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답사기] 한강 나루서 부는 ‘힙’한 막걸리 바람

박준하 2023. 5. 1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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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 답사기] (57) 서울 한강주조
서울 강서농협 판매 ‘경복궁쌀’ 주재료
무난함 속에 개성 담은 다양한 술 빚어
의류브랜드 등과 활발한 이종협업 눈길
서울 한강주조가 생산하는 다양한 술들. 왼쪽부터 신상품 ‘보스토끼’ ‘나루약주’ ‘나루생막걸리 11.5도’ ‘나루생막걸리 6도’. 현진 기자

요즘 막걸리엔 ‘고루하다’보다는 ‘힙하다(개성 있고 새롭다)’는 수식어가 더 많이 붙는다. 막걸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서울 성동구 한강주조는 트렌디한 우리술 시장을 열어가는 대표적인 양조장 가운데 하나다. 이곳엔 3년 전 포털사이트 네이버 광고에서 ‘성수동 막걸리 바보 성용씨’로 얼굴을 알린 고성용 대표가 있다.

“주얼리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카페를 차렸어요. 잘되더라고요. 플리마켓도 열고 공연과 전시도 하고 카페 이상의 문화공간으로 확장했어요. 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엔 늘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어요. 많은 사람이 제가 만든 걸 보고 듣고 공유하고 알았으면 했어요. 그때 떠오른 게 막걸리였죠.”

평소에도 술을 좋아하던 그는 양조장 창업을 결심하고 10개월간 양조기술을 배웠다. 우리술을 빚는 건 재밌는 작업이었다. 처음부터 잘될 거라는 생각은 버렸다. 술을 만드는 일은 긴 호흡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가 상업 양조를 하면서 지키려고 했던 건 주질(술의 품질) 유지다.

“대량의 술을 빚는데 같은 품질을 유지한다는 건 쉽지 않아요. 처음 시작할 땐 누룩도 직접 빚는 등 여러 노력을 했는데 술의 양이 적을 땐 잘되다가 양을 늘리니 맛이 달라지는 등 현실적인 벽에 부딪쳤죠. 일단은 잘된 술을 꾸준히 내는 데 집중하기로 했어요.”

2019년 6월말 <나루생막걸리 6도>, 10월엔 <나루생막걸리 11.5도>가 차례로 출시됐다. <나루생막걸리>의 술맛은 예전부터 집안 대대로 빚던 우리나라 가양주 문화에서 착안했다. 단맛이 있고 목 넘김이 부드러우며 탄산이 없는, 누구나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은 그런 맛이다. 병 라벨에 그려진 동그라미와 세모는 해와 달, 네모는 나룻배를 의미한다.

“과거 나루터는 교역의 장이자, 시를 지을 때 무대와 소재가 되는 문화·예술 공간이었어요. 지금처럼 대교가 없던 시절엔 중요한 교통 시설이었죠. 나루터가 가진 의미처럼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막걸리에도 ‘나루’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최근엔 맑은술인 <나루약주>(13도)도 나왔다. 전통 약주들이 가진 특유의 끈적한 맛을 덜어내고 가볍고 경쾌한 느낌의 술로 탄생했다. <나루약주>는 한강주조 설립 초기부터 고 대표가 만들고 싶었던 술이다. 그는 <나루약주>가 ‘독특하면서도 무난한 술’이길 바란다. 한강주조의 개성은 남아 있으면서도 소비자의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술을 만든 것이다. 일민미술관 협조를 받아 라벨에 손동현 작가의 ‘한양’이라는 작품을 입혔다.

한강주조가 이러한 ‘좋은 술’을 만드는 비결은 우수한 재료에서 나온다. 한강주조의 주재료는 서울 강서농협이 판매하는 <경복궁쌀>이다. 서울에서 쌀이 난다고 하면 지금도 깜짝 놀라는 사람이 많다. <경복궁쌀>은 강서구 오곡동·개화동 일대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는데 품종은 <추청>이며 미질이 좋기로 소문났다.

‘성수동 막걸리 바보’로 얼굴을 알린 고성용 대표가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강주조 연구실에서 주질을 확인하고 있다.

고 대표는 이종(다른 업계) 협업으로 전통주 알리기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대한제분과 컬래버레이션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은 <표문막걸리>(6도)가 그 예. ‘표문’은 대한제분의 상표인 ‘곰표’를 뒤집어 읽은 것이다. 생산 초기에는 품절 행진을 이뤄 없어서 못 먹었다. 2021년에는 베이커리 브랜드인 아티제와 협업해 막걸리 마카롱을 출시했다. 올해는 현대자동차 계열사인 이노션과 손잡고 막걸리 <보스토끼>(9도)를 선보였다. <나루생막걸리>와는 전혀 다른 드라이함이 돋보이는 술이다.

차곡차곡 대중에게 인지도를 쌓고 있는 한강주조의 올해 목표는 내실화다. 기존 술의 품질을 높이고 소비자에게 더 다가가겠다는 뜻이다. 이달말에는 <나루생막걸리>를 대대적으로 새 단장한다. 18∼21일 서울 성동구 스퀘어 성수에선 <나루생막걸리> 맛과 라벨을 리뉴얼하는 기념으로 의류브랜드 <워크워크>, 밀키트를 판매하는 ‘삼초마을’과 컬래버 팝업 행사도 진행한다. 한강주조의 자사몰 개설도 고민하고 있다.

“한강주조는 대중이 우리술을 더 친근하고 가깝게 느꼈으면 합니다. 제품의 질을 일정하게 유지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거부감 없는 가격도 필수겠죠. 우리술 대중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한강주조의 언어로 소비자를 설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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