한 공동체를 찾아다녔어요. 의정부 풀무원 공동체, 변산 공동체, 종교적 공동체인 태백 예수원⋯.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이상주의자의 기질 때문인지 원래는 결혼을 하거나 시인이 될 생각이 별로 없었고, 공동체에 들어가 조용한 삶을 살고 싶었어요. 자본주의와 다른 삶의 방식과 속도를 지켜내는 소박한 삶을 꿈꾸었지요. 결국 결혼을 하고 시인이 되었지만,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것도, 해외에 가서도 공동체를 찾아다닌 것도 그런 아쉬움 때문이었죠. 하지만 요즘은 현실적으로 공동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부패하기 쉬운 존재인지를 알게 돼 엄두가 안 나기도 해요.”

중학시절 어느 날, 문학청년이었던 윤리 선생은 교실 칠판에 한국 현대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강은교의 시 「우리가 물이 되어」였다.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우리가 물이 되어」 부분)

강은교의 시는 책 읽기를 좋아하던 중학교 2학년 나희덕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아니 “전율”했다. 선생이 들고 있던 시집을 눈여겨봤던 그는 종로서적에 가서 시집을 샀다. 강은교의 시집 『풀잎』이었다. 시집을 읽고 또 읽었다.

강은교에서 시작된 시 읽기는 고등학교 시절에도 이어져 민음사와 창비, 문지 시선의 다른 시집들로 확대됐다. 교과서 밖의 당대 시들을 비교적 빨리 접촉했고, 교과서나 수업에서 느끼지 못하는 시 읽기의 즐거움을 일찍이 느끼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읽을 만한 시집이 거의 없는데다가 용돈도 넉넉지 않아서, 그는 한 시간씩 버스로 타고 종로서적에 가곤 했다. 시집 코너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방학 내내 시집을 읽었다.

시집을 즐겨 읽던 나희덕은 중3 때부터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예쁜 노트에 자신만의 필체를 만들기 위한 듯, 멋을 부린 글씨로 시 비슷한 글을 쓰고 있었다. 좋은 시를 만나면 필사를 하기도 하고, 시험이 끝난 뒤나 방학 때면 밤늦게까지 시를 썼다. 시인 나희덕의 문학 원점이었다.

“청소년기에 기성세대에 대해 느끼는 분노나 갈등이 많았는데, 그걸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통해 내면으로 삭히는 편이었어요. 당시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이 저를 말이 없지만 조숙한 애어른 같다고 말씀하시곤 했지요. 생각이 많은 애였던 것 같아요. 문학을 비교적 일찍 접한 것이 시인으로서뿐 아니라 저의 인격을 다듬어가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대학 2학년 1학기가 막 시작된 1985년 3월, 그는 학교의 뒷산에 올라가서 뭘 쓸까 하면서 고민했다. 마침 봄이 막 시작될 무렵이어서 땅 속의 얼음이 녹아서 흙에서 더운 김이 올라오고 흙속의 뿌리들이 보였다. 그 흙의 말을 정신없이 받아 적은 시 「뿌리에게」가 태어났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정현종 시인의 시창작론 수업이었다. 정현종은 첫 수업에서 모든 수강생들에게 시를 한 편씩 써서 제출하라고 했다. 시에 대한 코멘트를 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때 정현종이 제일 먼저 읽으라고 하면 나중에 시인이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음 수업 시간, 정현종이 제일 먼저 시를 읽으라고 지목한 사람은 바로 그였다. 학부 시절 시 창작수업 외에 스승을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는 많지 않았다. 졸업한 지 10년 만에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정현종의 강의를 다시 듣게 되었다. ‘가볍고 투명한, 그러나 두터운 삶’의 시인되기를 배웠다.

“선생님의 형형한 눈빛과 감탄하실 때의 표정을 보면 정말 시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인의 아우라가 온몸에서 느껴지는 분이지요. 어디에 메인 것도 없고 별로 욕심도 없으시고, 그 간결한 정신이 바로 천품의 시를 낳는 것 같아요.”

1966년 논산에서 태어난 나희덕은 시 「뿌리에게」로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그녀에게』, 『파일명 서정시』, 『가능주의자』 등을 펴냈다. 18년 동안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으며 광주에서 살았고,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시와 문학의 역할에 있어서 등단 전후인 1980년대와 현재가 어떻게 같고 또 다른지를 잠시 대비하기도 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에는 시의 사회 참여가 강조되던 시기였어요. 어떤 식으로든지 세계를 반영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했지요. 지금은 그때보다 현실이 훨씬 더 복잡해졌고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에 대한 고민만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는 일도,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훨씬 힘들어졌죠. 1980년대에는 주로 정치적 체제나 이념을 둘러싼 고민을 했다면, 지금은 국가 단위의 정치체제를 넘어서 전 지구적 차원의 생태 위기가 문제가 되지요. 기위 위기나 환경 재앙이 우리 삶을 급속도로 바꿔놓고 있고 세계가 점점 전망 없는 위기로 치닫고 있는 이때에 시가 무엇일까, 시 쓰는 일이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인터뷰는 마치 수업을 하듯 정돈되고 가지런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시란 무엇일까, 시 쓰는 일이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는 이 질문과 대답을 반복했다. 20년 사이 변화를 설명할 때도, 공동체 이야기를 할 때에도. 우리 시대 시와 글쓰기, 문학하기의 의미와 역할을.

“⋯ 실제로 공동체에 들어가서 살거나 그런 공동체를 만드는 삶 대신, 이제는 제가 쓰는 시가 하나의 언어적 공동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시를 쓰는 동시대 시인들과 대화하면서 어떤 공동체적 지향을 주고받고 같이 나아가는 문학적 공동체 내지 문학적 우정들을 생각 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어느새 노래가 되어갔고, 기자는 그 노래에 천천히 취해갔다. 주변은 배경으로 사라지고, 점점 블랙홀처럼 빠르고 강렬하게.

⋯문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독백이 아니라 타자를 향해서 건네는 언어잖아요. 유리병 편지에 비유하기도 했고요. 결국 문학한다는 것은 공동체적 행위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존재를 위해서 선물처럼 시를 쓰는 것⋯ 존재들과의 우정⋯.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이재문 기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