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트, 美 입양 보낸후 방치...37년간 불법체류자 생활”
국내 입양 기관이 1979년 미국으로 입양 보낸 신성혁(48·미국명 애덤 크랩서)씨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과거 해외 입양 과정의 불법성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재판장 박준민)는 16일 신씨가 국내 입양 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이하 홀트)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홀트는 신씨에게 1억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다만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가 당시 ‘불법 입양’ 과정에 개입했다고 볼 수 없단 이유였다.
이 사건은 신씨가 2019년 “홀트와 국가가 나를 미국으로 입양 보낸 뒤 시민권 취득 여부 확인 등 기본적인 사후 관리조차 하지 않아 37년간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살아야 했다”며 소송을 걸면서 시작됐다. 4년 만에 신씨 승소로 끝난 이 사건을 두고 법조계에선 “1970~1980년대 해외 입양의 이면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란 얘기가 나온다.
신씨는 네 살 때인 1979년 3월, 홀트를 통해 두 살 터울 누나와 함께 미국 미시간주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신씨 남매는 이후 6년간 양부모로부터 폭행과 학대를 당하다 파양됐다. 이후 그는 누나와 떨어져 오리건주의 다른 집으로 입양이 됐는데 거기서도 학대를 당했다. 그의 양부모는 1991년 아동 학대로 체포됐고, 신씨는 12살 나이로 또다시 파양돼 노숙 생활을 했다.
그는 몇 년 뒤 한국에서 가져온 성경과 강아지 인형을 되찾으려고 두 번째 양부모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가 들켜 ‘주택 침입죄’로 형사 처벌을 받았다. 출소 후 식당 일 등을 하다 베트남계 미국인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뤘다. 양부모가 시민권 신청도 해주지 않아 신씨는 이때까지도 불법 체류자 신세였다. 그는 2015년 미국 영주권 신청을 했다가 되레 과거 범죄 경력이 문제가 돼 이듬해 가족을 두고 한국으로 추방됐다.
37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그는 생모를 만났다. 모친을 통해 그는 자기의 본래 한국 이름이 ‘신성혁’이란 걸 처음 알게 됐다. 입양 서류엔 ‘신송혁’으로 잘못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입양 정보의 부실·허위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덴마크, 미국 등 10국 650여 명이 가입한 세계 최대 한인 입양인 커뮤니티인 ‘덴마크 한국인 진상 규명 그룹’은 지난해 ‘인권침해 해외 입양’ 사례 334건을 우리나라 진실화해위에 제출했다. 여기엔 입양 과정에서 부모가 있는데도 고아라고 적힌 사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아 호적이 있으면 대리인을 통해 아이를 바로 양부모에게 보내는 ‘대리 입양’이 가능했다. 입양이 용이하도록 아기 관련 정보를 허위 기재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신씨와 비슷한 소송이 줄을 이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미국 내 한인 입양인 중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사람은 1만8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국내 최대 입양 기관인 홀트도 작지 않은 타격을 받게 됐다.
한국말을 못하는 신씨는 한국에 온 뒤 취업을 못 해 생활고를 겪었다고 한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병원이나 상점에 갈 때도 ‘한국인처럼 생겼는데 왜 한국말을 못하느냐’는 말을 들었다”며 “가족들로부터 강제 격리된 삶이 끔찍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 생활 3년째였던 2019년 홀트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자신을 입양 보내 수수료만 챙기고, 정작 그가 미국 시민권을 땄는지 확인하는 기본적인 보호 조치도 하지 않아 37년을 불법 체류자로 살았단 취지였다.
법원은 “홀트가 신씨에 대한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며 이를 받아들였다. 신씨는 작년 가족이 있는 멕시코로 떠났다. 신씨 변호인단은 이날 선고 후 “불법 해외 입양을 용인해온 국가의 책임을 인정 안 한 것에 대해선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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