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한·중관계, 이대로 둘 건가

이종섭 기자 2023. 5. 1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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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중국 해관총서가 한국에서 수입되는 화물에 대한 통관검사 강화를 지시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 내 한국 기업인들 사이에서 통관절차 강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 일파만파 확산돼 기정사실처럼 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 국내에서는 중국이 수입 반도체 조사에 착수해 한국산 반도체 수입을 규제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역시 사실무근인 것으로 확인됐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관련 동향에 대해 계속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특이 동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근거 없는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산된 배경에는 최근 한·중관계에 대한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소문이 확산된 시기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방문해 정상회담을 갖고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 공동성명’을 발표한 직후였다. 한·중 간에는 윤 대통령 방미 직전 ‘대만해협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외신 인터뷰 내용을 놓고 거친 설전과 외교적 공방이 이어졌다. 통관검사 강화나 반도체 조사는 루머로 확인됐지만 불안감은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기업인과 교민들 사이에서는 ‘제2의 사드 사태’를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2017년 사드 사태 때 극심한 혐한 정서와 경제적 마찰을 경험했던 이들이라면 지금의 한·중관계를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바라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이런 상황을 얼마나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기업인이나 교민들이 체감하는 ‘위험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무시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든다. 무엇보다 현 정부에 한·중관계를 관리할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가치 외교’를 앞세워 사실상 한·미 동맹 강화와 한·일관계 개선에 ‘올인’했다. 그사이 한국 정부의 대중 외교는 ‘실종’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속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과 북한의 안보 위협 속에서 가치 동맹을 강화하겠다는 대통령과 정부의 판단은 존중한다. 하지만 ‘가치’라는 수식어로 다자 외교에서 필요한 ‘균형과 실익’ ‘손익계산서’를 가려서는 안 된다.

현시점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한·중관계의 명확한 악화 신호에도 이렇다 할 고위급 교류나 소통 움직임이 전혀 감지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윤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5분간 대면한 이후 6개월 동안 한·중 간에는 뚜렷한 고위급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 굳이 사례를 찾자면 올해 초 새로 취임한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과 박진 외교부 장관이 상견례를 겸한 전화통화를 한 것이 마지막이다. 미국과 함께 중국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고위급 교류를 이어가며 대중 관계에서 실리를 챙기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사례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한국이 외치는 가치 동맹의 중심에 서 있는 미국은 관계 악화 속에서도 중국에 끊임없이 대화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일본 외무상도 지난달 중국을 찾아 친 부장과 회담을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은 외교정책의 조정기로 볼 수 있다. 앞으로가 문제다. 이제는 대중 외교도 새롭게 점검하고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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