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명 '노숙 투쟁', 서울광장·덕수궁 앞 쿨쿨…"화장실은 어디"

16일 오후 22시쯤 서울 광장에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모여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사실 내일 아침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하철역 화장실을 써야 할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16일 오후 10시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광장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충북지부, 전남광주지부 등 지역 지부 조합원들이 스티로폼 은박매트와 업소용 포장비닐을 깔고 청계천 산책로가 내려다보이는 청계천로 양쪽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경찰추산 2만3000여명, 주최측 추산 2만5000여명의 조합원이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서울광장, 청계광장, 덕수궁길 등에서 노숙 농성을 진행했다.

건설노조는 오후 2시부터 '건설노조 탄압 중단 강압수사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건설노조는 이달 초 분신한 양회동 지부장을 추모하며 오후 7시부터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주최한 '10·29 이태원 참사 200일 추모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양회동 민주노총 강원건설지부 3지부장은 지난 1일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공갈, 업무방해 혐의 등혐 의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분신해 숨졌다.

한시간쯤 진행된 촛불문화제가 끝난 20시10분쯤 건설노조는 행진신고 가처분 인용에 따라 2000여명이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구 삼각지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 인원을 제외한 2만명 이상의 조합원은 세종대로 일대에 남아 은박매트와 업소용 포장비닐을 깔고 덮으며 잠자리를 마련했다.

16일 오후 22시쯤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한편에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업소용 포장비닐을 덮고 자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이날 22시쯤 중구 무교로 인근에서 만난 광주전남지부 노조원 정모씨는 "덮고 잘 비닐과 깔개가 굉장히 부족하다"며 "광주전남지부에서만 1000여명 이상 올라왔고 지부아래 분회만 수십개"라며 "저녁은 도시락으로 해결했고 내일 아침도 도시락으로 먹을 예정인데 화장실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충북지부 조합원들은 청계광장 앞에 자리를 폈다. 한 충북지부 여성 조합원은 "여성 조합원들은 따로 실내에 숙소를 잡거나 자리를 마련해 남성과 공간을 구분했다"며 "오늘 집회 참가자 중 여성은 100명 중 2명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청계광장 등 노숙을 하는 일부 지역 외로 못 나가도록 통제하고 화장실도 마련되지 않아 불편하다"고 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화장실을 찾겠다며 산책로로 진입하려 하기도 했지만 서울시 관계자가 제지했다. 이날 서울시는 청계광장에서 청계천 산책로로 이어지는 입구에 직원을 배치해 집회에 참여한 노조원의 산책로 출입을 막았다.

16일 오후 21시40분쯤 서울광장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숙을 준비하기 위해 스티로폼 단열매트를 분배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서울 은평구 연신내에 거주 중인 시민 이모씨(28)는 청계천로 양쪽에 잠자리를 마련한 건설노조원들을 보며 "날씨가 따뜻해 자기엔 좋을 것 같다"며 "시청 앞 광장은 약간 서울재즈페스티벌 느낌도 난다"고 말했다.

경찰은 6000여 명에 달하는 110개의 경찰부대를 집회 현장과 인근에 배치했다. 경찰은 이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2조에 따라 교통 소통을 위해 건설노조 집회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17시 이후부터는 불법집회"라며 "야간 대규모 인원이 노숙하기 때문에 도심권에 투입한 60~70여개 기동대 중 일부 경력을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일 아침에는 건설노조 측에서도 어떻게 할지 정해 놓지 않고 있어서 경찰이 현장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은 내일(17일) 오후에도 숭례문~동화면세점 구간에서 4만명이 집회를 연 후 전쟁기념관, 서울대병원, 경찰청 등으로 행진을 할 계획이다.

16일 오후 21시 40분쯤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인근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숙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16일 오후 22시쯤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주변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술을 마시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정세진 기자 seji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