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가난마저 빼앗나"…'김남국 코인' 2030세대 박탈 넘어 분노
"박완서 '도둑맞은 가난' 생각난다…위선적"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앞에서는 '가난 코스프레' 뒤에서는 '코인 몰빵', 또 불공정이었네요."
17일 서울의 한 제약회사에 다니는 임모씨(29)가 한숨을 내쉬며 한 말이다. 한때 대한민국에 불었던 코인 광풍에 책도 읽어가며 투자했다는 임씨는 "불확실한 신생 암호화폐에 몇 억을 투자해 큰돈을 버는 것은 내부 정보가 없으면 불가능할 것 같다"며 "국회의원이란 직책을 이용했을 수 있단 생각에 박탈감을 넘어 분노까지 느낀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청년 정치인으로 주목받던 김남국 의원이 '암호화폐 투자 의혹'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며 탈당했지만 논란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오르는 집값과 취업난에 좌절한 청년들이 대거 뛰어들었다가 많은 돈을 잃었던 암호화폐는 2030세대에게 건드리지 말아야 할 역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암호화폐 투자자 2명 중 1명이 2030세대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가상자산 투자자 558만명 중 2030세대의 비중은 5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세대의 실망과 분노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9~11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의원이 코인 의혹에 휩싸인 후 청년층의 민주당 지지율은 약 10%포인트 하락했다. 구체적으로 20대에서 12%포인트, 30대에서 9%포인트 떨어졌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김모씨(26)는 "청년들이 주식이나 암호화폐 투자 실패로 고통을 호소할 때 항상 청년을 강조하던 국회의원이 '야수의 심장'으로 큰돈을 투자해 돈을 벌었다"며 "부동산 투자에 참여할 수 없는 청년들이 암호화폐를 유일한 '사다리'라고 믿었지만 이제 공정하다는 신뢰가 깨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씨(32)도 "정보를 가진 고위 공무원 사이에서 빈번하게 이뤄지는 투기와 비리 등 범죄 행위를 자주 접해서 그런지 놀랍지 않다"면서도 "국회의원과 같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역에는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이 지난해 1~2월 80만여개(당시 가치 60억원)를 보유했던 암호화폐가 위믹스(WEMIX)였다는 사실에 청년들의 분노는 더 컸다.
2020년 10월부터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되기 시작한 위믹스는 '게임을 하며 암호화폐를 벌 수 있다'는 홍보 효과로 한때 시가총액이 3조56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대량 유동화가 문제가 되면서 같은 해 11월 유의종목으로 지정됐다 12월 상장폐지됐다. 이 과정에서 많은 청년이 막대한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2030세대가 분노하는 지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가난하지만 청렴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던 청년 정치인이 의혹의 중심에 섰다는 점에서 청년들의 배신감은 더욱 컸다.
직장인 남모씨(여·28)는 "라면만 먹고 구멍 난 신발을 신는다던 과거 발언들이 청년을 기만한 것 같아 화가 난다"며 "이번 사태를 보며 박완서 작가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권모씨(여·29)도 "의도적으로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 온 것이라면 정말 위선적"이라며 "젊은 정치인이라고 가난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지율을 위해 '가난 코스프레'를 하니까 이렇게 탄로 나고 청년들에게 배신감을 주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권씨는 "국정감사 도중 20회 이상 암호화폐를 이체했다는 점에 가장 실망했다"며 "나라의 일을 감사하는 공적인 순간에 국회의원으로서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김 의원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엔 "탈당으로 끝내지 말고 수사기관의 수사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청년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강하게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암호화폐는 경험했던 분야라는 점에서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상당했을 것"이라며 "김 의원이 가난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까지 겹치니 배신감은 더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년들은 적은 돈으로 암호화폐에 투자했지만 대다수 손실을 봤는데 청렴하고 참신할 것이란 기대로 선출된 청년 정치인이 이런 논란에 휩싸이니 배신감과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며 "명쾌하게 해명하기보다 정치 프레임을 씌우려 한 것도 청년들을 실망시켰다"고 설명했다.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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