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전기요금에 정치 잣대 들이대지 마라
원료비 연동제 통해 정치권 압력 배제해야
15일 정부가 2분기 전기요금 kWh(킬로와트시)당 8원 인상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44조원을 넘어선 한국전력(한전)의 2021년부터 누적된 적자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한전 경영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2026년까지 누적 적자 해소를 위해 올해 kWh당 51.6원의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 매 분기 전기요금을 kWh당 13원 인상해야 하지만, 2분기가 절반이나 지난 시점에 겨우 8원 인상했을 뿐이다.
이를 반영해 전력도매가격도 지난해 kWh당 196.65원으로 전년 대비 108% 상승했다. 반면 전기 판매 단가는 kWh당 120.51원으로 전년 대비 11% 상승에 그쳤다. kWh당 76.14원의 손해를 보는 역마진 구조가 된 것이다. 이것이 2022년 한전이 32조6000억원 적자를 낸 가장 큰 이유다. 지난해 에너지 가격 급등의 영향으로 올해도 이런 역마진 구조는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1분기 전기요금을 kWh당 13.1원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전은 여전히 kWh당 90.48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 그 결과 1분기에도 한전은 6조2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현재 전기요금은 전기사업자가 설계하고, 산업통상자원부가 기획재정부와 협의하여 이를 승인한다. 이 과정에서 당정협의를 통해 여당이 전기요금 결정에 개입한다.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여당이 전기요금 인상을 보류하는 사이 역마진 구조인 한전의 적자는 증가했고, 이를 한전채 발행을 통해 메꿔 이자 부담 역시 더 늘어났다. 또한 한전채 발행액이 이미 발행한도의 74% 이르러 추가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경제 내 재화들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만 억제하면 소비자들은 전기가 상대적으로 싸다고 느낀다. 따라서 다른 재화들에 비해 전기에 대한 소비는 상대적으로 덜 줄이게 된다. 이런 소비패턴의 변화가 냉방 수요를 충분히 감소시키지 못해 전기 사용량이 증가하는 7, 8월에 냉방비 폭탄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전기요금 인상 억제는 당장은 소비자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착시현상일 뿐이다.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지 않으면 한전의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한데, 이는 외식 등 서비스산업의 생산비용을 증가시켜 서비스물가를 추가로 상승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는 소비자물가 하락 속도를 둔화시켜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시점을 늦춘다. 결국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억제는 소비자와 기업들이 고물가, 고금리의 고통을 겪는 기간을 늘릴 뿐이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원료비 상승을 반영해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것뿐이다. 정부가 정치권의 영향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다면 원료비에 연동해 전기 판매 단가를 자동적으로 조정하는 원료비 연동제를 제도화해 전기요금 결정에서 정치권의 압력을 배제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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