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의 낯선 사이] 새로운 동맹의 풍경, 한·미 동맹을 다시 생각한다
올해는 한·미 동맹 70주년. 1953년에 조인, 1954년 11월8일부터 발효된 이 ‘동맹’의 정식 이름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이다. 구한말부터 한반도는 외세와의 상호 방위(mutual defense)가 무엇인지에 골몰해왔다. 그만큼 한·미 동맹의 전후 맥락은, 우리 근현대사를 상징한다. 1866년 제너럴셔먼호(號)사건과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를 모두 물리친 조선은, 이후 “일정 때보다 더한 미군정”을 거쳐 지금은 미국과 “글로벌 파트너”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 파트너십은 유동적이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이익에 달려 있지만, 미국 중심의 ‘유연성’도 불변은 아니다. 미국은 베트남, 아프가니스탄에 패배한 나라다. 한국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 정부의 강력한 협상 태도와 이에 걸맞은 미국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국익’의 선(線)을 다르게 그을 수 있다. 국익은 하나가 아니라 게리맨더링 같은 것이다. 국익은 동질적이지 않다. 미국을 이롭게 하면 피해는 서민이 본다.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라면 계산을 잘해야 한다.
‘개자식-이 사람-내 친구’는 변화?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소식을 접하고, 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다. 물론 그의 일생과 인격 그리고 반공, 반북, 극우 가치관에 대한 나의 입장에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북진을 원했던 그는 군대와 무기를 건국의 핵심 공공재로 생각했고, 그 공공재를 최대한 유치하기 위해 미국을 협박했다. 그가 얼마나 미국을 ‘괴롭혔는지’, 34대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승만을 “XXX(son of a bitch”)라고 썼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당시 남한 지배층은 미국을 북한의 방파제로 ‘이용’하겠다는 용미론에 사로잡혔다. 미국에 남한은 개입하고 싶지 않은 귀찮은 존재였다.
주한미군이 점령군이냐 보호자냐 논쟁은 끝이 없다. 이 지면에서 다룰 ‘분량’이 아니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동질적인 국익 개념을 강조하지만 계급, 성별, 지역에 따라 국민 개개인의 삶은 천지 차이다. 새롭지 않은 이야기다. 북한의 지배층도 분단 내내 “우리 민족끼리”를 외쳤지만, 남한과 뭔가를 도모해 잘해보자는 생각이 없다. 북한 지배층은 남한 정권을 외세의 괴뢰(앞잡이)로 보고, 미국과의 직접적 관계를 원한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은 분단의 원흉이 아니라 남북 간 전쟁이 나지 않도록 ‘분단의 균형’을 잡아주는 ‘안정자(stabilizer)’일지도 모른다. 독일의 경우, 주독미군의 역할 중 하나가 파시스트가 부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독일의 진보 세력은 미군 주둔을 원한다.
2001년 3월, 조지 부시 대통령(아들 부시)은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에게 외교사에 길이 남을 폭언을 자행했다. 부시는 기자회견 중 말을 끊고, 김 대통령을 “이 사람(this man)”이라고 지칭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김 대통령은 9·11 등 세계 정세를 숙고하여, 모든 발언에서 미국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했다.
“이 사람” 사건 이후 22년이 지난 윤석열과 바이든은 “친구”가 되었다. 질 바이든 여사의 김건희 여사에 대한 표현을 따라, “내 친구(my friend)”가 된 것이다. 이것이 바이든과 조지 부시의 인격 차이는 아닐 것이다.
참고로 그 전의 미·일 회담에서 바이든은 “후미오(기시다 일본 총리 이름)” “당신은 진짜(real) 리더이자 진짜 친구”라고 표현했고, 기시다 총리는 바이든에게 “내 소중한(dear) 친구인 조”라고 언급했다. 친구, 이것이 당대 미국의 계획에 딱 들어맞는 한·미·일 동맹, 즉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한·일 양국의 역할이다.
주지하다시피 윤 대통령의 ‘아메리칸 파이’ 열창은 미리 조율된 것이다. 통상 대중가요가 3분 내외인데, 이 노래는 장장 9분가량에 가사 내용도 복잡하고 ‘심오하다’. “레닌이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내용도 나오고, 후렴구의 “바이 바이(bye) 미스 아메리칸 파이”는 여성을 지칭하는 속어이다. 윤 대통령은 만찬 건배사로 “한·미는 훌륭한 친구”라고 했고, (내겐) 놀랍게도 바이든은 “우리 함께 갑시다(We go together)”라고 말했다. “함께 가자”는 70년 내내 한국이 주한미군을 향해 주야장천 구애해 온 레퍼토리다. 그 말을, 이제 미국이? 나는 토기(吐氣)를 느꼈다.
