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잠들지 못하는 광주여
5·18 광주항쟁(민주화운동)이 43주년을 맞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기념사를 통해 “5·18을 책임 있게 계승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후손과 나라의 번영을 위한 출발”이라고 언급했다. 그런데도 ‘5·18정신의 헌법전문 수록’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영국의 대헌장(1215), 미국의 독립선언문(1776),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1789)에 이어 5·18 기록물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인권·민주·평화를 갈망하는 보편적 가치가 광주의 5·18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5·18은 1980년 5월18~27일 대한민국 광주에서 일어난 열흘간의 기록이다.
18년 집권의 박정희 겨울 공화국은 산업일꾼이 된 노동자의 피눈물을 갈아엎어 만든 나라였다. 노동자들은 작업능률 명목 아래 국물 없는 식사를 하며, 봉제나 의류공장에서 주당 98시간을 고된 작업에 시달려야 했다. 부마민주항쟁 이후 유신의 심장을 저격한 김재규의 1979년 10·26은, 민주화의 꽃도 피우기 전, 그해 12월12일, 하나회 주축의 신군부 쿠데타에 의해 악몽으로 바뀐다. 서울의 봄은 짧았고 1980년 5월15일, 7만~10만여명의 학생들은 비상계엄 해제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며 서울 도심에서 시위했고, 서울역에서 자진 해산한다. 이틈을 탄 5월17일, 휴교령이 떨어지고, 신군부는 경찰과 공수부대를 동원, 전국 대학을 기습해 학생회 간부 95명을 체포한다. 광주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5월18일. 일요일 오전 9시40분. 휴교령에 맞서 도서관으로 향하던 전남대 학생들은 7공수부대원들에 의해 곤봉으로 무차별 구타, 진압당한다. 무자비한 공수부대의 진압은 오후 3시40분 유동삼거리에서 재개된다. 5월19일. 증파된 11여단 병력이 광주역에 도착하고, 24세 청각장애인 김경철이 계엄군에 의해 최초로 사망한다. 시위대가 불어나고, 작전명 ‘화려한 휴가’의 공수부대 진압 작전이 전개된다. 계엄군의 첫 발포가 시작된다. 성난 시위대가 파출소를 방화한다.
5월20일. 왜곡된 언론 보도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로 광주MBC가 불에 타고, 계엄군 발포로 비무장 시민들 가운데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5월21일. 광주 내 시외전화는 끊기고, 시신 2구가 수레에 실려 금남로에 도착한다. 20사단과 시위대가 충돌하고, 오후 1시 공수부대의 사격이 시작된다. 시민들은 자위권 차원에서 장갑차, 군용트럭, 총기로 무장하기 시작한다. 도청 태극기가 검은 리본과 함께 반만 걸린다. 5월22일. 시민 수습위는 계엄분소를 방문해 수습안을 전달한다. 도청 광장에 시신이 늘어난다.
5월23일. 시민의 자발적 총기 회수가 시작되나, 공수부대가 소형버스에 총격을 가해 17명이 사망한다. 범시민 궐기대회가 열리고, 계엄사 경고문은 시내 전역에 뿌려진다. 5월24일. 수영하던 중학생이 공수부대에 의해 피살된다. 5월25일. 김수환 추기경 등 민주 인사들의 메시지 및 수습안이 전달된다.
5월26일. 계엄군의 시내 진입 저지를 위한 ‘죽음의 행진’이 감행된다. 학생 수습위 대변인인 윤상원이 외신기자에게 광주 상황을 브리핑한다. 광주 시내 전화는 일제히 끊어진다. 500~600명의 시민군이 도청에 남았다. 5월27일. 상무충정작전 개시로 계엄군 탱크가 시내로 진입하고 시가전이 발생한다. 도청 안 시민군은 집중포화를 받는다. 오후 5시10분, 진압 작전은 종료된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전두환 군부 독재에 항거하는 인권 회복의 서사시였으며, 총기 수천 정과 실탄이 난무하는, 공권력 부재 상황에서도 약탈과 강도가 없는, 평화의 광주를 이룩한 시민들의 민주적 서정시였다. 그러나 주먹밥 공동체가 만든 남도의 광주는 오월이면 아픔으로 먹먹해진다.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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