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즐거운 홍콩? 눈도 즐거운 홍콩!... 미식 넘어 문화 도시 꿈꾼다
단순한 느낌일까. 중국어 표기는 눈에 띄게 커지고 영어 표기는 왜소해진 듯하다. 1995년 국내에 개봉된 영화 ‘중경삼림’은 중국 반환을 코앞에 둔 홍콩의 운명과 홍콩인의 심리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흔들리는 첫 화면과 혼잡스러운 골목은 예측하기 힘든 홍콩의 불안한 미래를 보여 준다. 테이크아웃 야식전문점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Midnight Express)’를 연결고리로 두 커플은 이별을 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공교롭게도 ‘꿈’을 담은 주제곡 ‘캘리포니아드림’과 ‘몽중인’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한 세기 동안 서구(영국)와 중국 문화가 공존하던 이 도시의 균형추는 1997년 7월을 기점으로 확실히 중국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2019년 시민들의 대대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홍콩보안법’이 시행되며 홍콩의 중국화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추억의 홍콩 영화배우들 한자리에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홍콩에서 더 이상의 혼란은 사라졌다. 고층빌딩 불빛은 여전히 화려하고, 음식과 쇼핑 천국으로 각인되던 도시는 이제 문화의 영역으로까지 이미지를 확장하고 있다. 강같이 폭이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홍콩섬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지는 주룽반도 침사추이 끝자락에 ‘스타의거리(Avenue of the Stars)’가 있다. 1982년 처음 조성된 후 3년간의 재정비를 거쳐 2019년 1월 다시 개방됐다. 뉴욕 하이라인파크를 설계한 제임스 코너가 재설계해 바다를 조망하며 편안히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늘었다. 세련미에 실용성이 더해졌다.
침사추이(尖沙咀)는 모래사장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지형이라는 의미다. 이곳에 밀집한 호텔과 쇼핑센터 등은 대부분 바다와 모래사장을 매립한 땅 위에 지어졌다. 스타의거리도 마찬가지. 모래 한 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비한 시작 지점에 진주를 들고 있는 여신을 묘사한 홍콩영화상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곳부터 약 450m 해안산책로 난간을 따라 홍콩 영화배우와 감독의 핸드프린팅이 이어진다. 이연걸 유덕화 성룡 임청하 장만옥 등 1990년대까지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스타들의 손자국 뒤로 푸른 바닷물이 넘실거리고 그 너머로 홍콩섬의 고층빌딩이 병풍처럼 둘려져 있다. 40대 이상 한국인이라면 대개 익숙한 배우들인데 남성 이름 뒤에 ‘신사’, 여성에 ‘여사’라 쓰인 호칭이 중국스러우면서도 시간의 간극만큼 거리감이 느껴진다.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뜬 장국영은 끝내 손자국을 남기지 못하고 얼굴만 간략하게 묘사돼 있다. 스타의거리는 이소룡(1940~1973)과 매염방(1963~2003) 동상이 세워진 곳에서 마무리된다.
바닷바람만큼 경치도 시원한 이 거리는 이른 아침이면 산책과 운동을 즐기는 시민들로 활기가 넘치고 밤이 되면 야경을 즐기려는 관광객으로 붐빈다. 홍콩영화상 동상 뒤로 바다 건너 고층빌딩 불빛이 스타보다 더 밝게 빛을 뿜는다.
스타의거리 중간쯤 외관 일부를 식물로 장식한 K11뮤제아(K11 MUSEA)라는 건물이 눈에 띈다. 뮤지엄과 바다를 합성한 이름처럼 쇼핑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을 함께 즐길 수 복합문화공간이다. 건물에 입주한 250여 개 상점과 70여 개 레스토랑 사이사이에 다양한 설치작품이 숨겨져 있고, 별도의 아트 투어도 운영한다.
요즘 홍콩에서 주목받는 문화공간은 서구룡문화지구에 2021년 11월 개관한 엠플러스(M+)다. ‘미술관 이상의 미술관(More than Museum)’이라는 명칭답게 33개 전시공간에서 근대미술부터 현대미술, 건축, 디자인, 영상까지 광범위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약 250명의 다국적 큐레이터가 기획전시뿐만 아니라 디지털 아트까지 맡고 있다.
