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공약'한 간호법도 거부권 행사…간호사단체 "약속 파기"

박숙현 2023. 5. 17. 00: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실 "간호계 요구 귀 막고 있지 않아" 
거부권 추가 행사 관측엔 "특수성 고려해 판단"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의료계 뜨거운 감자인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지난 4월 양곡관리법에 이어 두 번째다. /대통령실 제공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의료계 직역 간 갈등이 첨예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국민 건강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다"며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 거부권 행사 사례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후보 시절 간호법 제정안을 추진하겠다는 취지의 공언을 한 바 있어 '공약 파기'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야당이 "국민 분열을 택했다"며 '불통' 공세를 퍼붓고 있어 국정 운영 동력을 더 확보해야 할 집권 2년 차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집권 2년 차 첫 국무회의를 열고 간호법 제정안 재의요구권을 재가했다.

지난달 27일 야당의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은 현행 의료법에서 간호 관련 규정을 떼어낸 것이다. 간호 서비스 수요가 늘어났지만, 현행 의료법이 간호사의 업무를 단순히 의사의 의료행위 보조로만 규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간호 업무와 역할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이들의 근무 환경·처우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와 국가의 책무를 담았다.

이에 대해 의사단체는 간호사 업무 영역을 '지역사회'까지 넓힌 것을 두고 간호사가 단독 개업할 수 있는 근거라고 지적하고,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 단체 역시 보건의료 직종의 간호사 종속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며 법안 통과를 강력하게 반대해 왔다.

윤 대통령은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안대로 시행되면 의료·간호계 직역 간 과도한 갈등으로 사회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이에 따라 국민 건강에도 불안감을 초래한다는 점을 거부권 행사의 이유로 꼽았다. 윤 대통령은 "국민 건강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정치 외교도, 경제 산업 정책도 모두 국민 건강 앞에서는 후순위"라며 "국민 건강은 다양한 의료 전문 직역의 협업에 의해 제대로 지킬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집권 2년 차 초반부터 국정 운영 부담을 안게 됐다는 점이다. 이번 재의요구권 행사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처음 행사한 바 있다. 이번 거부권 행사에 따른 부담은 첫 번째보다 훨씬 크다는 게 정치권 평가다.

당장 '공약 파기' 논란에 직면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공약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 20대 대선기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공식 제출한 공약집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는 간호법 제정안 추진에 대한 언급이 없다.

정부 출범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야당과의 협치로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시기에 오히려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 11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를 방문해 정책제안서를 받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하지만 대선 당시 후보가 발표한 다양한 분야와 여러 형식의 공약을 한데 모아뒀던 '윤석열 공약위키'에는 "의료계의 공정과 상식을 지키기 위한 간호법 제정 추진"이라고 실려 있었다. 현재 해당 누리집은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 11일 대한간호협회를 찾아 간접적으로 간호법 제정 노력에 힘쓰겠다는 취지로 발언하기도 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제가 정부를 맡게 되면 의료 기득권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할 테니까 저를 믿어달라"며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대통령은 봤어도, 지금껏 공약을 정면으로 부정한 대통령은 처음"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겉으로만 의료체계를 위하는 '위선'이고,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는 '무능'이고,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는 '오만'"이라고 꼬집었다.

약 한 달 반 만에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독단적'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진다는 우려도 있다. 노동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금지하는 '노란봉투법'과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방송법' 개정안도 조만간 본회의 직회부를 거쳐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3, 4호 거부권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취임 2년 차 국정 동력 확보를 위해 야당과의 협치가 필요한 상황에서 여야 강 대 강 대립 구도는 한층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직후 입장문을 내고 "간호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정부·여당이 갈등 중재와 합의 처리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라며 "오히려 거부권 행사 명분을 쌓기 위해 국민 분열을 선택했다. 국민통합의 길로 가야 할 정치 상황은 극단적 대치의 길로 가게 됐다"고 했다.

같은 당 최종윤 원내부대표는 "앞으로 국정 운영 기조로 소통 거부, 통합 거부, 협치 거부를 공식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국회까지도 국정 운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정치 본연의 '갈등 조정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부여당 책임론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윤 대통령은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했다"며 국회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간호법 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8개월 넘게 계류했다가 지난 2월에야 야당 주도로 소관 상임위를 통해 본회의에 부의됐다. 갈등이 예고된 민감한 입법을 여당이 손 놓고 있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간호법이 본회의를 통과하고 나서야 관련 직역 단체를 잇달아 만나 설득하고 야당과 중재안 협상에 나섰다.

대한간호협회는 16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약속을 파기한 윤 대령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대한간호협회 제공

윤 대통령이 의료계 한쪽 손을 들어주면서 간호계 반발에 따른 혼란도 예상된다. 간호사단체는 간호법 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의사단체가 주장하는 '의료기관 단독 개원' 우려가 전혀 없고, 오히려 의료체계가 발전할 것이라면서 재의결을 촉구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이하 간호법 범국본)와 공동으로 이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이 간호법을 제정하겠다는 약속은 증거와 기록이 차고 넘치는데도, 대통령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간호법 제정 약속과 공약을 파기한 것"이라며 "약속을 파기한 대통령에게 우리는 정치적 책임을 물을 것이다. 간호법을 파괴한 불의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총선기획단 활동을 통해 반드시 단죄하고 파면하는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간호법 제정안은 국회에 다시 공이 넘어갔다. 재의요구된 법안을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으로 재의결하면 법률로 확정된다. 민주당은 재투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이 115석인 상황에서 재의결 가능성은 희박하다.

당정은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해 지난달 25일 정부가 발표한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착실히 이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도 의료계의 '안정적인 변화'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간호사들의 요구에 저희가 귀를 막는 건 아니다"라면서 "현재 의료법체계에 조금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에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간호조무사 관련 부분, 통합 돌봄 정책 등 종합적으로 여야가 논의해서 의료법체계가 필요한 부분을 손질해 보자는 입장"이라며 "여야 간 협상이 시작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거대 야당이 쟁점 입법을 밀어붙이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반복되면서 소통과 협치가 실종됐다는 지적에 대해선 "안타깝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일방적으로 통과된 법안에 대해선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원칙을 밝히면서 "개별 법에 따라 특수성을 감안해 앞으로도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unon89@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Copyright © 더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