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D 잔고 1·2위 증권사가 비대면 계좌개설 가장 쉬웠다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에서 투자자들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것은, 주가 조작 세력이 투자자 본인도 모르게 증권사에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트고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증권사들이 손쉽게 비대면으로 CFD 계좌를 만들 수 있게 해준 것도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CFD는 투자자가 낸 돈의 일정 비율만큼 증권사가 빌려줘서 더 많은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빚투(빚내서 투자)’ 상품이다. 주식이 없어도 담보액(증거금)만 내면 증권사가 대신 매매한 뒤 차익은 투자자에게 주고 증권사는 수수료를 가져간다. 하지만 원금의 2.5배까지 손실이 날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이다.
16일 본지 조사 결과, CFD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증권사 13곳 중 일부의 경우 비대면 개설의 문턱이 낮았다. 주가 조작 세력이 큰 어려움 없이 투자자 명의를 도용해 CFD를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CFD를 통한 주가 조작 가능성은 여전해서 증시의 불안감은 계속되고 있다.
◇키움·교보·유진투자, 비대면 CFD 개설 가장 쉬워
우선 CFD 계좌를 개설하려면, ‘전문 투자자’로 등록해야 한다. ‘최근 5년 중 1년 이상 금융 투자 상품 평균 잔액 5000만원 이상’이라는 필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외 선택 조건 3개(소득·자산·전문가) 중 1개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선택 조건 3개는 ‘전년 소득 1억원 이상’ ‘거주 부동산 제외 순자산 5억원 이상’ ‘금융투자분석사 등 전문 자격증 보유’다.
그런데 키움·교보·유진투자 등 세 증권사는 선택 조건 관련 서류를 이메일이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전송하는 등으로 증빙하면 전문 투자자 등록이 가능했다. 전문 투자자 등록이 쉬운 만큼 CFD 거래 잔액이 가장 많은 증권사도 교보·키움이었다. 3월 말 기준 CFD 거래 잔액은 교보와 키움이 각각 6180억원, 5576억원으로 전체 증권사 중 1·2위였다. 업계 관계자는 “CFD 거래는 대규모 손실 위험이 큰 만큼, 전문투자자 요건 충족 여부를 대면으로 꼼꼼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키움·교보·유진 측은 이에 대해 “비대면 개설 때도 관련 서류의 진본 여부를 철저히 검증했다”고 했다.
하나·신한투자 등 2곳은 소득·전문가 조건을, NH투자·한국투자·삼성·KB·메리츠 등 5곳은 소득 조건을 비대면으로 증빙하면 됐다.
한편 정부는 2019년 11월 개인전문투자자의 지정 기준을 금융 투자 상품 평균 잔액 5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대폭 완화했고, 개인전문투자자는 2019년 말 3330명에서 2021년 말 2만4365명이 돼 2년 새 7배로 급증했다.
◇증권사, 절세 미끼 내세워 CFD 마케팅
증권사들은 CFD를 자산가들에게 ‘절세 상품’으로 주로 마케팅하며 판을 키웠다. CFD 차익에 부과되는 양도소득세율은 11%(지방소득세 포함)였는데, 그마저도 비과세였다가 2021년에 도입됐다.
현재 상장 주식에 직접 투자할 경우 종목당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세법상 대주주’는 최고 33%(비중소기업을 1년 미만 보유할 때)의 양도세율이 적용된다. 그래서 CFD를 쓰면 큰손들은 세금을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대주주 양도세 대상 기준을 넓히면서 CFD로 자산가들이 몰리는 현상은 더 강해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종목당 보유액 기준이 2018년 ‘15억원 이상’에서 2020년 ‘10억원 이상’으로 강화됐다.
◇증권사들 수천억 원 손실로 귀결
이번 폭락 사태로 관련 증권사들이 떠안게 된 CFD 미수 채권(못 받은 돈) 규모가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투자자들이 빚을 내서 투자했다가 빚을 갚지 못하게 되면서 증권사들이 그 빚을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 CFD를 제공하는 증권사 13곳의 CFD 거래 잔액은 총 2조8000억원에 달한다.
금융 당국의 감독 부실도 지적을 받는다. 금융감독원 런던사무소는 작년 12월 CFD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1990년대에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CFD를 도입했던 영국의 금융감독청(FCA)이 CFD가 사기, 규정 회피 등 불법·탈법 가능성이 있어 투자자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원회는 뒤늦게 증권사들이 보유한 CFD 계좌 총 3400개에 대해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에스토니아 “누구든 우크라처럼 당할 수 있다..국방비 증액만이 살길”
- 김진오 로봇앤드디자인 회장, 광운학원에 발전기금 2억 기탁
- 쌍둥이 임신 중 하혈… 40대 산모 헬기 타고 130㎞ 날아간 사연
- 교사노조연맹 “위원장, 노조 카드 사적 사용...사퇴하라”
- “트럼프 인수위, 자율주행 규제 완화 추진”... 머스크에 날개 달아주나
- 하사 연봉 대기업 수준 되나…국방부 “내년 기본급 6.6% 인상”
- 10년 전 1억으로 삼전·아파트·비트코인 샀다면?... 몇배나 올랐나
- 김도영 4타점 맹활약… 한국, 호주 꺾고 프리미어 12 3승 2패로 마무리
- 사상자 19명 발생…부천 호텔 화재 관계자 4명 구속 기소
- 기부 받은 1조4000억도 부족? 해리스, 아직도 후원 요청 전화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