건물은 스위스의 건축가 헤르조그가 설계했다. 런던의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과 베이징 올림픽주경기장, 서울의 송은아트센터를 디자인한 인물이다. 밖에서 볼 때 커다란 상자처럼 콘크리트로 꽉 막혀 있는데 내부로 들어가면 곳곳에서 빛이 스미는 열린 공간이다. 북동서 3개 방향에 주 출입구가 있고, 건물 전체로 치면 7개의 입구가 있다. 2층에는 기획전시관과 3개의 대형 상설전시관이 위치하고 테라스로 나가면 바다와 홍콩섬이 거대한 액자처럼 걸린다. 옥상은 전망이 시원한 정원으로 조성돼 있다. G층과 B1층은 표를 사지 않고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한국인인 정도련 부관장 겸 수석큐레이터는 M+를 순수예술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영상을 아우르는 현대시각문화박물관이라며, 이곳을 중심으로 한 서구룡문화지구는 홍콩이 다시 태어나는 곳이라 소개했다. “홍콩은 미식과 쇼핑의 천국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지난 몇 년간 문화의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M+는 홍콩과 중국,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컬렉션을 지향하는 박물관입니다. 한국 여행객도 새로운 홍콩을 보려면 꼭 이곳을 방문하실 것을 추천합니다.”
서구룡문화지구는 M+와 인근 고궁박물관을 아우르는 해변공원 일대를 일컫는다. 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에 홍콩만큼 재주를 발휘하는 도시도 드물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 서구룡문화지구가 어마어마하게 넓은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전체를 한 바퀴 걸어도 채 2km가 되지 않는다. 그 안에 박물관과 잘 가꾼 예술공원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홍콩 도심에서 느긋하게 해변산책이나 소풍을 즐길 수 있는 트인 공간이다. 해 질 무렵 노을이 특히 아름답고 주변 경관이 깔끔해 예쁜 사진을 찍으려는 젊은 층이 상대적으로 많이 찾는다.
2가지 홍콩 야경, 빅토리아피크와 디즈니랜드
홍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대표 관광지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빅토리아피크(피크)다. 해발552m로 홍콩섬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홍콩섬과 주룽반도의 고층빌딩 그리고 그 사이를 가르는 빅토리아하버까지 도심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버스를 이용해도 되고 등산로도 있지만 여행객이 피크에 오르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피크트램(왕복 88홍콩달러, 약 1만5,000원)을 타는 것이다.
피크트램은 1888년 영국 총독과 산정에 거주하는 영국계 주민들을 위해 운행을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강삭 철도 중 하나다. 홍콩 센트럴에서 산정까지 1,278m를 이동하는 데에 약 6분이 소요된다. 해발 33m에서 396m까지 단숨에 오르는 셈이니 가파르기가 거의 수직에 가깝다.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객차는 변신을 거듭해 현재는 넓은 창을 통해 선로 양쪽과 천장까지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피크에 여행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은 당연히 환상적인 야경을 볼 수 있는 해 질 무렵이다. 상부 정류장에 도착하면 몇 차례 지그재그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전망대인 스카이테라스428(입장료 75홍콩달러)까지 올라갈 수 있다. 중국요리 기구인 웍 모양의 건물에 올려진 전망대는 특별한 장식 없이 전망 통로를 갖춘 평평한 옥상이다.
코앞에 센트럴의 고층아파트부터 바닷가의 대형 업무용 빌딩까지 우후죽순처럼 솟아 있고, 바다 건너 홍콩 최고층(112층) 국제상업센터(ICC)에서부터 높고 낮은 빌딩이 파노라마로 이어진다. 관람객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쉴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어 여유롭게 낭만을 즐기기엔 아쉬움이 많다. 이럴 땐 전망대를 과감히 포기하고 건물 옆 계단이나 산책로를 조금 걷는 편이 오히려 낫다. 전망대와 큰 차이 없는 홍콩의 야경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피크트램 이용권은 인터넷으로 구입하거나 현장에서 사도 되지만 홍콩의 대중교통 카드인 ‘옥토퍼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개찰구에 카드를 대면 올라갈 때 66홍콩달러, 내려올 때 22홍콩달러가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마블영화 팬이라면 홍콩 디즈니랜드를 빼놓을 수 없다. 다음 달 22일까지 아이언맨과 캡틴아메리카, 스파이더맨, 토르 등 마블의 슈퍼히어로가 총출동하는 ‘어벤저스와 내일의 히어로 집합’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팬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와 악수를 하거나 사진을 찍을 기회도 주어진다. 한 가지 흠을 잡자면 모든 행사가 중국어로 진행된다. 원래 영어를 사용하는 캐릭터라 적응이 쉽지 않다.
놀이공원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불꽃놀이. 오후 8시 40분부터 20분간 놀이공원 중앙의 거대한 성이 미디어파사드로 변신해 ‘모멘터스’ 공연이 펼쳐진다. 약 40편의 디즈니 클래식 장면과 캐릭터가 성과 춤추는 분수에 애니메이션으로 투사되고, 해당 영화 음악과 함께 화려한 불꽃이 하늘을 덮는다. 불꽃놀이만으로 평가하면 한국의 놀이공원에 미치지 못할 수 있지만, 캐릭터마다 생기를 불어넣은 디즈니의 탄탄한 스토리와 결합해 관람객을 동심과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홍콩=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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