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일 "나는 '스페셜 원'이 아니다" [남기일 인터뷰下]

이재호 기자 2023. 5. 17.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귀포=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제주는 지난 14일 수원FC 원정에서 5-0 대승을 거두며 5연승을 내달렸다. 최근 9경기에서 8승1패.

제주는 2월26일 개막부터 4월2일 울산 현대전까지 2무3패로 리그 꼴찌까지 떨어졌었다. 하지만 4월9일 강원FC전 서진수의 결승골로 마수걸이 승리 이후 FA컵 포함 3연승을 내달렸고 전북 현대에게 패하긴 했지만 4월26일 광주FC전 승리 이후 이날 경기까지 무려 5연승을 내달렸다.

4월9일 6라운드부터 5월14일 13라운드까지 해당기간만 놓고 보면 제주는 울산을 넘어 K리그 1위다(제주 승점 21점, 울산 승점 19점 2위). 5라운드 종료 시점 꼴찌는 13라운드 종료 후 3위까지 올라섰다. 남기일 감독도 2013년부터 감독생활을 한지 10년이 됐지만 5연승을 내달린게 처음이다.

이 놀라운 성적의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 남기일 감독과의 단독 인터뷰를 대담 형식으로 풀어봤다.

ⓒ프로축구연맹

기자 : 남기일하면 '강성 이미지'를 빼놓을 수 없다.

남기일 : 사람 자체가 강성인지 지도 철학이 강성인지를 구분해야한다. 평상시에도 화가 많은 사람인지, 운동장에서 할 때 하는 사람인지로 봐줬으면 한다. 전 훈련장과 경기장에서는 전체 선수를 움직여야하는데 사람이 유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강하게 해야 프로지 아마추어처럼 놀다가는게 아니지 않나. 훈련과 경기 할때만큼은 강하고 확실하게 하는게 그게 프로의 자질이고 자세다.

난 내 이미지를 확실히 가져갈거다. 솔직하게 감독이 어떻게 모든 선수들이랑 다 친할 수 있나. 경기장에 내보느냐, 안보내느냐를 결정하는 위치인데 어떻게 막 친해질 수 있나. 선수란 기량이 오를수도 있고 저하될 수도 있는데 친분으로 라인업을 짤 수 없지 않나. 물론 다른 생각과 지도 철학이 있을 수 있지만 이건 나만의 지도자로써의 철학이다.

기자 : 그래도 최근 여론에서는 '남기일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던데.

남기일 : 사람이 갑자기 어떻게 바뀌나. 누구는 '남기일이 어떻게 바뀌겠어'하면서 '곧 본성 나온다' 하더라. 지금 이게 내 본성이다. 조금 더 선수들-코칭 스태프와 소통을 하냐 안하냐의 차이일 뿐이다. 물론 나도 경기장에서 화낼때가 많다. 상대와 싸워야하고 이겨야하는데 강하게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상대를 누르고 이길 수 있나. 반대로 그 외의 시간에는 최대한 소통으로 풀어나가야한다는걸 깨닫고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너무 강성 이미지로만 보지 말아달라. 나도 행복하기 위해 일하고 있는거다. 기자님의 '훈련집합' 기사나 윤빛가람과의 문제 등 저를 둘러싼 여러 홍역들 모두 지나간 것임에도 저에겐 소중하다. 그런게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거고 이렇게 기자님과 인터뷰를 할 수 있는거다. 단단해지고 있다. 그런 일들도 있고 개막 2무3패의 부진도 있었기에 지금의 기쁨이 배가 되는거다.

기자 : 지난시즌 말미, 2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감독님의 거취에 대한 여러 소문, 제주의 차기 감독에 대한 여러 소문을 모두 지우는 재계약이었고 축구계가 꽤 놀란 재계약이었다.

남기일 : 다들 오해하는데 전 구단과 소통을 잘한다. 김현희 단장님과 항상 소통을 한다. 문제가 있을 때 항상 단장님이 나서서 진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만약 제가 독불장군처럼 했다면 구단에서 재계약 얘기를 했을까. 외부에서야 강성 이미지로 보지만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구단에서 재계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단에서는 제가 원하는 축구를 위해 지원해주고 저도 구단과 소통을 통해 팀을 꾸려가고 있다. 절대 어느 한쪽도 일방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선수 영입에 있어 일정 연봉선이 넘으면 어떻게 할지 항상 미팅과 얘기를 통해 해결해왔다. 단장님은 저에게 항상 물어봐주고 저 역시 그렇게 물어본다. 어느 구단은 프런트가 더 힘을 가지려고 휘두른다는데 제주는 제가 프런트를 존중하고 프런트도 저를 존중해준다. 그 결과가 이렇게 승격 이후 지속적인 상위권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구단에서 다 가지려하지도 않고 제가 다 가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합의점을 찾으려 한다. 구단과의 이런 관계는 전 K리그 안에서도 특권을 누리고 있는 감독이라고 본다.

