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음악과 책, 이야기가 흐르는 공간
낮에는 생업, 밤에는 음악가인 삶을 사는 친구들이 있다. 생업과 본업을 다 잘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필자 주변엔 여럿 있다. 한 가지도 잘하기 힘든 세상인데 이것저것 다 잘하니 사람 기죽이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다. 그들의 삶을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우선 그들은 무척 부지런하다. 스스로는 게으르다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생업에 그 누구보다 열심이다. 어디 그뿐인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한다. 남들보다 하루를 두 번 살고있는 듯한 느낌이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보고, 운동도 한다. 한 시간 정도의 거리는 걸어 다니며 자연스럽게 운동과 사색을 겸한다. 타인과의 대화에서는 매우 적극적이며 긍정적이다. 그들도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이야기한다. 필자는 그들이 가진 공통점 하나를 찾았다. 대부분 음악과 책, 이야기가 흐르는 공간이 있다.
이즈음 되면 다들 이렇게 이야기한다. 먹고살 만하니 그렇지…. 오해하지 마시라. 이들에게 공간이란 소유를 위함이 아니라 공유를 위한 공간이다. 혼자서 고고하게 책을 보면서 음악을 듣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책을 보고,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결코 화려하거나 대단한 공간이 아니다. 조그마한 공간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나오는 대화의 폭도 상당히 넓다. 세상에 있는 이야기는 모두 화제가 된다. 중요한 점은 흘러가는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눈 이야기를 실천하려는 의지와 실행력 또한 높다.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책 읽고, 토론하고, 노력한다. 이러기 위해 공간이 필요한 것이고, 이 공간을 위해 혼자 또는 여럿이 모여 일을 꾸민다.
이 공간은 “열매를 숙성시키기 위해 천천히 나아가는 자연의 시간을 유전자 조작을 통해 단축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의 아름다운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기를 것”이라는 재독 철학자 한병철 책 ‘시간의 향기’의 역자 해설에 나오는 대목을 실천한다. 모두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이들은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의미를 알고자 때때로 시간을 음미하고 향을 만들어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이럴 때 대부분은 공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모일 공간이 있어야지 하면서 공간을 탓한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나라처럼 공유 공간이 많은 곳도 있나 하는 생각이다. 하루에도 몇 개의 카페와 문화 공간들이 만들어진다. 어디 그뿐인가. 주변을 둘러보면 일주일에 몇 번 사용하는지 모를 종교단체의 공간과 사무실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공간이 부족한 것은 공유보다는 소유의 공간을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유에 민감한 우리네 삶의 현실을 공간에서도 만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공간보다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이다. 또다시 원점이다. 결론은 사람이다. 사람들의 뜻이 모이면 공간은 만들어진다.
아침, 저녁으로 걷기 좋은 시간이다. “걸어가면 여행이고, 차를 타고 가면 출장이다. 모르는 길을 가면 여행이고, 아는 길을 가면 일이다.” 걷기를 생활화하는 전직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걷기를 열성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만난다. 필자 또한 걷기가 재미있어지고 있다. 걸으면서 늘 쫓기듯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에 여유가 생겼다. 그전보다 몸이 건강해지는 듯한 느낌도 좋다. 다니는 길도 다시 발견하고, 공사장 틈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을 만나니 반갑고, 밤에 걷다 만나는 도시의 야경은 다른 세상이다.
여행하듯 출퇴근하는 요즈음 필자는 퇴근 후 골목 여행을 열심히 하고 있다. 여행 중 만나는 많은 빈집을 조그마한 문화 공간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도심 속 골목을 걷는 길은 많은 상상을 만들어 준다.
필자는 ‘공간’과 ‘사람’이라는 두 단어를 ‘함께’라는 한 단어로 정리하고 싶다. 음악과 책, 그리고 이야기를 만나는 공간이 평범한 일상의 공간으로 자리 잡으면 우리 삶은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느긋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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