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소리 나는 그룹 이름을 공짜로... K팝 '이름값'의 두 얼굴
그룹 인피니트 리더인 김성규는 2년 전 떠난 전 소속사 울림엔터테인먼트(울림)의 이중엽 대표를 올해 초 찾아갔다. 2019년 노래 '클락'을 낸 뒤 활동이 뚝 끊긴 인피니트 재결합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었던 김성규는 이 대표에게 "회사를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여섯 멤버가 그룹 활동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가 보고 싶다는 취지였다.
생일 선물로 그룹 이름 받은 아이돌
독자 활동의 관건은 '인피니트'라는 그룹 상표권 확보. 이 대표는 김성규의 뜻을 확인한 뒤 그룹명에 대한 상표권을 인피니트컴퍼니로 넘겼다. 인피니트컴퍼니는 김성규가 새로 차린 회사. 특허청확인 결과 인피니트 상표권은 4월 21일 울림에서 인피니트컴퍼니로 이전됐다. 김성규의 생일(4월 28일) 1주일 전이었다. 해외 체류 중인 이 대표는 16일 한국일보에 "회사를 차리고 전 멤버들이 모두 모여서 그룹 활동을 한다기에 지원할 방법을 이것저것 알아보다 (김)성규 생일에 맞춰 상표권을 선물로 준 것"이라고 말했다. 상표권 이전은 무상으로 이뤄졌다. 그동안 K팝 시장에서 상표권 양도는 법적 분쟁에서 승소(그룹 신화)하거나 전 소속사에 대가를 지불(갓세븐, 유키스)하는 형태로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졌다. 이를 감안하면 울림과 인피니트 멤버 간 상표권 양도 방식은 이례적이다. 김성규는 본보에 "전 기획사가 우리의 앞날을 응원하는 취지에서 팀명을 비롯해 팬클럽명(인스피릿) 등 그룹 관련 모든 상표권을 양도했다"고 알렸다.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었던 상표권 이전 문제가 동화처럼 해피엔딩으로 귀결되면서 업계뿐 아니라 K팝 팬덤에서 최근 인피니트의 상표권 이전 사례는 여러모로 화제다.
잇따르는 '홍길동 그룹'... K팝 산업 그림자
하지만 K팝 시장에서 상표권 양도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하다. 전 소속사와의 팀명 사용 협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해 제 이름을 쓰지 못하고 새로운 이름으로 활동하는 그룹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롤린'(2017)을 발표하고 4년 뒤 그 노래로 각종 음원 차트 정상을 석권하며 칠전팔기로 성공한 그룹 브레이브걸스는 앞으로 팀 이름을 쓰지 못한다. 그룹명 상표권을 지닌 전 소속사 브레이브엔터테인먼트를 떠나 새 소속사(워너뮤직코리아)와 계약을 맺은 데 따른 결과다. 워너뮤직코리아 관계자에 따르면 브레이브걸스는 '브브걸'이란 새로운 팀명으로 활동한다. 두 회사 간 상표권 사용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팀 이름 변경은 기획사가 주도하는 K팝 산업 제작 구조와 관련이 깊다. 그룹의 결성과 데뷔를 기획사가 전담하다 보니 기획사가 상표권 소유의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다. 기획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전속 계약 7년이 끝난 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기존 소속사와 팀명 사용을 합의하지 못할 때쯤 잡음이 불거진다. 데뷔 후 7년 넘게 써온 그룹명을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하는 이른바 '홍길동 그룹'들이 K팝 시장에 등장하는 이유다. 2009년 10월부터 2017년 2월까지 7년여를 비스트로 활동하다 전 소속사와 상표권 사용 합의를 보지 못해 2017년 3월부터 팀명을 바꾼 하이라이트가 홍길동 그룹의 대표적 사례다. H.O.T.는 2018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재결합 공연 무대와 포스터 등에 'H.O.T.' 표기를 하지 못했다. 팀명 상표권을 지닌 SM엔터테인먼트 출신 연예기획자 김모씨와 상표권 사용 합의를 하지 못해 벌어진 촌극이었다. 2018년 당국이 보급한 '표준계약서'엔 '계약 기간이 종료된 후에 상표권을 기획사가 가수에 이전한다'(제8조)라고 명시돼 있지만 그대로 적용되지 않기 일쑤다. '기획업자 상표 및 디자인 개발에 상당한 비용을 투자하는 등 특별한 기여를 한 경우에는 가수에게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기획사와 가수들이 서로 유리하게 해석하면서 상표권 사용 및 양도 관련 분쟁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상표권 사용 및 양도 가이드라인 필요"
가요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A그룹은 전 소속사가 수억 원대의 큰돈을 요구해 상표권 확보를 포기했다. 2010년대 데뷔한 B그룹 멤버들은 지난해 전 소속사 대표를 찾아가 상표권 양도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렇게 상표권을 둘러싼 신경전이 지속되는 만큼 상생을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기획사가 상표권을 가수에게 팔 때 공연한 트집을 잡을 수 없도록 일정 금액을 넘을 수 없는 상한선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음악평론가는 "상표권은 기획사 입장에선 지적재산권(IP)"이라며 "단발성 계약으로 재결합할 경우에는 이후 활동한 기간만큼 사용료를 받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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