기자 : 사실 제주가 유공시절인 1989년 우승 이후 리그나 FA컵 중 어떤 우승컵도 들고 있지 못하다. 부천 시절 선수로써, 그리고 현 제주 감독으로써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않나.

남기일 : 일단 중요한건 '3강'안에 들어야한다는 것이다. 단기안에 우승을 하면 단기간에 내려갈 수밖에 없다. '반짝'밖에 되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강팀이 되어야한다. 한번 우승하고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면 금방 사라질 수밖에 없다. 팀이라는건 그래서는 안된다. 꾸준히 가야한다. 가다보면 넘어질 수도 있지만 빨리 일어날 수 있는게 강팀이다. 꾸준히 한단계씩 올라가야한다. 울산 현대를 보라. 하루 아침에 우승을 했나. 계속 상위권에 머물고 준우승을 하다보니 이렇게 된거다.

2000년대만 해도 FC서울이나 수원 삼성 등 수도권 팀이 주름 잡았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 전북 현대, 울산처럼 조금씩 지방으로 흐름이 넘어왔다. 그 흐름이 제주까지 내려오는데 배를 타고 오는지 시간이 걸리나보다. 기다려야지. 꾸준히 갈 수 있는팀, 꾸준히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을 만들어야한다.

ⓒ제주 유나이티드

기자 : 꾸준한 강팀을 위해서는 팀문화도 필요하다. 울산으로 떠난 주민규 등 여러 선수들이 '제주만의 문화는 특별하다'고 강조하더라.

남기일 : 사실 제주라는 지리적 특성상 선수들이 답답한 것도 많을거다. 풀고 싶은데 풀지 못하는 것들이 많은데 할 수 있는게 커피숍에 가서 동료들과 수다를 떨면서 푸는거다. 제주에만 있으면 얼마나 답답하겠나. 물론 축구만 생각하기엔 좋은 환경이긴 하지만.

다른팀들은 훈련 끝나면 집에가서 개인적인 용무나 친구 보기에 바쁘지만 제주는 그게 힘들지 않나. 그래서 훈련 후에 동료들과 멋지게 차려입고 제주의 로컬 카페에 가서 음료를 먹으며 감독 욕, 팀얘기, 사는 얘기, 개인적 고민 등을 말하며 관계가 깊어진다. 요즘엔 숙소 식당에서 밥을 먹고 한참을 선수들끼리 모여 얘기를 하는 모습도 보이더라. 제주이기에 가지는 장단점이 있지만 이런 부분은 장점으로 작용해 선수단간에 유독 돈독하고 사이가 각별해지는게 제주 팀만의 문화다.

기자 : 외국인 선수들에 대해 얘기해보자. 10년의 감독 커리어 내내 뚜렷하게 성공한 외국인 선수들이 없다는 지적은 늘 따라다닌다.

남기일 : 솔직히 광주FC시절 외인들은 나쁘지 않았다. 싼 가격에 괜찮았다. 함께 잘해서 승격했다. 성남FC 때야 자자도 떠오르긴 하는데(웃음), 중요한건 팀에 잘 녹아드느냐 아니냐다. 맞다. 솔직히 실패한 외국인도 많다.

지금 생각해보면 K리그라는 곳이 곧바로 적응하기 쉽지 않은 곳인데 저는 '돈을 주고 데려왔으니 빨리 잘해야지'라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조금 더 기다려주고 적응하길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이 외국인 선수에게 전달되는게 중요하다. 제가 급한 마음을 가지지 않아야 하는데 예전에는 그 부분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이것 역시 선수와 소통 부족이 있었다. 몇 번 뛰게 해보고 판단을 해버리니 충분히 시간을 주지 않았다고 볼만도 하다. 잘할 수 있게끔 도와줘야 했는데 그런게 부족했다. 솔직히. 그래서 지금은 조나탄 링이나 유리 조나탄에게 믿음을 주고 기다려주려 하고 있다. 이 선수들도 굉장히 프로페셔널해서 그 믿음을 느끼고 보여주려 하고 있다.

