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줍줍]현대엘리베이터의 이유있는 주주가치제고 정책(feat.현정은)

김보라 2023. 5. 17.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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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사주 500억원 소각 및 1000억원 매입 공시
현정은 회장 및 현대네트워크 지분전량 담보 대출
담보여력 약화 방지, 추가자금조달 위해 주가방어 필요
그래픽=비즈워치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 등을 만들고 판매하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지난 4일 주식소각결정이라는 제목의 공시를 올렸어요. 

▷관련공시: 현대엘리베이터 5월 4일 주식소각결정

현대엘리베이터는 같은 날 자사주를 신탁계약 방식으로 취득키로 했다는 내용의 공시도 올렸어요. 

▷관련공시: 현대엘리베이터 5월 4일 주요사항보고서(자기주식취득신탁계약체결결정)

두 공시 모두 제목만 보면 주주들이 환영할 내용인데요. 자사주를 취득하고 이를 소각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표적인 주주가치제고 정책이기 때문. 

자사주를 취득하면 시장에서 움직일 수 있는 물량을 줄이고 이를 소각, 즉 없애버리기까지 하면 주식이 귀해져 기존 주주들의 주식가치가 올라가죠.

회사 측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소각과 매입을 추진한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다만 현대엘리베이터의 자사주 매입·소각이 단지 사전적 의미의 주주가치 제고 목적만은 아닐 수 있다는 점. 어떤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는지 한 번 살펴 볼게요. 

현대엘리베이터 기본배경지식 쌓기

현대엘리베이터 자사주 매입·소각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기본 배경을 살펴볼까요.

현대그룹의 지분구조는 '현정은 회장 등 총수일가→현대네트워크→현대엘리베이터' 순으로 이어져요. 

경영자문 및 컨설팅업을 하는 현대네트워크는 현정은 회장이 지분 91.3%를 보유 중이고, 그의 자녀(정지이, 정영이, 정영선)들이 나머지 지분을 가지고 있어요. 즉 현 회장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가족회사이죠.

또 현대네트워크(10.61%)를 포함 총수일가 및 특수관계자가 가지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은 26.57%예요. 

스위스 엘리베이터 업체 쉰들러 홀딩스도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5.5%를 보유한 2대 주주인데요. 

쉰들러 홀딩스는 2014년 현정은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곳이기도 해요.

현대엘리베이터는 당시 현대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던 현대상선(현 HMM)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파생상품 계약을 체결했는데요. 이로 인해 현대상선 주가가 떨어지면서 현대엘리베이터까지 손해를 봤다며 쉰들러 홀딩스가 소송을 제기한 것이죠. 

주주대표소송과 관련 최근 대법원은 현정은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최종 판결했어요. 참고로 주주대표소송은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이사진의 불법행위 발생시 주주가 회사를 대표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으로 주주 승소하면 손해배상금은 회사로 들어가요.

따라서 현정은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에 배상금을 지급해야했고, 이를 위해 현 회장은 보유하고 있던 계열사 현대무벡스 주식 전부(2475만주, 약 863억원)를 현대엘리베이터에 대물변제했어요.

아울러 현 회장은 본인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319만주) 및 본인이 최대주주인 현대네트워크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433만주)을 담보(연대보증 포함)로 2300억원을 대출받았는데요. 이 돈으로 기존 주식담보대출을 갚고 손해배상금 일부를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어요.

현정은 회장, 보유주식 전량 담보대출

문제는 기존 주식담보대출과 손해배상금을 갚는 과정에서 현정은 회장이 본인 및 현대네트워크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전량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는 점. 대출을 해준 곳은 증권사가 아닌 M캐피탈(MG새마을금고 계열사)로, 계약 체결일은 지난 4월 13일.

기존에 현 회장이 증권사로부터 주식담보대출을 받았을 때의 이자율은 5.3% 수준이었으나 M캐피탈에게 지불하는 이자율은 12%로 두 배 이상 높아요.

그만큼 현 회장이 고금리 이자를 지불하고서라도 돈을 빌려야하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죠.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을 때는 주가가 떨어지면 채권자로부터 반대매매를 당할 수 있는데요. 반대매매는 주식가격이 담보유지비율 밑으로 떨어지면 채권자가 주식을 일괄적으로 팔아버리는 것을 뜻해요. 

통상적으로 증권사는 신용거래 때 담보유지비율 140%를 요구해요. 현대네트워크와 현정은 회장은 증권사가 아닌 M캐피탈로부터 빌린 2300억원에 대한 담보유지비율을 공시하진 않았어요.  

