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먼 방북쇼 기획 등 소셜미디어에 의존, 美 온라인 뉴스 또 파산했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3. 5. 1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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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즈피드 이어 바이스도 몰락
객관성 포기한 게릴라형 ‘곤조 저널리즘’ 표방.. “MZ 제일 잘아는 언론”
북한, IS 등에 거액 건네고 단독취재... 사내 성폭력 구설도
인스타-유튜브용 뉴스 유통에 집중하다 빅테크 수익 독점에 밀려
'뉴미디어의 총아'로 불렸던 미국 바이스 미디어의 LA 사무실 간판 모습. 바이스는 15일 본사가 있는 뉴욕에서 파산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불과 5~6년전 기업가치가 한화 6조원이 넘었던 이 초대형 종합 미디어그룹은 현재 거론되는 매각 인수가가 3000억원 정도로 가치가 거의 증발하다시피했다. /AP 연합뉴스

한때 ‘21세기 뉴미디어의 총아’로 불린 미국 온라인 언론사 바이스 미디어(Vice Media·이하 ‘바이스’)가 15일(현지 시각) 뉴욕 남부연방파산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내고 회사 매각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한때 전 세계 온라인 방문자 1위를 기록했던 미국 버즈피드(BuzzFeed)의 뉴스 부문이 폐업한 지 한 달도 안 돼, 그보다 규모가 3~4배 큰 온라인 미디어가 또 무너진 것이다. 소셜미디어 붐에 올라타 급성장한 이런 디지털 매체들은 한때 정통 언론(legacy media)의 영역을 잠식하며 ‘미디어 세대교체’를 선언했지만 소셜미디어에 대한 지나친 의존 등으로 빠르게 한계에 부딪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스는 5~6년 전만 해도 기업 가치가 57억달러(약 7조6000억원)에 달한 초대형 종합 미디어 기업이었다. 동영상·팟캐스트 뉴스부터 TV, 영화, 도서·잡지 출판, 레코드 레이블, 여성 채널 등 다양한 계열사를 거느렸다. 디즈니와 폭스뉴스 등이 수억달러씩 투자했고 신문에 기반한 워싱턴포스트, 파이낸셜타임스의 가치를 능가했다. 그러나 파산 선언을 한 이날 포트리스 인베스트먼트와 소로스 펀드 등으로 구성된 채권자 컨소시엄이 제안한 인수 가격은 전성기 가치의 4%도 안 되는 2억2500만달러(약 3000억원)였다.

캐나다 몬트리올 마약재활센터 출신으로 언더그라운드 문화 무가지를 만들다 뉴욕으로 옮겨 '바이스'를 창업한 셰인 스미스(왼쪽)와 낸시 두벅 바이스 CEO가 한 행사에서 함께 한 모습. 2017년 바이스 사내 성폭력 고발 후 여성인 두벅을 새 얼굴로 내세웠다. /바이스 미디어

바이스 뉴스는 ‘동영상 미디어’에 가까웠다. 콘텐츠 생산부터 유통까지, 스마트폰에서 트위터·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로 세상을 보고 소통하는 10~20대를 열광시키게 설계됐다. 기성 언론이 정면으로 다루기를 주저하거나 과소평가했던 기발한 주제나 현장을 집중적으로 찾았다. 이른바 ‘젊은이의 시대정신’을 발굴, 기자·PD들의 개인적 체험과 느낌을 1인칭 시점으로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바이스는 “MZ세대를 우리처럼 잘 이해하는 언론은 없다”며 “우리는 (대표적인 케이블 뉴스, 스포츠 채널인) CNN, ESPN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바이스의 전신은 1990년대 캐나다에서 마약 중독과 교도소 생활, 언더그라운드 음악 등을 다뤘던 무가지 ‘몬트리올의 소리’다. 2000년을 전후해 ‘섹스·마약 관련 범죄(vice)’를 뜻하는 회사명으로 바꾸고 뉴욕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바이스는 20세기 글쓰기의 한 사조였던 ‘곤조(gonzo) 저널리즘’의 대표 주자로 통했다. 곤조 저널리즘은 기자 개인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취재 대상에 밀착·동화한 체험을 기록하는 게릴라적 글쓰기를 지향했다. 편집·보도국 차원에서 팩트의 무게를 따지는 언론의 원칙과는 일부러 거리를 뒀다. ‘불간섭’을 앞세웠지만, 동시에 중립성·객관성과도 멀어졌다.

2013년 2월 전직 미 프로농구(NBA) 스타 데니스 로드먼(오른쪽)이 평양에서 열린 미국과 북한 선수들의 농구경기를 김정은(왼쪽) 북한 노동당 제1비서와 함께 관전하고 있다. 이 농구쇼는 미 뉴욕 소재 디지털 미디어인 바이스가 단독 기획한 것으로, 북한 정권에 거액의 달러를 건네고 방북 취재권을 구매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사진도 바이스가 촬영해 미 AP에 판매했고, HBO 방송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팔았다. /AP 뉴시스

바이스의 ‘곤조 저널리즘’이 거대 자본과 만나 내놓은 대표작이 2013년 미 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먼의 방북(訪北) 기획이었다. 당시 세계 언론 중 유일하게 평양 핵심부에 로드먼 농구팀을 데리고 들어갔다. 3대 세습을 마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로드먼과 함께 농구 묘기쇼를 관람하고 환영 만찬을 하는 행사를 밀착 취재했다. 이 대가로 북한에 상당한 액수의 달러가 건네진 것으로 알려졌다. 독재자나 범죄자에게 돈을 주고 ‘취재 권한’을 사지 않는다는 정통 언론의 불문율을 깬 것이다. 바이스는 이 방북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HBO 방송에 팔았다. 2014년엔 당시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테러 단체 IS(Islamic State·이슬람국가)와 3주간 동행 취재한 5부작 다큐를 유튜브에 올려 화제를 모았는데 이때도 IS에 큰 대가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17년 바이스 창업자 셰인 스미스를 비롯한 임직원 수십명이 사내에서 자유분방한 문화를 앞세워 수년간 성폭력을 저질러왔다는 뉴욕타임스(NYT) 등의 보도가 잇따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돌연 알고리즘을 바꿔 콘텐츠 공급자의 수익을 잠식하자 위기에 빠졌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모인 수천만 독자들로부터 나온 광고 수익은 구글·페이스북 등이 더 가져갔다. 앞서 뉴스 부문을 폐업한 버즈피드 역시 ‘낚시 제목’ 등 시류에 편승한 콘텐츠의 한계와 지나친 소셜미디어 의존 등이 발목을 잡았다.

미국의 대표적인 빅테크들. 신생 디지털 미디어들이 소셜미디어 특화 컨텐츠를 만들어 수익을 내며 정통 언론을 위협했지만, 결국 이들이 모아놓은 독자들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광고 수익 등을 가져가는 것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와 구글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버즈피드, 복스, 바이스 미디어 등 유명 디지털 매체들이 잇따라 쓰러지고 있다. /연합뉴스

뉴욕에 기반한 한 온라인 매체 운영자는 NYT에 “회사 성장과 독자 확보를 소셜미디어에만 의존한 언론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제 모두가 알게 됐다”고 했다.

☞곤조 저널리즘(gonzo journalism)

객관적 사실을 중립적으로 보도하는 언론 원칙에서 벗어나 주관을 앞세우는 다소 독단적인 보도 혹은 취재원과 대가를 주고받는 등 무리한 취재 행태를 뜻한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곤조’가 어리석음을 뜻하는 이탈리아어(gonzo)나 미련하다는 뜻의 스페인어(ganso)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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