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유아인의 기습 출석
향정신성의약품인 프로포폴 등 여러 종류의 마약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배우 유아인씨가 16일 오전 9시 경찰에 기습 출석했다. 지난 11일 계획된 경찰 조사에서 “취재진이 너무 많다”며 갑자기 출석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한지 닷새 만이다. 당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일방적으로 조사를 취소한 유씨에 대해 “일정이 계속 조율되지 않으면 체포 또는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경찰이 유씨에 대해 강경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유씨가 경찰 조사를 미룬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첫 소환 때도 유씨 측은 조사 당일 “모든 언론에서 경찰 출석이 기사화됐다”며 “부득이하게 경찰에 출석 일자 조정을 요청했다”고 했다.
경찰 조사는 피의자와 경찰 간에 일정을 사전 조율한 뒤 이뤄진다. 경찰이 일방적으로 “몇 월 며칠 몇 시에 나오세요”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씨의 경우에도 그를 대리하는 변호사와 여러 차례 날짜와 시간을 조정했다고 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자주 소환할 수 없는 (유씨의) 입장을 고려해 공범들 조사를 한 뒤에 뒤늦게 부른 것”이라고 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유씨가 “경찰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마음대로 조사에 안 오냐”는 얘기가 나온다. 한 수사관은 “피의자가 수사를 받으러 오는 건 당연한 절차인데 일방적으로 출석을 못 하겠다고 통보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연예인이 아니라 일반인이었으면 그렇게 행동했겠느냐”고 했다.
유씨의 혐의는 명확해 보인다. 경찰 등에 따르면 유씨의 모발과 소변을 검사하니 대마·프로포폴·코카인·케타민 등 4종의 마약류 성분이 검출됐다. 이후 조사에서는 향정신성의약품 졸피뎀을 의료 외 목적으로 처방받은 정황이 추가로 포착됐다. 그와 관련한 공범도 4명에 달한다.
지난 경찰 조사 당시 유씨는 조사가 끝나고 청사를 나서면서 취재진 앞에 서서 수척한 얼굴로 “밝힐 수 있는 부분은 다 밝혔다”며 “깊이 반성한다, 실망드려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경찰 조사에서 그는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찰 관계자는 “취재진 앞에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과 조사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고 했다.
2003년 데뷔한 유씨는 데뷔 직후 드라마 ‘반올림’ 출연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2015년에는 영화 ‘사도’로, 2021년엔 영화 ‘소리도 없이’로 남우주연상도 수상했다. 20년간 각종 촬영장과 방송국, 시상식의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섰던 그가 경찰청사 앞 20여 명의 취재진을 보고 도망친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진 탓을 하며 출석을 취소했던 유씨는 16일 오전 경찰청사 앞 주차장에 내린 뒤 빠른 걸음으로 조사실로 들어갔다. 질문을 하는 기자들에게 아무런 말도 않고 지나쳤다. 유씨는 지난 조사 후 “그동안 살아보지 못한 진정 더 건강한 순간들을 살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지는 것이 그가 말하는 기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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