하지만 ‘개자식’ ‘이 사람’ ‘내 친구’가 한·미 동맹의 역사는 아니다. 맥락일 뿐이다. 한국 집권세력이 정신을 차리지 않는 한, 한반도는 영원한 미국의 신식민지일 뿐이다. 사막에서나 필요한 아파치 헬기 등 미국의 고철 무기 고가 수입과 미군 주둔에 필요한 엄청난 비용은 온전히 우리의 세금이다. 빌 클린턴의 말대로 남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된 요새”다.
진보와 보수 세력의 한·미 동맹에 대한 논쟁을 떠나, 70년 동맹이면 주권의 일부를 아웃소싱한 관리 국방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한·미 동맹의 진짜 문제는 공동체의 성장을 가로막는 비상식 여론을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일단 군축, 평화 운동이 어렵다. 군축 이전에 늘 ‘자주(自主)’가 문제가 된다. 정상 국가의 염원은 신기루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다. 성역화된 방위산업체의 문제는 심각성을 넘어 미스터리다. 남북한은 이미 ‘주요 무기 수출국’인데 끊임없이 미국 수준의 무력을 원한다.
두 번째는 환경운동, 여성운동의 어려움이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막는 데 ‘외세’만 한 핑계가 없다. 주한미군 범죄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는 그들이 저지른 엄청난 환경 오염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기름 유출, 훈련 시 오발 사고 등은 ‘사소하다’. 한·미 합동훈련 자체가 전시 상황과 같은 환경 파괴를 가져오고, 북한과의 긴장을 고조시킨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다움 규범은 한국 여성과의 관계에서 형성되기보다는 외세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져 왔다. “강대국은 남성, 약소국은 여성”이라는 국력의 성별화는 국제정치 담론의 출발이다. 한국 남성은 ‘실제로’ 외세에 저항하든 그러지 않든,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국민(=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이 자신을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평등을 요구하니 이해할 수 없다. 구조적 문제로서 성차별을 인식하기 어려운 이유다.
세 번째로 성소수자, 장애인, 난민, 노동 문제가 일부 진보 진영이나 야권 지지자에게 “나중에 해결할 문제”로 취급되는 일 역시 대미 종속이라는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의 차별은 민족 차별과 동급이 아니므로 나중에 해결해야 할 “사소한 문제”라는 고정 관념은 뿌리 깊다. 물론 어불성설이다. 민족 모순? 사회적 약자는 외세의 억압을 안 받는가? 제일 먼저 받는다!
주한미군 인식 변화를 ‘국익’으로
최근 출간된 엘리자베스 쇼버의 <동맹의 풍경>(강경아 옮김)은 우리에게 한·미 동맹을 새롭게 인식할 것을 요구하는 역작이다. 이 책은 서울의 이태원과 홍대 주변 유흥업소에 진출한 주한미군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통해 한·미 동맹사를 다시 쓴다.
미군정 시기에 쓰여진 채만식, 최정희, 하근찬, 송병수의 소설부터 1980년대 정찬의 <푸른 눈>까지, ‘푸른 눈’에 대한 공포는 이제는 기피와 경멸, 무시로 바뀌었다. 한국인은 주한미군의 미국 내 계급을 간파하고 있다. 윤 대통령만 미국을 모른다. 한국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주한미군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왔다. 새로운 ‘동맹의 풍경’이요, 다른 단계의 신식민지다. 한국 사회의 미국 욕망은 여전하지만, 주한미군의 지위는 달라졌다.
70년간 이루어진 처벌되지 않은 잔혹한 미군 범죄, 남한 전역의 환경 파괴, 안전보장에 대한 현실 인식(“남침보다 강남역 사건이 더 무섭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일상이 전쟁인 현실…. 어떤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어떤 상황은 변했다. 실제 무엇이 우리 삶을 위태롭게 하는가. 압도적인 자살률 1위 국가에서, 임기가 끝나면 사라질 친구와 우정을 쌓고 온 것 외의 방미 성과를 알고 싶다.
<동맹의 풍경>에 나오는 미군의 호소다. “지하철에서 아무도 내 옆에 앉고 싶어 하지 않을 때 어떤 느낌인지 아세요?” 한국 청년은 말한다. “미군과 어울리는 게 실수라는 생각이 들어요. 걔네들은 여자 꼬시는 영어 외엔 할 줄 아는 말이 없더라고요.” 윤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자존감을 배우기 바란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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