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현대에서 고대 이집트를 가다-3
새벽 어스름에 길을 나선다. 아부심벨 신전으로 가는 일정에 따라 아침은 버스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숙소로부터 아부심벨 신전까지는 4시간 정도 이동해야 한다. 얼마를 달렸을까 주변이 밝아 올 즈음 주변에 끝도 없는 사막이 펼쳐진다. 사막의 끝자락에서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일출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빛의 아름다움과 사막의 광활함에 압도된다. 얼마를 달렸을까 목적지 아부심벨에 도착했다. 두 신전이 위치한 곳은 아스완하이댐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댐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바다라고 해도 믿을 법하다. 댐의 건설로부터 람세스 2세의 아부심벨 신전 역시 안전하지 못했다. 사실 이집트 문명이 발원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일강이 주는 풍요로움 덕이라 할 수 있는데, 나일강은 고대로부터 수천년간 매 여름마다 범람해 홍수를 일으켰다. 홍수는 유역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많은 이로운 광물을 배출하면서 농경에 이상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하지만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유역의 농경지를 보호하고 조절하며 농경을 위한 전력 생산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댐을 건설하게 된 것이다. 댐을 통해 범람을 완전히 제어하게 됐으나,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지 못하게 됐으니 향후 나일강 주변의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현재 신전의 뒷 모습은 풀 한포기 없는 척박하고 나즈막한 동네 뒷산 같다. 산으로 보이는 신전을 왼쪽으로 두고 10여 분을 걸으니 드디어 신전이 보인다. 후면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전면 높이 32m, 너비 38m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인 것이다. 아부심벨 신전은 람세스 2세와 왕비 네페르타리(Nefertari)를 위한 소신전으로 이뤄져 있다. 신전은 기원전 1264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기원전 1244년 완공된 신전이다. 1889년 시작해서 1970년 완성된 아스완댐 건설에 따라 이 지점의 수위가 60m 높아져 신전은 수몰의 운명에 놓일 뻔 했으나, 유네스코의 신전 보전을 위한 모금 등 헌신적인 노력과 이를 실현할 수 있었던 공학의 혜택으로 1964-1968년에 신전을 원형대로 65m를 끌어올려 지금의 자리에 위치하게 됐다. 기원전 13세기 고대의 건축물을 20세기의 기술과 노력으로 구조한 것이다. 신전 정면엔 람세스 2세의 청년기부터 장년기를 구현한 거대한 상이 4개가 있는데, 그중 파손된 1개의 람세스 조각상 역시 이전하기 전 파손된 형상대로 옮겨져 있었다. 람세스는 자기애가 강한 왕이었나보다. 신전의 정면에는 물론이고 그의 아내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한 소신전에도 온통 그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신전 자체는 태양신인 아몬 레와 레 호라흐테에게 바쳐진 것이며, 절벽 안쪽으로 56m를 파서 만든 3개의 연속된 홀로 구성돼 있다. 람세스 신전 내부는 왕의 여러 조상과 함께 왕의 생애와 업적을 보여주는 화려한 채색 부조로 장식돼 있다. 우리가 방문한 다음 날은 1년에 1번 햇살이 신전 전체를 꿰뚫으며 들어와 가장 안쪽에 있는 성소 제단까지 비치는 날이라 한다. 소신전인 네페르타리 신전은 정면엔 람세스 2세의 조각상 4개와 왕비의 조각상 2개가 서 있다. 사실 왕비의 상을 왕의 상과 동등한 크기로 세운 것은 당시 왕비의 경우 왕의 조각상보다 훨씬 작게 왕의 다리 아래 정도에 설치했던 것을 미뤄보면 상당히 의외의 사례라 볼 수 있다. 신전의 벽 부조는 예술적 가치가 높으며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정교함과 화려함을 한껏 뽐내고 있다. 이집트의 부조는 이집트 예술의 대표적인 형태 중 하나로 평가되는데, 이 부조들은 대개 이집트 신들과 왕족, 일상생활을 묘사하는 장면들을 그리고 있으며 이는 이집트 문화와 예술의 특징을 나타내는 중요한 자료다. 여러 가지 색으로 채색되기도 했다. 생동감 있고 사실적인 표현이 있는가 하면 특정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반복적이며 개념적인 표현을 하기도 한다. 19세기 말 이집트 예술에 대한 연구와 해석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예술사가이자 미술사론가인 알로이스 리글(1858-1905)는 이집트 부조를 기록의 미학(The Aesthetics of the Surface)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신전에 새겨진 부조들을 보면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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