다만 M캐피탈이 운영하는 주식담보대출 운영규칙에 따르면 계좌 담보평가액이 1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담보유지비율은 125%를 적용해요.

증권사보다 담보유지비율이 낮은 대신 금리가 높은 것이죠. 다시말해 증권사로부터 빌리는 것보다 대출이 더 쉬울 수 있지만 이자도 더 내야하는 셈.

16일 종가(4만850원) 기준 현대네트워크와 현정은 회장의 담보유지비율은 134% 수준이에요.

따라서 아직까지는 현대엘리베이터 주가가 담보유지비율을 뒷받침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만약 현대네트워크와 현정은 회장이 받은 2300억원에 대한 담보유지비율이 M캐피탈 운영규칙에 따라 125% 수준이라고 가정하면, 현대엘리베이터 주가가 3만8200원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반대매매 기준에 도달해요.

이와관련 현대그룹 관계자는 "M캐피탈과의 주식담보대출 계약은 브릿지론(단기 자금조달 방식)으로 반대매매 조항은 없다"며 "실제 대출 계약 제출(4월 13일)이후 주가는 3만원대 중반을 유지해왔고 최근 일주일 정도만 4만원선을 유지했다"고 설명했어요. 

어찌됐든 현대네트워크와 현정은 회장뿐 아니라 현 회장의 어머니인 김문희 용문학원 명예이사장 및 정지이, 정영선 등 자녀들도 보유 중인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상황인데요. 

총수일가 등 특수관계자들의 지분 중 담보로 잡힌 지분은 21.15%에 달해요. 총수일가 및 특수관계자가 가지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율이 26.57%이니 지분의 상당부분이 담보로 잡혀있는 것이죠. 

당분간 주가부양 힘쓸 듯..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

현정은 회장은 주가하락에 따른 반대매매 위험을 피하고 그룹의 핵심인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경영권 유지를 위해 어떻게 해서든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를 끌어올려야 해요. 당분간은 주가부양정책에 혼신을 다할 것으로 보여요. 

현대그룹의 설명대로 M캐피탈과의 주식담보대출 계약이 단기자금조달이라고 해도 주가하락시 담보 여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은 사실이에요. 또한 담보대출 만기가 짧은 만큼 추가 자금조달이 불가피하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주가가 일정수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겠죠. 

따라서 이번 자사주 소각과 자사주취득신탁계약체결 공시는 주주가치제고 목적도 있겠지만 담보대출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반대매매를 막기 위한 주가 부양 목적도 있다는 점을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이죠. 

현대엘리베이터는 과거에도 자사주 소각과 무상증자를 진행했는데 당시에도 지금처럼 주가를 올려야만 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지난 2020년 6월 현대엘리베이터는 약 880억원어치 자사주 소각과 함께 기존 주식 1주당 신주 0.5주를 주는 무상증자를 진행했는데요. 

당시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등 북한발 악재가 터지면서 대표적인 대북 경협주로 손꼽힌 현대엘리베이터 주가가 하락하는 상황이었죠.

또 당시에도 현대네트워크와 현정은 회장을 포함해 특수관계자들이 담보로 잡힌 지분은 16.5% 수준으로 결코 적지 않았어요. 이러한 배경 역시 당시 자사주 소각과 무상증자를 진행한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어요. 

한편 현정은 회장과 현대네트워크 및 특수관계자들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26.57%)은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긴 어려워요. 

이런 상황에서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소각한다는 건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다지기 위한 목적도 있어요.

특히 발행주식수 자체를 줄여버리는 자사주 소각은 기존 주주의 지분율을 즉각 높여주는 효과가 있어요. 이번 자사주 소각으로 현대엘리베이터의 총 발행주식수는 4081만5191주에서 3909만2385주로 줄었고, 이 여파로 현정은 회장 등 특수관계자들의 지분율은 기존 26.57%에서 27.74%로 늘었어요.  

물론 자사주를 소각하면 다른 주주의 지분율도 같은 비율로 올라가지만, 수시로 사고팔 수 있는 일반주주 지분과 달리 경영권 목적의 최대주주 지분율 상승은 남다른 의미가 있겠죠.

또한 회사가 신탁계약이든 직접취득이든 자사주를 사들이면 당장 의결권은 없지만, 유사시 우호세력에 매각해 경영권 방어용으로 쓸 수도 있어요.

즉 현정은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에게 자사주 매입·소각은 단지 주주가치 제고라는 사전적 의미외에도 주가부양을 통한 반대매매를 막고, 총수일가의 지분율을 높여주고, 추후 경영권 방어에도 활용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어요. 

 

김보라 (bora5775@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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