기자 : 외국인 실패에 대해 깔끔하게 인정하고 부족했던 것을 보완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남기일 : 잘하는 선수라고 데려왔는데 바로 잘하기는 힘들다. 물론 광주와 성남은 시민구단이며 곧바로 승격해야하는 팀이었기에 외국인 선수들에게 넉넉히 시간을 주지 못했다. 제주도 처음에 왔을 때 강등당한 팀이었기에 여유가 부족했다. K리그 최고 연봉이던 제르소도 처음엔 아쉬웠지만 시간을 주니 결국 잘하지 않았나. 그런 사례도 나에게 자양분이 됐다.

기자 : 이제 한번 얘기해보자. 2무3패 후 8승1패. 꼴찌에서 3위까지 오르는데 대체 어떤 반전의 이유가 있는건가. 명확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남기일 : 한마디로 요약하면 믿고 기다려주는거다. 이 상황이 안좋다고 해서 무턱대고 화를 내는 것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대화하며 서로 신뢰를 쌓는게 필요하다.

안좋은 팀들이 경기 하는걸 보면 선수들끼리 짜증을 낸다거나 지도자가 선수들에게 짜증을 내는게 있다. 저희도 그랬다. 그래서 선수와 선수, 선수와 코칭 스태프간의 믿음의 고리를 연결해줬다. 선수간의 신뢰도가 조금씩 쌓이다보니 힘이 생기고 그게 축구로 드러나고 결과로 나오더라.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동료들을 믿고 위해서 뛴다.

ⓒ프로축구연맹

기자 : 최근 기자회견을 보면 취재진은 '반전의 이유'를 명확히 설명해달라고 항상 얘기하더라. 안되던 팀이 잘되니 뭔가 비결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기일 : 내가 그걸 알면 신이다. 물론 그런 곳에서 '각팀에 맞는 전술 전략을 썼습니다'라면서 어떤때는 롱볼을, 어떤때는 세밀한 패스 축구를 하자고 분석한 노트를 보여주며 자랑도 하고 싶을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건 서로간의 '믿음'이다.

미안한데 나는 여러분이 기대하는 반전을 만든 '스페셜 원'이 아니다. 평범한 감독이다. 스페셜하게 뭔가 바뀌었다고 얘기할건 없다. 살면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 기적조차 뭔가를 계속 꾸준히 하다보니 일어나는거다. 이렇게 바꾸니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건 신만이 가능한거다. 꾸준히 문제점을 찾으려했고 그걸 바꾸려 꾸준히 노력했을 뿐이다. 나는 정말 한번에 바꿔놓는 '스페셜 원'이 아니다.

제주가 지금은 좋지만 어떤 팀이든 시즌 중 2~3번의 위기는 오게 돼있다. 그때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강팀을 가르는 요소다. 문제점을 외부에서 찾으면 안된다. 모든 문제는 내부에 있다. 내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건 팀도,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기적이 어딨나. 아직 리그가 끝나지도 않았다. 팀을 나아지게 하려는 모두의 노력이 지금의 반전을 만든 것이다.

기자 : 광주에서 감독대행으로 2013년 8월 첫 K리그 감독직을 시작한 이후 어느새 감독으로 10년째다. 1년이상 쉰적 없이 10년간 매해 한국 축구 최고인 프로리그 감독으로 있는건 분명 자부심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기일 : 어느새 뒤돌아보니 K리그 팀중에 저보다 K리그 감독직을 오랜기간 연속해서 하고 있는분이 없더라. 오래한 것보다는 각 팀에서 그 팀이 원하는 목표를 이뤄냈다는 것에 자부심은 있다. 광주와 성남, 제주 모두 승격을 원했고 모두 승격시켰다. 그리고 이제 제주에서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 중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관리했기에 가능한 일이기에 자부심은 있다.

선수들에게 무엇을 줄건지 계속 고민한다. 내일 훈련, 다음 경기, 그리고 전체 목표로 무엇을 주고 따라오게 할지 고민하고 있다. 결국 선수단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이게 감독을 오래하게 만든 요인이라 본다. 원하는 타이밍에 뭘해야하는지 명확히 생각하며 행동해왔다. 철저한 자기관리를 했다고 자부한다.

기자 : 사실 감독님은 스타 플레이어 출신도 아니고 국가대표 출신도 아닌데 K리그에서 가장 오랜기간 감독을 하고 있다.

남기일 : 매번 집에가면 아내에게 '힘들어서 그만둬야겠다'고 하는데 아내는 '천직이야'라고 한다. 항상 집에와서 축구 생각만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정말 그렇다. 집에서도 항상 머릿속에는 축구 생각, 다음 경기 생각, 선수들 생각밖에 없다. 그렇게 어느새 뒤돌아보니 감독으로 10년이 지났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Copyright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