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밖의 수익률에 스스로 눈감은 투자자들[윤지호의 투자, 함께 고민하시죠]
세상에는 다양한 금융사기가 있다. 보이스피싱, 보험사기, 전세사기, 주가조작사기 등 인간의 약한 심성을 꼬드기는 사기꾼은 사회 곳곳에 출몰하고, 그들이 쳐 놓은 덫에 많은 사람들이 걸려든다. 그중에서 피해대상이 광범위하고, 피해규모도 가장 클 수밖에 없는 것이 폰지사기이다. 1920년대 찰스 폰지의 우편사기에서 유래된 금융다단계 피라미드를 빗댄 용어인데, 한마디로 신규투자자의 자금이 지속 유입되어, 기존 투자자의 이익이 담보되는 사기를 총칭한다.
주식 폰지사기의 대표적 사례로 미국 메이도프 사건이 있다. 버나드 메이도프는 유태인 사회의 명망 있는 투자자였고, 그의 고객으로는 스티븐 스필버그, 모트 주거만 등이 활동하는 재단들이 있었다. 월가 주변이 아닌 중심인물이 벌인 금융사기 사건으로 당시 주가 조정 분위기와 맞물려 증시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규모가 클 뿐, 후속 투자자의 돈으로 앞서 투자자의 수익을 보장한 금융피라미드와 동일했다. 기부천사, 투자 천재로 불리던, 그들 가족은 자체가 사교계의 꽃이었다. 메이도프의 화려한 생활과 부에 현혹된 투자자들은 그에게 돈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 생각했지만, 메이도프의 투자는 실체가 없었다. 사기 행각이 드러난 후 650억달러(87조원)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2023년 4월24일, 투자자들의 비명 속에 한국에서도 메이도프 사건과 유사한 주식 폰지사기가 실체를 드러냈다. 램프의 요정처럼 나의 소망을 이뤄줬던 투자전문가 라덕연, 그를 만난 것만으로 행운을 잡았다고 믿어왔던 이들의 꿈이 악몽으로 바뀐 순간이다. 일단 그는 자본시장법상의 금지 사항인 통정매매라는 시세조종을 저질렀다. 이것만으로도 중범죄이지만, 더 큰 문제는 앞선 투자자의 수익을 보존하기 위해 신규자금 유치를 지속했다는 데 있다. 일부 투자자는 스스로 투자자를 유치해 공급하며 수당도 받았다는 보도도 있다. 주가조작보다 더 큰 피해를 야기한 폰지형 사기로 이 사건을 규정하는 이유이다. 들여다보면 라덕연의 사기행각은 메이도프 사건보다 더 악랄하다. 메이도프투자증권은 면허를 가진 맨해튼 3번가에 엄연히 실제 했던 금융회사였다. 반면에 라덕연의 투자회사는 투자 일임 면허가 없는 불법일임투자 컨설팅 기업에 불과하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무면허 불법업체에 스마트폰을 만들어 넘긴 투자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이 점점 커지는 이유는 계약을 맺지도 않고, 불법 컨설팅 기업에 투자 일임을 맡기면서 동시에 공인인증서까지 넘겼다는 데 있다. 사기꾼들은 이를 악용해 차액결제거래(CFD)와 신용거래까지 하면서 자금을 투입했다. 이 자금은 앞선 투자자들의 수익을 지켜내기 위한 불쏘시개로 활용했다. 상당수의 투자자들은 주식 투자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었고, 사기꾼들은 쉽게 이들을 속였을 것이고, 이를 통한 자금은 이제 투자자들의 눈물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에 모든 게 들어와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진과 동영상은 말할 것도 없고, 쇼핑, 여행, 금융 등 거래에 필요한 나의 신분증과 인증서가 이미 스마트폰에 내장되어 있다. 스마트폰 자체가 스스로를 입증하는 인감증명서가 된 지 오래다. 의사, 사업가 등 스스로 판단할 수 있고,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가진 이들이 왜 이러한 말도 안 되는 행동, 증권계좌 인증이 담긴 스마트폰을 넘겼을까? 더 이상한 것은 수익의 50%를 수수료로 지불했다는 데 있다. 운용에 대해, 관리와 성과보수를 받지만, 이런 비율로 수수료를 제안한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었다. 그럼에도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많은 투자자들은 더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 사기꾼들이 다른 계좌의 수익률을 보여줄 때, 스스로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그냥 돈만 벌고 싶었던 것이다. 사기꾼이 끼어든 약한 고리는 바로 여기였다. 투자도 상식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 상식 밖의 수익률, 상식 밖의 수탁행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제라도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연금술 같은 기적을 만드는 존재는 없다.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인 것은 없다. 얼마나 벌어줄 수 있느냐를 질문하기 전에, 내 투자 상태를 나는 알고 있는가에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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