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대출 사각지대, 빅데이터가 밝힌다"
금융연 은행비전TF 권흥진 연구위원 인터뷰
"디지털 혁신 '금융중개 기능' 확대가 우선"
"무분별한 사업 확장보다 특화 경쟁력 갖춰야"
"금융의 디지털 전환은 '금융중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금융의 본질(금융중개)이 잘 수행될수록 우리 경제도 발전할 수 있다."
국내 금융권의 최대 화두 역시 디지털 전환이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정보기술(IT) 발전은 물론 빅테크·핀테크 기업들의 금융업 진출로 기존 금융사들의 디지털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렇다고 디지털 전환이 '금융중개'라는 금융회사들의 사업 본질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권흥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IT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금융을 통해 이 사회의 경제주체들에게 돈을 돌게 하는 기능을 더 강화하는 게 디지털 전환의 가장 앞선 목표"라고 강조한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받은 권 연구위원은 은행과 금융혁신, 핀테크·빅테크 등이 전공분야다. 현재 연구원 내 '은행비전태스크포스(TF)'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금융의 디지털 전환이 금융중개 서비스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면, 금융 소비자들의 경제 활동과 우리 경제 전체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금융도 왜 '디지털'이어야 하나
금융 채널은 오프라인에서 모바일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빅데이터가 얹어지면 디지털 금융의 파급력은 확 커진다. 각양각색의 데이터를 단순히 수집하는 것뿐 아니라 사업에 필요한 데이터를 추출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게 디지털 전환 환경에서의 빅데이터라서다.
무엇보다 빅데이터는 수익 개선과 비용 효율화뿐 아니라 데이터 속에서 찾은 새로운 가치를 통해 기존의 상품과 서비스 구조를 개선시키는데 유용한 기술이다.
권흥진 연구위원은 "디지털 전환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금융상품이나 금융서비스의 비용을 줄이면 기존에 없었던 상품을 만들 수 있고, 또 자산운용이나 투자자문, 인슈어테크 서비스 등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이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돈의 융통'이란 본연의 기능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소비자들은 자신에게 적합한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해 경제력을 키울 수 있다"며 "디지털 전환 이전에는 대출을 전혀 받지 못했던 개인이나 기업도 빅데이터 활용으로 대출이 가능해지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주요 은행들은 금융 데이터를 머신러닝 알고리즘과 빅데이터 같은 IT 기술로 가공해 새로운 신용평가모델을 개발, 중저신용자 유치에 나선 상태다. 그 동안 대출이 어려웠던 중저신용자에 대해서도 금융중개가 이전보다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대출이 불가능했던 사업장이라도 새로운 데이터를 기반으로 금융이 투입되면 사업 확장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개인 소비자들도 생애주기에 맞춘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이 종합적으로 뭉쳐지면 우리 사회의 후생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권 위원 생각이다.
권 연구위원은 "데이터 양이 과거보다 훨씬 늘었고 이를 활용해 금융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회사들도 시장에 속속 진입하는 상황이라"며 "이는 기존 금융사들이 디지털 전환에 더욱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부수업무 확장이 디지털 전환?
금융회사들의 디지털 전환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이자이익에 편중된 사업구조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이에 국내 금융사들은 부수업무 확장 등 사업 다각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알뜰폰 사업인 KB금융의 '리브엠', 배달앱인 신한금융의 '땡겨요' 등이 대표적이다. 보험업권에선 건강관리서비스(AIA생명)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자문과 데이터셋 판매(삼성생명·교보생명 등) 등이 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이 금융의 사업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쪽으로 쏠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게 권 위원의 생각이다. 그는 부수업무 역시 금융중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두고 판단해야 한다는 부분에 목소리를 높였다.
권 연구위원은 "디지털 전환이 은행의 본질적 기능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라며 "(부수업무 확장도) 은행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금융중개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금융회사들이 디지털 전환을 위해 펼쳤던 사업들에 대해 실제 어느 정도의 경제적 효과가 나타났는지 점검해야 할 시점"이라며 "이는 현재 영위하고 있거나 논의 중인 부수업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진단했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이 공통적으로 주문하고 있는 규제 완화도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디지털 시대에 부응하는 법제 구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 역시 금융중개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무분별하게 금융사들에 대한 규제 장벽을 낮추면 금융권이 지적해오던 '기울어진 운동장'(규제장벽이 높은 금융사들에 비해 빅테크 등은 규제가 낮아 금융업에 대해선 빅테크 기업들이 유리하다는 주장)이 반대로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권 연구위원은 "새로운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등 금융중개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이라면 규제를 풀지 않을 이유가 없다"면서도 "금융사들은 일반 기업과 달리 사회적 안전망도 있고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만큼, 금융과 연계성이 적은 사업 진출이 쉬워진다면 오히려 금융사들에 '기울어진 운동장' 비판이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디지털 금융 경쟁력, 특화 서비스 찾아야
최근 금융사들은 대출을 내주거나 금융상품을 계약할 때 종이 대신 태블릿PC를 이용하고, 내부 IT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 과정에서 효용성 있는 데이터를 찾아내고, 또 이를 재구성해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게 권 연구위원 주장이다.
어떤 데이터가 금융중개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는지 찾고, 이를 현실에 접목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권 위원은 은행의 주요 대출자산인 주택담보대출과 밀접한 KB부동산을 사례로 꼽았다. KB시세를 활용해 특화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영역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전략을 세워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금융사에도 해당하는 얘기다.
권 연구위원은 "금융사들과는 다른 DNA를 가진 IT 기업에 대한 인수나 투자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라며 "이를 비롯해 은행이 직접 분석하기 어려운 데이터를 공유하는 방안 등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디지털 전환에 대한 여러 전략과 정책 방향이 제시되면서 은행업을 어떻게 바꾸고, 규제는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말은 많았지만 금융중개 모습을 어떤 방식으로 개선하겠다는 종합적인 방안은 없었다"며 "금융중개에 대한 비전부터 세운 후 비금융 업무 확대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명현 (kidman0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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