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기대가설'로 노벨경제학상 수상…로버트 루카스 별세

2009년 방한했을 때의 고인 [촬영 진성철]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모든 경제행위자는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s)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오류가 없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형성한다'는 '합리적 기대가설'로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카스(Robert Emerson Lucas, Jr.) 미국 시카고대 명예교수가 15일 세상을 떠났다고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향년 85세.

1937년 9월 미국 워싱턴주 야키마에서 태어난 고인은 시카고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카네기멜런대 교수를 거쳐 1975년부터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시카고학파의 거두였던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의 수제자였던 고인은 '합리적 기대 가설'으로 케인스 이론을 비판했다.

당시 1970년대 세계 경제가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높아지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을 때였다. 중앙은행이 돈을 풀고, 정부가 대책을 쏟아내도 경기가 호전되지 않자 케인스학파는 당황했고,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이때 루카스는 "인간은 정부의 정책마저도 합리적으로 예측해 행동하기 때문에 당초 기대하는 정책효과를 얻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즉 전통적 경제모형에 따르면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물가를 올리면 실질 임금이 줄고, 이에 따라 기업은 고용을 늘리게 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물가가 오를 것을 예측하고 임금 인상 투쟁을 벌이면 기대했던 정책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은 1960년대 말 시작된 경기 불황을 막으려고 금리를 낮춰 돈을 풀고 민간 부문의 투자와 소비를 자극하려고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정부가 돈을 풀면 물가가 올라 구매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합리적인 예측으로 소비를 줄였고, 돈을 푸는 통화정책은 실업률과 물가를 동시에 상승시키는 부작용만 낳았다.

고인은 정부가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을 통해 시장에 미칠 수 있는 힘은 극히 미미할 수밖에 없다며 케인스주의 경제학을 비판하고, 정부의 개입보다는 기업과 개인의 자유로운 시장 활동을 강조하는 고전학파를 되살려냈다.

고인은 35세 때인 1972년 '기대와 화폐중립이론'이라는 논문으로 세계 경제학계를 뒤흔들었고, 1981년 논문 '경기순환이론 연구'를 냈다. 유명한 '루카스 비판(Lucas critique)'을 통해 1970년대 거시경제학 모형에 수학적·논리적 엄밀성이 없다고 지적했고, 거시경제학에 미시경제학의 방법론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스로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 사이의 괴리를 메우려고 일반균형에 시간 개념을 넣고, 불확실성의 확률까지 집어넣어 거시경제 모델을 만들었다. 이를 '동태확률 일반균형(DSGE)' 모델이라고 부른다. 내생적 성장이론 중 하나인 인적자본모형(human capital model)과 합리적 기대를 전제로 한 섬모형(islands model), 루카스 총공급함수(Lucas aggregate supply function), 화폐경기변동이론(MBC) 등도 제창했다.

고인은 자신이 주창한 인적자본모형에 부합하는 경제성장 국가로 한국을 높이 평가했고, 조하현 연세대 교수 등을 지도했다.

노벨경제학상 상금 절반을 이혼한 부인에게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처는 이혼서류에 고인이 1996년 이전에 노벨상을 받으면 상금 일부를 위자료로 받는다는 조항을 넣었고, 실제로 상금 절반을 가져갔다.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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