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기도와 위로

2023. 5. 16.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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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은 어떠냐고, 피곤하지는 않느냐고, 언니는 전화로 다정스럽게 이것저것 물었다.

옛날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언니도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가족을 위해 정성껏 기도를 드린 것이다.

한데 언니가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새벽에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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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은 어떠냐고, 피곤하지는 않느냐고, 언니는 전화로 다정스럽게 이것저것 물었다. 한데 안부를 묻는 언니의 음성이 예사롭지 않았다. 다른 때 같지 않게 목소리에 힘도 없고 연신 기침을 해대는 모양이 아무래도 어딘가 탈이 난 듯 싶었다. 무슨 기침을 그리 하냐는 내 물음에 언니는 한사코 괜찮다고만 했다. 대답하는 도중에도 언니의 기침은 그칠 줄 몰랐다. 추궁에 가까운 내 물음에 언니는 마지못해 감기에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그 말에 걱정부터 앞섰다. 작년, 언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내일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되게 아팠던 터라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겨우 코로나19에서 벗어났던 언니는 다시 아픈 동생과 가족들을 위해 새벽기도를 다녔던 모양이다.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춥고 어둡다는데, 언니는 개의치 않고 매일 그 어둠을 헤치고 집을 나섰던 것이다. 약해졌던 몸이 미처 회복되기도 전에 무리를 했으니 당연히 탈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타인을 걱정하기 전에 자신 몸부터 챙겼으면 좋았으련만 언니는 한 집안의 맏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의무와 정성을 다하려 노력했다. 옛날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언니도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가족을 위해 정성껏 기도를 드린 것이다.

한데 언니가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새벽에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또 있었다. 얼마 전에 형부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로 거액의 사기를 당한 뒤 그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이다. 아파트 한 채 값을 훌쩍 넘기는 그 액수는 노부부의 안정된 노후는 물론이고 지난 세월의 수고를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린 거나 다름없었다. 언니는 그런 형부를 책망하고 원망하기보다는 매일 새벽 아픈 몸을 일으켜 세워 교회로 향했고, 실의에 빠져 있는 형부와, 아픈 동생과,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조카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나는 여전히 전화기 속에서 밭은 기침을 하는 언니에게 잘 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빨리 낫는다고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언니가 자신을 위해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가까이 살았더라면 언니와 함께 나가 맛있는 것을 먹고 언니가 입맛을 다실 만한 것들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왔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고 미안했다.

나는 생각 끝에 우리 땅에서 재배하고 수확한 검정깨를 온라인 상점에서 주문했다. 이미 여러 공정을 거쳐 분말형태로 포장된 제품이 있었지만 나는 생물 그대로의 통깨를 주문했다. 예전 같으면 시간도 절약할 겸 완제품을 사다가 손쉽게 준비했을 텐데 언니에게 보낼 먹을거리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잘 씻어서 타지 않게 볶고, 곱게 가루 내는 그 과정이 내게는 또 다른 기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모쪼록 언니가 그 흑임자죽을 먹고 힘을 차렸으면 좋겠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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