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현의 신농사직설] 사라진 토종벼를 생각하며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달 경기 양평에서 열린 '전국 토종벼 농부대회'에 다녀왔다.
특별 시음회와 토종볍씨 나눔도 있었고, 토종벼 350품종 볏단과 토종 종자 108품종도 전시됐다.
토종벼 대회에서 돌아오면서 든 소회다.
토종벼를 지키려는 농부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쌀밥 더 먹어라”로 해결 안돼
토종벼 행사장서 만난 막걸리
저마다 품종 고유의 향취 지녀
종자도 주조법도 획일성 벗고
‘다양성’ 키우며 돌파구 열어야
지난달 경기 양평에서 열린 ‘전국 토종벼 농부대회’에 다녀왔다. 올해 8회째를 맞았다. 코로나19 이후에 모처럼 열린 이번 대회의 주제는 ‘토종쌀과 막걸리’였다. 쌀밥을 덜 먹는 시대다. 인구가 감소하고 밀가루 소비가 증폭되고 먹거리가 다양해진 만큼 쌀 소비량 감소는 필연적이기도 하다. 무조건 쌀밥 좀 먹으라고 강권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통일벼>가 하나의 상징이듯이 그간 생산량 중심의 볍씨 종자는 많은 문제를 불러왔다. 산업화시대로 접어들면서 보릿고개 시절에서 벗어나려고 오로지 증산만이 지고의 목표라고 부추기던 시대는 종료된 지 오래다. 이미 많은 수입쌀이 들어와서 가공식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이다. 당연히 품질로 경쟁해야 하는데, 그 품질의 핵심은 종자다.
행사에서 토종쌀 16품종과 막걸리가 소개됐다. <검은깨쌀벼> <귀도> <노인도> <녹두도> <멧돼지찰> <몽근차나락> <보리벼> <북흑조> <붉은차나락> <아롱벼> <옥경> <자광도> <천주도> <한양조> <향곡> <흰베> 등이다. 특별 시음회와 토종볍씨 나눔도 있었고, 토종벼 350품종 볏단과 토종 종자 108품종도 전시됐다. 일반인은 대부분 처음 듣는 종자들이다.
종자는 그 자체가 국력이며, 종자 지키기는 애국의 길이다. 몬산토로 대표되는 다국적 회사의 가공할 세계 지배 전략 속에서 각 나라와 민족마다 고유 종자를 지키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비단 볍씨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콩이나 밀·메밀·녹두·팥 등은 물론이고 돼지와 닭·소 등의 종 다양성도 전략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늘었다. 와인 종류마다 포도밭 환경을 말하고, 와이너리의 주인장과 보관창고까지 거론한다. 시음장에서 토종벼 쌀막걸리를 조금씩 마셔보니 쌀마다 고유의 향취와 맛이 느껴졌다. 이 좋은 막걸리를 대대적으로 시판하는 길이 열리면 좋겠다. 외국 와인의 생산지 풍토학을 이해하는 시대에 정작 우리쌀 막걸리는 여전히 획일적이다. 일본 종자에 뿌리를 둔 획일성에다가 일제강점기 이래로 강요된 주조법으로 인하여 쌀막걸리가 다양하게 꽃피울 수 있는 여건을 봉쇄당했다.
쌀이 남아도는 현실에서 쌀막걸리에 대한 새로운 출구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쌀밥 덜 먹는다고 한탄하거나 강요할 일이 아니라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행사장을 빠져나오면서 문득 15세기의 인물 강희맹을 떠올렸다. 금양현, 즉 오늘날의 과천 근처로 낙향한 선비로서 일반 농작물에 관한 체험적 농서인 <금양잡록>을 남겼다. 다양한 작물 품종을 해설하고 있는데, 취급 품종수가 매우 많다. 벼 27종, 콩 8종, 팥 7종, 녹두 2종, 동부 2종, 완두 1종, 기장 4종, 조 15종, 피 5종, 수수 3종, 보리 4종, 밀 2종 등 모두 80여종에 이른다. 이 80여개 종자는 대부분 사라졌다.
<금양잡록>은 소농 경영의 범주를 다루고 있다. 그 당시 소농 경영은 농장 직영지 경영과는 반대로 농민의 존재 형태가 ‘굶주린 가을파리’처럼 혹심했다. <금양잡록>에 등장하는 농민들은 대단히 불우한 처지였다. “농사가 부실하여 추수하여도 국가 세납액도 채 되지 못하는 형편인데 설상가상으로 사채의 독촉이 성화 같다. 집에는 한알의 곡식도 없는데 농절은 부득부득 다가오니 농민들은 부득이 국고에서 종자를 채용할 수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가난했다. 어찌 보면 한국 농업 수천년의 역사가 이들 가난한 농부들의 손으로 이어져왔을 것이다. 토종벼 대회에서 돌아오면서 든 소회다. 토종벼를 지키려는 농부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주강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