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 배터리’ 견제에도…‘한·중 소재 동맹’이 늘어나는 이유

김상범 기자 2023. 5. 16.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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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재의 기초 재료인 ‘전구체’
K배터리 업계, 90% 중국서 수입
중 소재 기업도 미국 진출하려면
미 FTA 체결국 한국서 가공 필요

전기자동차 산업에서 중국의 존재감을 지우려는 목적의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오히려 한국과 중국의 배터리 업계 간 협력을 부채질하고 있다.

IRA를 따르고 싶은 한국 업체라도 전구체 같은 2차전지 핵심 소재에서 ‘차이나 파워’를 완전히 털어내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중국 배터리 소재 업체 또한 IRA를 우회해 미국 시장에 접근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한국을 필요로 한다. 그 결과 한·중이 합작한 생산시설이 국내에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사실상 ‘IRA의 역설’이다.

한·중 협력 메카로 뜬 새만금·포항
전구체 합작공장 설립 소식 잇따라

1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배터리 유관기업들과 중국의 배터리 소재 제조사들은 전북 새만금 산업단지 일대에 전구체 생산시설을 짓는 내용의 협약을 잇달아 맺었다. 지난달 17일 LG화학과 화유코발트가 군산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 배터리용 전구체 합작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화유코발트는 중국 1위 코발트 생산업체다. 이들은 올해 말 착공해 2026년까지 1차로 연간 5만t 생산능력을 구축하고, 향후 2차로 5만t의 생산설비를 증설해 연간 10만t 규모의 전구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전구체 10만t은 전기차 100만여대를 양산할 수 있는 양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 3월 SK온도 양극재 기업인 에코프로, 중국 전구체 기업 거린메이(GEM)와 합작회사를 설립하겠다고 했다. GEM은 황산니켈과 전구체 생산에 강점을 지닌 기업이다. 공장은 최대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 짓는다.

경북 포항도 최근 한·중 기업 협력의 ‘메카’로 떠오르는 중이다. 포스코퓨처엠(옛 포스코케미칼)은 지난 3일 화유코발트와 합작사를 설립, 약 1조2000억원을 투자해 배터리용 전구체와 고순도 니켈 원료 생산라인을 건설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공장은 2027년까지 포항 블루밸리산단에 들어설 예정이다. 세계 최대 전구체 업체인 중국 CNGR도 지난해 11월 포항 영일만 산업단지에 연산 10만t 규모의 전구체 공장을 짓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배터리는 양극재·음극재·전해질·분리막을 조합해 만든다. 전구체란 화학반응이 나기 전 단계 물질을 일컫는 용어로, 배터리용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만들기 위한 기초 재료다. 니켈·코발트·망간 등의 원료를 섞어 만든 화합물이다.

전구체에 리튬을 더하면 양극재가 된다. 배터리 용량·전압을 결정짓는 양극재는 배터리 원가의 50%를 차지하며, 전구체는 양극재 가격의 70% 비중을 이룬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전구체의 약 90%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중국산의 경제성을 따라잡을 만한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니켈·망간·코발트 등 여러 재료를 혼합해 만드는 특수성 때문에, 해당 원료들의 공급망을 폭넓게 확보하고 있는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를 뿌리치기 어렵다.

반대로 중국 기업들에도 한국 진출은 절실하다. IRA로 중국 배터리 유관기업들이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미국에 직접 뿌리내릴 길은 사실상 막혔다. IRA가 미국 또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추출·처리한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한 배터리에만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주도록 했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해 12월 미 재무부가 발표한 세부 지침은 미국과 FTA를 맺지 않은 국가에서 캐낸 광물이라도 FTA 체결국에서의 가공을 거쳐 50%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면, FTA 체결국에서 생산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한국은 미국과의 FTA 체결국이다.

한·중 합작공장에서 생산한 전구체를 양극재로 2차 가공해 미국으로 수출하면 IRA 보조금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미국 시장 진출이 꼭 필요한 중국 소재업계에 한국이 미국으로 건너가는 ‘전진기지’로 떠오른 것이다.

늘어나는 한·중 협력은 유동적인 글로벌 정세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 성격도 있다. 국내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중관계가 굉장히 악화될 경우 중국에서 생산한 전구체가 (미국과의 동맹국인) 한국으로 수입되지 않을 수 있다. 수입이 막히지 않더라도 핵심 소재 가격이 치솟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며 “전구체 생산시설 지분을 일정량 획득하면 가격 경쟁력 및 물량 확보 측면에서의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걷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IRA의 ‘해외 우려기관’ 규정 변수
중 기업 대다수 포함 전망 지배적
국내 업체는 지분율 조율로 대응

IRA의 ‘해외 우려기관(FEOC)’ 규정은 변수다. IRA는 2024년 이후부터 FEOC에서 생산한 배터리 부품·광물이 들어간 전기차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했다. 아직 구체적인 FEOC 리스트나 관련 지침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IRA 법안의 당초 성격을 생각하면 중국 기업이 대다수 포함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내 기업들은 합작법인에서 중국의 기여도, 즉 지분율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응하려 하고 있다. 한 소재업체 관계자는 “합작법인의 최대 지분을 누가 갖느냐에 따라 중국 자본이 껴 있더라도, FEOC로 지정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한국 업체가 지분율 50% 이상을 보유한다면 안전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업계 시각”이라고 전했다.

미국 정부의 향후 움직임에 따라, 한국 기업이 합작법인 지분을 추가 인수하는 등 방안을 통해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영석 LG화학 첨단소재 경영전략부문 담당은 지난달 콘퍼런스콜에서 “만약 중국이 (미국 IRA가 규정하는) FEOC로 지정되고, 합작사 지분을 완전 배제해야 한다면 LG화학이 지분을 전량 인수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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