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간 매주 안 쉬고 연재… “초심 잃었단 말 듣기 싫다”

이영관 기자 2023. 5. 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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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라이터] [6] 조회수 91억회, 웹툰 ‘외모지상주의’ 작가 박태준
박태준 작가는 “예전에 ‘얼짱 아니냐’며 사진 찍어달라고 하시는 분이 많았는데, 나이가 점점 차며 부끄러웠다”며 “저를 어떻게 기억하시든, 알아봐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전직 ‘얼짱’이 반팔 소매를 걷자, 어깨에 부항 자국 세 개와 반창고 하나가 드러났다. 케이블TV 채널 방송 ‘얼짱시대’에 출연해 이름을 처음 알렸고, 이제는 9년 차 웹툰 작가인 박태준(39)이다. 계속된 그림 작업으로 오른쪽 어깨와 팔꿈치 인대가 상했다고 한다. 2014년 첫 웹툰 ‘외모지상주의’로 데뷔할 때만 해도 지금의 작가를 상상했던 이는 없을 것이다.

9개 언어로 연재 중인 데뷔작의 글로벌 누적 조회 수는 91억회.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작품 중 가장 높은 수치다. 5월 현재 네이버웹툰 월·화·목·금·일요일 1위 작품의 작가명에도 그의 이름이 적혀 있다. 6년 전 직접 설립한 웹툰 제작사 ‘박태준만화회사’(법인명 더그림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오는 작품들이다. 회사 연매출은 재작년 60억원에서 작년 150억원으로 급등했다. 최근 서울 신사동 사옥에서 만난 그는 “창작자 혼자서는 불씨가 꺼지기 쉽다. 같은 DNA를 가진 동료들과 더 멀리, 크게 가고 싶다는 생각에서 회사를 차렸다”고 했다.

박태준의 별명은 ‘환승 전문가’다. 인터넷 얼짱으로 소문 나 2009년부터 ‘얼짱시대’ 방송 시리즈에 잇따라 출연했다. 노래를 발표했고, 웹드라마 등 영상에 출연했다. 동시에 쇼핑몰 대표를 맡으며 피팅 모델 일도 겸했다. 그러다 나이 서른, 어릴 적 꿈인 만화에 도전했다. “처음 웹툰 연재할 때 ‘만화 잘 보고 있다’며 사인 해달라고 한 분이 있었는데,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어요.”

‘외모지상주의’ ‘인생존망’ ‘김부장’ 등 더그림엔터테인먼트 소속 작가들이 그린 인물들. /더그림엔터테인먼트

웹툰 작가로 변신한 뒤, 한순간도 펜을 놓지 않았다. ‘외모지상주의’를 9년간 연재하면서 휴재한 적이 없다. 매주 마감을 해야 하는 웹툰의 특성상 휴재하는 일이 종종 있다. 건강 악화를 비롯해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박태준은 동시에 최대 3개 작품 제작에 참여해 왔다. ‘외모지상주의’는 스토리와 그림을, 나머지는 스토리 제작만 맡는 식. ‘만화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쉬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작가는 쇼핑몰을 운영하던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제가 힘들다고 배송 안 보내면 그분들이 저를 응원해 줬을까요, 욕을 했을까요? 지금도 독자들과 계약하고 작품을 납품한다고 생각해요. 초심 잃어버렸다는 얘기도 듣기 싫습니다.” 지금도 작가는 네이버웹툰 화·목요일 각 1위인 ‘김부장’과 ‘촉법소년’의 제작 총괄을 맡고 있다.

웹툰계를 날아다니는 지금과 달리, 소년 박태준은 달릴 수 없었다.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3년 동안 신발 한 켤레만 신고 다녔다. “어머니 혼자 경제활동을 하셨고, 아버지는 매일 술만 드시고 들어오셨습니다. 당장 집 월세 낼 돈이 없던 적이 많습니다.” 만화가의 꿈을 안고 상명대 만화과에 진학했으나 1년 만에 관뒀다. 학자금 대출 등 돈을 감당할 수 없었다. “여유 있게 산 친구들은 미래를 생각할 뿐 죽을 수 있다는 가정은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저는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경험을 많이 겪었어요. 돈에 대한 갈망이 커졌고, 불나방처럼 살기 시작했습니다.”

만화책이 학창 시절 유일한 탈출구였다. 외모를 꾸미지 못했고, 왜소한 체격으로 학교에서 소외되기 일쑤였다. “현실은 답이 없었고, 눈뜨고 잘 때까지 다 불행했습니다. 만화를 읽으면 그 세계로 가버릴 수 있어서, 집착하듯 읽고 그렸습니다.” 당시 경험이 ‘외모지상주의’ ‘인생존망’ 등 초기작부터 최근 제작 총괄을 맡고 있는 ‘촉법소년’ 등에 녹아 있다. 왜소한 학생이 힘을 기르고, 학교 등에서의 폭력에 대항하는 서사의 작품이 많다. ‘폭력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폭력의 당위성을 드러낸다고 느낀다면 작가의 능력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폭력은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본능이에요. 분출할 곳이 없는 요즘,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한 독자분들이 사랑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가로수길 인근에 위치한 6층 규모 ‘박태준만화회사’의 불은 밤새 꺼지지 않는다. 작가는 “(밤에) 불 좀 껐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그 역시 밤새 작업할 때가 많다. 웹툰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60여 명을 포함해 100여 명 직원이 있다. 작가는 이들이 만드는 ‘시너지’를 믿는다. “될 때까지 회의하면 아이디어가 나오더라고요. 모두 제 작품은 아니지만, 큰 방향성을 같이 가져가며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건 ‘우리’만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는 작가로서도 새 도전을 앞두고 있다. 이르면 올해 중에 판타지 성격이 짙은 웹툰을 발표한다고 한다. “꿈은 건방질 수 있잖아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 그리고 제 유통기한을 최대한 늘릴 겁니다.” 회사라는 새 신발을 얻은 작가에겐 달릴 힘이 남았다.

박태준의 웹툰 작가로 사는 법

영감을 준 웹소설

웹소설은 상상력을 기르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담겨 있어서, 매일 밥 먹을 때마다 본다. 미래의 지식을 공부한 주인공이 인류를 구하기 위해 환생하는 ‘환생좌’는 회귀물과 웹소설이란 신세계를 열어준 작품이다. 무협 게임을 하다 죽었는데 게임 속 주인공으로 환생하는 ‘중생지마교교주’를 보며 내 창작의 세계관이 넓어졌다. 스케일이 충격적이고, 캐릭터나 스토리도 재미에 특화됐다.

인생을 바꾼 만화

힘들던 학창 시절, 희망과 즐거움을 주변에 전도하는 ‘도라에몽’을 보며 현실을 벗어나 위안을 얻었다. 만화책을 보면서 처음으로 운 건 ‘드래곤볼’이다. 어릴 때부터 만화가의 꿈을 키우게 해 준 작품이다. 네이버웹툰에 연재됐던 ‘패션왕’을 만나지 못했다면 웹툰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도 기안84 작가가 존경스럽다.

즐겨 먹는 음식은

바빠서 먹을 생각조차 못할 때가 많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먹고 싶을 것을 많이 시킨 다음, 남은 음식을 보관해두고 다음 끼니 때까지 먹는다. 한 샐러드 업체에서 파는 ‘웜볼’(채소와 고기, 생선 등을 섞은 음식)을 자주 먹는다. 건강에 좋고 빨리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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