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에 빠졌어요] 인도네시아 올리아, "20년 타향 생활 지탱해 준 한국의 산"
"혹시 경주 남산에 가보셨나요? 이 작은 산에서 불상이 129개나 발견됐대요. 지금도 바위를 깎아 만든 불상이 여럿 있고요. 처음엔 상상이 안 됐어요. '어떻게 그렇게 많은 불상이 있는 거지?' 싶었죠. 그래서 직접 가봤어요. 정교하게 깎인 불상들로 가득했어요. 하루 종일 구경해도 시간이 부족했어요. 이건 단편적인 예고요, 한국 산엔 볼거리가 다양해 가도 가도 질리지 않아요!"
외국인에게 한국 산은 어떤 곳일까? 보통의 대답은 '한국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 정신을 수양하는 곳, 도시에서 벗어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 이런 것들일 것이다. 인도네시아인 올리아씨도 보통의 사람들과 같았다. '왜 산이 좋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산의 아름다운 자연과 불상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서 산의 의미는 달랐다. 그녀에게 산은 단순한 장소와 즐거움, 그 이상의 것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게 된 등산
그녀가 한국에 오게 된 건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21세. 그녀는 어려서부터 한국 생활을 계획했다. 한국에서 취업할 작정으로 한글과 영문 이력서도 준비했다. 무더웠던 여름, 대전의 한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단기 여름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부모님 몰래 진행한 일이었다. 그녀는 40kg이 넘는 짐 가방 하나만 들고 먼 이국 땅으로 날아왔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꿈꿔왔어요. 여기서 취업할 작정이었죠. 부모님 몰래 모든 계획을 짰어요. 영어와 한국어로 된 이력서도 준비했죠. 그리고선 한국으로 넘어왔어요. 벌써 20년 전 일이네요. 이때는 유학과 같은 정보를 구하기가 참 힘들었어요. 고생 좀 했죠."
여름 프로그램이 끝나고 본격적인 한국 생활이 시작됐다. 처음엔 공부에 집중했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남는 시간에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했다. 데이트도 빼먹지 않았다. 그렇게 바쁜 시간 속에 20대가 흘러갔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인생에 '산'은 존재하지 않았다.
"2015년부터였을 거예요. 그때부터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관광 가이드 일을 했죠. 가이드는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잘 알아야 해요. 한국으로 여행 오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쇼핑과 K팝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 분야에 대해서 잘 몰랐죠. 저보다 잘 아는 사람도 많았고요.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야 했어요. 여러 카테고리를 알아봤는데, 산도 그중 하나였어요. 그렇게 등산을 시작했죠."
새로운 자극을 찾아 다니던 그녀는 우연한 계기로 등산 소모임에 참여했다. 그들을 따라 산에 올랐다. 때는 2016년. 한국에 온 지 13년 만이었다. 처음 오른 산에서는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해방감이 느껴졌다. 보물상자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산이 새로운 콘텐츠가 될 것이란 직감이 왔다.
산이 만들어 준 인연
"코로나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여행객이 끊기니 가이드 일을 이어갈 수 없었죠. 카페에서 단기 알바도 했는데, 이마저도 가게 상황이 어려워서 오래 하지 못했죠. 그러다가 2021년에 김해에서 일자리를 얻게 됐고, 그렇게 서울을 떠나게 됐어요."
김해에서의 삶은 지루했다. 서울 생활이 그리웠다. 콘텐츠를 짜고, 뭔가를 계획하는 것은 그녀가 좋아하고 또 잘하는 것이었다. 가이드 시절 했던 일을 다시 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인들을 모아 작은 모임을 만들었다. 작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페이스북에서 모임을 만들었어요. 이름은 'Gyeongsangnamdo Everything'이었어요. 지금은 'Busan Gyeongsangnamdo Global'로 이름을 바꿨지만요. 처음에는 저를 포함한 친한 지인들끼리만 활동했어요. 주말마다 등산가기, 문화 활동 즐기기 등 소소한 것들을 했죠. 시간이 지나면서 모임 멤버들이 많아졌어요. 국가와 인종 모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죠. 사람들이 많아지니 활동 분야가 넓어졌어요. 지금은 등산에서부터 언어교환 활동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요."
모임은 점점 커졌다. 어느새 멤버도 1,000명을 넘겼다. 부산국제교류재단에서 인정하는 공식적인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성장의 중심에는 산이 있었다. 주말이면 외국인 멤버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 그들과 함께한 등산에서 우연한 인연을 만나기도 했다.
"봉래산에 갔을 때였어요. 정상 근처에서 누군가 말을 걸더라고요. 부산 영산대 교수님들이었어요. 외국인들끼리 산에 오는 게 신기하다고 했어요. '그룹의 리더가 누구냐'고 물으시길래 제 명함을 드렸죠. 그로부터 2~3개월 뒤에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영산대 국제교류팀에서 일해볼 생각이 있냐'는 제안이었죠. 좋은 제안이어서 받아들였어요. 올해 2월부터 새 직장을 다니고 있어요. 부산으로 이사도 했고요. 산에서의 인연이 이렇게 흘러갔어요. 산 덕분에 인생의 방향이 조금 달라진 셈이죠."
인터뷰를 끝나갈 즈음 항상 궁금했던 것이 생각났다. 수많은 외국인 친구를 둔 그녀는 새로운 대답을 해줄 것 같았다. 그녀에게 물었다.
"외국인이 본 한국산의 매력은 뭘까요?"
돌아온 것은 보통의 답이었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좋았다.
"기자님은 한국 산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마 풍경이 멋지고, 한국의 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시지 않을까요? 외국인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대부분 비슷한 것들이죠. 다른 것을 하나 꼽자면 함께하는 즐거움이에요. 멤버들과 함께 산에 오르며 느꼈어요. 등산 중에 나누는 이야기와 추억을 쌓는 것 모두 함께여서 즐거운 것 같더라고요. 이것도 한국 산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하"
그녀는 멋쩍게 웃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산의 매력은 산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해서 즐거운 등산. 나는 그녀에게서 새로운 교훈을 얻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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