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반백살에 처음 붓 들고 70살에 개인전…“해보니 되더라고요”

지유리 2023. 5. 17.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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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사는 사람이라고 평생 농사만 짓고 살라는 법이 있나요. 농사 끝내고 겨울에 놀면 뭐해요, 그림 그리는 거죠. 틈틈이 그리다보니 이제는 '화가 선생님' 소리를 듣고 삽니다."

"제가 나이 칠십에 개인전을 열 거라고 꿈에나 생각해봤겠어요. 작업실에 쌓인 그림을 보면 얼마나 뿌듯하고 보람 찬지 몰라요. 다른 시골 할머니들도 꿈이 있다면 일단 한번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하다보면 되거든요.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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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화가농부 김점옥씨 <강원 삼척>
첫째 장가 보내고 ‘나만의 삶 살자’ 결심
미술 수업 들으려 강릉까지 장거리행
도화지 앞에 서면 근심 사라지고 평온
지난해 ‘신사임당 미술대전’ 수상 기쁨
가족도 적극 응원 … 9월 전시회 앞둬
집 앞 들에 나가 캔버스를 펼친 김점옥씨. 뒷산과 시골집 등 눈에 익은 동네 풍경을 그리며 여유를 만끽한다.

“시골 사는 사람이라고 평생 농사만 짓고 살라는 법이 있나요. 농사 끝내고 겨울에 놀면 뭐해요, 그림 그리는 거죠. 틈틈이 그리다보니 이제는 ‘화가 선생님’ 소리를 듣고 삽니다.”

요즘 농촌살이 트렌드 가운데 하나가 ‘반농반X(엑스)’라고 했던가. 강원 삼척시 원덕읍에 사는 김점옥씨(70)는 반은 농부요, 반은 화가다. 취미 삼아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가 지금은 어엿한 ‘작가’가 됐다. 지난해 강원도가 후원하고 강릉시가 주최한 ‘신사임당 미술대전’ 수채화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으며 추천작가가 됐다. 고희를 맞은 올 9월엔 첫 개인전도 열 계획이다.

김씨는 어릴 적 화가를 꿈꿨다. 그러나 가정형편 탓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고, 24살에 결혼 후 도시에 살다 남편을 따라 삼척에 정착해 농사를 지었다. 두 아들을 키우며 남편을 도와 부지런히 농사를 짓다가 쉰이 되던 해, 자신의 오랜 꿈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오십이 되던 해에 첫아들이 장가를 갔어요. 그제야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라도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어요. 가슴 한편에 접어둔 화가의 꿈을 떠올렸죠.”

갑작스러운 김씨의 결심을 반긴 건 가족들이다. 특히 남편 민경인씨(81)는 김씨가 흔들릴 때마다 그의 꿈을 북돋워줬다. 논밭을 다니며 그릴 만한 장면들을 사진으로 찍어 가져다줬고 미술용품을 살 때면 “돈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그리라”며 격려했다.

호기롭게 나섰지만 그 길이 평탄하진 않았다. 지방 소도시에선 선생님을 찾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물어물어 선생님을 찾아 매주 한번씩 왕복 세시간을 달려 강릉에서 수업을 들었다. 그런 그의 정성에 감복한 선생님이 직접 삼척까지 와서 미술 공부를 돕기도 했다. 욕심을 부렸다면 금세 결심이 꺾였을지 모른다. 거창한 목표를 좇기보다는 취미생활을 한다는 생각으로 붓을 잡았다. 농사일이 바빠서 한달 동안 그림 한장 그리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평생 즐길 취미니 조바심 내지 말자’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20년이다.

김씨의 주 전공은 수채화, 주제는 자연이다. 동네 뒷산에 자란 버섯, 길가에 핀 들꽃, 농사짓는 논밭 등이다. 때론 추억을 화폭에 펼치기도 한다. 옛날에 살던 시골집이나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그림으로 되살아난다. 붓을 들고 도화지 앞에 서면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해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수채화가 생각보다 어려운 분야예요. 친구들끼리 농담으로 ‘아무나 쉽게 못 덤비니 매력이야’라고 한다니까요. 배울 때는 고생했는데 요즘은 수채화를 고집하길 잘했다 싶어요. 성취감도 있고 무엇보다 맑고 투명한 빛깔을 보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김씨는 지금껏 완성한 30여점을 모아 올 9월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전시회 개최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려고 시에서 운영하는 노인 일자리에도 참여했다. 그림 그리랴, 돈 벌랴 몸이 피곤할 법도 한데 오히려 요즘 기운이 넘친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내 손으로 무언가 이룬다고 생각하니 힘이 솟는다. 그의 꿈을 알기에 가족들도 응원을 보낸다. 김씨는 출근길에 나설 때 열심히 일하고 오라는 남편의 배웅을 듣노라면 행복하단다.

“제가 나이 칠십에 개인전을 열 거라고 꿈에나 생각해봤겠어요. 작업실에 쌓인 그림을 보면 얼마나 뿌듯하고 보람 찬지 몰라요. 다른 시골 할머니들도 꿈이 있다면 일단 한번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하다보면 되거든요.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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