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연극으로 돌아오니… 고향 찾은 연어 된 기분”
“직장을 다니며 가족을 꾸리고 무대 위에서 늙어가는 한 남자의 일생 전체를 무대 위에 펼쳐 보일 수 있어요. 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 보는 역할을 이제야 맡게 됐네요.”
15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박근형(82)은 “30대 후반부터 60대 후반까지, 몽상 속에 나오는 인물부터 실제 인물까지 변화를 표현하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오는 21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연출 신유청)에 주인공 ‘윌리 로먼’으로 출연한다. 7년 전 국립극단 연극 ‘아버지’(연출 박정희)에 이어 무대 복귀작도 다시 아버지 역할. 이번엔 시대의 흐름도 과거의 잘못을 속죄할 기회도 놓친 채 늙고 또 낡아가는 아버지다.
박근형 배우는 “마음 같아선 매해 연극 하고 싶다. 자꾸 기회를 놓치나 싶더니 벌써 연극한 지 7년이 됐대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젊었을 땐 몰랐던 젊은 아버지부터 노년의 아버지까지 ‘세일즈맨’ 윌리 로먼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고요. 영화나 방송엔 노역이 별로 없지만 연극은 세계적 작품들이 무궁무진해서 다행이다 싶어요.” 그는 “단순히 줄거리만 따라가기보다 실생활의 즐거움과 슬픔 같은 속 안의 감정을 집어넣어 보려 노력하고 있다”고도 했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아서 밀러(1915~2005)의 1949년작 희곡. 할리우드 영화만 4편 넘게 만들어졌고 더스틴 호프먼 등 당대의 명배우들이 윌리 로먼 역을 맡았다. 국내에서도 전무송(81) 등 숱한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공연했다. 박근형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대를 뛰어넘는 호소력이 큰 작품”이라고 했다. “사람은 저마다 꿈을 꾸며 살죠. 그 꿈을 이루려 평생을 애쓰지만, 뭔가 이루는가 싶은 그때 가장 큰 위기가 옵니다. 그 안타까움을 이루 말로 할 수 없지요.”
재벌 회장님이나 고위 정치인 역할을 주로 해왔지만 이번엔 평범한 세일즈맨. 그는 “오랜만에 아주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역할을 만났다”며 또 즐거워했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일본 형사 역할 같은 악역은 스스로 제 연기의 한계를 깨뜨려 보려 궁리할 때, ‘역할 창조’라는 연기 이론을 실제 적용해 본 거였어요. 이후에 ‘성격파 배우’로 그런 역할들을 맡게 됐고요. 이상의 ‘날개’나 이광수의 ‘무명’ 등에 등장하는 방관적 지식인 역할도 많이 했어요. 세일즈맨 윌리 로먼은 또 다른 도전입니다.”
최근 우리 연극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연출가 중 한 명인 신유청이 연출을 맡았다. 아내 ‘린다’ 역의 예수정, 큰 아들 비프 역의 성태준·이형훈 등 출연진도 탄탄하다. 고집불통에다 정신까지 오락가락하기 시작한 남편을 끝까지 감싸는 아내 린다는 꿋꿋해서 더 안쓰러운 인물이다. 동년배 중엔 드물게 평소 아내에게 살갑게 대하기로도 유명한 그는 극중 린다의 운명도 안타까워했다. “참 마음이 고운 아내이지요. 그런데 남편 윌리는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해요. 딱 한 장면에서 ‘당신 너무 지쳐 보인다’며 끌어안고 다독이는 것뿐이죠. 안쓰럽지요.”
1958년 연극 데뷔 후 연기 경력이 벌써 65년. 그는 지나고 보니 박근형의 연기 인생은 “촌놈이었다”고 했다. “전북 정읍 시골의 대가족 안에서 자랐던 게 인간의 본성을 가르쳐 준 것 같아요. 그래서 남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는 속도가 빠른 ‘촌놈’이 됐지요. 소년 시절 겪은 전쟁, 눈앞에서 자폭하는 빨치산을 본 일, 시험을 쳐서 서울로 유학 온 촌놈의 경험이 내 연기의 자양분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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