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겐다즈와 믹스커피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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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음료수 한 잔 사달라는 후배와 편의점에 갔다.
중년답게 건강에 좋다는 콩 음료 한 병을 집어 계산대에서 기다리는데, 구석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후배가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들고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온다.
그러나 역시나, 이 회사의 복지라고는 허름한 탕비실이 전부다.
그것도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있고' 싱크대에서 온수가 '나오며' 하루 한 개의 컵라면과 두 개의 믹스커피가 '허용되는' 탕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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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음료수 한 잔 사달라는 후배와 편의점에 갔다. 중년답게 건강에 좋다는 콩 음료 한 병을 집어 계산대에서 기다리는데, 구석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후배가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들고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온다. 웃음의 의미가 궁금하던 찰나 점원이 ‘삑’ 하고 바코드를 찍었다. “헐~” 손바닥보다도 작은 아이스크림 하나가 5,900원이라니. “야, 내 것보다 여섯 배나 비싼데? 니 돈으로는 안 사먹을 거면서….” 후배는 구시렁대는 좀생이 선배 앞에서 꿋꿋이 아이스크림을 퍼 먹다 말고 불쑥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너무 비싸죠? 근데 이 비싼 걸 직원들 먹으라고 탕비실에 쌓아놓는 회사가 있대요. 완전 부러워요. 웃긴 건 이 회사에서 하겐다즈 먹는 건 죄다 신입이고, 고참들은 질려서 거들떠도 안 본다는…하하하”
‘탕비실 상위 몇 프로 정도 될까요’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화제가 된 게 이 즈음이다. 게시물에 첨부된 사진을 보면, 고가의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냉동고에 가득하고, 탁자 위엔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 일리 캡슐이, 양문형 냉장고 안엔 제로콜라를 비롯해 과일주스와 각종 건강 음료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게시물에는 “상위 1% 탕비실이다” “하겐다즈에서 미쳤다” “당장 입사지원할게요” 등 직장인 누리꾼들의 부러움이 댓글로 쏟아졌다. 물론, 탕비실 사진 몇 장으로 그 회사의 업종이나 직원 처우, 복지 혜택 수준까지는 알 수 없으나, 직원을 배려하는 정성만은 선명하게 읽힌다.
부러움은 상대적 박탈감을 수반하곤 하지만 나와 비슷하거나 더 못한 처지를 접하면 어느 정도 중화되기 마련이다. 중소기업 직원들의 서글픈 일상을 담아낸 웹 드라마 ‘좋좋소’는 그런 이유로 많은 직장인의 사랑을 받아 왔다. 극 중에서 주인공 조충범은 출근 첫날 상사에게 회사 복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묻는다. 불과 몇 시간 만에 회사의 비전부터 업무 시스템, 급여 수준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음을 파악한 그에게 복지는 마지막으로 기대해 보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역시나, 이 회사의 복지라고는 허름한 탕비실이 전부다. 그것도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있고’ 싱크대에서 온수가 ‘나오며’ 하루 한 개의 컵라면과 두 개의 믹스커피가 ‘허용되는’ 탕비실. 한 봉에 100원 남짓 하는 믹스커피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암울한 현실 앞에서 조충범의 눈빛은 초점을 잃었다. 그래도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조충범은 사표를 못 낸다.
조충범은 현실에서도 널렸다. 탕비실에 하겐다즈는커녕 믹스커피조차 없는 일터도 수두룩하다. 인턴 사원에게 탕비실 이용료를 내라고 했다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분을 산 회사도 있다. 물론, 탕비실의 수준이 그 회사의 기본적인 처우나 업무 강도, 휴가 및 출퇴근 문화, 복지 혜택, 경영철학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다만, 고물가에 찌든 삶은 차치하고라도, 날로 버거워지는 업무강도와 ‘칼퇴 불가’ ‘눈치 휴가’ 문화에서 지쳐가는 직장인들에게 ‘달콤한’ 과자 한 조각은 때로 큰 위로가 된다. 여기에 더해 ‘일할 맛’까지 느끼는 수준이라면 회사로선 작은 투자로 큰 성공을 거두는 셈이다. 아주 작은 것에서 감동받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정을 떼이는 게 우리 사는 세상이다.
박서강 멀티미디어부장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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