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하늘 아래 팩트는 둘일 수 없어요"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 2023. 5. 16. 21:5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고]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

동네 의원 환자 중 초진 환자 비중은 99%일까, 아니면 18.5%일까?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는 두 숫자가 모두 팩트일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에는 모두 팩트일 수 없는 숫자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동시에 등장하고 보도를 접하는 국민의 입에선 “도대체 뭐라는 거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99%라는 수치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운영하는 업체들이 모인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산출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주장한 숫자다. 반면 18.5%는 보건복지부가 코로나19 유행 기간 동네 의원에서 비대면 진료를 받았던 환자(코로나 환자 제외)를 분석한 결과다. 산출근거와 만성질환 환자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보건복지부 발표가 실제 초진 환자 비중에 가까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초진 환자 비중은 비대면 진료 정책 결정에서 중요한 숫자다. 초진 환자가 많지 않으면 비대면 진료를 시작하면서 굳이 무리해 초진까지 포함하지 않아도 돼서다. 하지만 언론은 이를 검증하지 않고 입장이 다른 의견처럼 보도하고 있다.

언론이 팩트를 확인하거나 검증하지 않고 그냥 보도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최근 소아청소년과 폐과 선언 관련 보도도 좋은 예다. 지난 3월29일 소아청소년과 의사회는 “지난 10년 간 소청과 의사들의 수입은 28% 줄었고”, “소청과의 유일한 수입원인 진료비는 30년째 동결”되어서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며 폐과를 선언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소아청소년과 의사회의 주장을 검증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인용 보도했다. 의료계의 대표적인 통계인 건강보험 진료비 통계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쉽게 검증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 개원의 소득은 2010년 약 1억3000만원에서 2019년 약 1억8000만원으로 1.4배 늘었다. 건강보험 진료비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소아청소년과 개원의 진료비는 코로나19로 2019년 대비 58% 수준으로 감소했다가 2022년에 147% 수준으로 다시 증가했다. 건강보험 수가(진료비 가격) 역시 건강보험공단과 공급자 단체가 협상을 통해 매년 2~3%씩 꾸준히 인상하니 진료비가 30년째 동결되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처음 알려진 통계가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언론이 계속해서 이를 팩트인 것처럼 보도하는 일도 적지 않다. 간호사의 취업률과 이직률에 대한 통계가 그 예다. 간호사 취업률은 간호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데 가장 중요한 통계다. 취업률이 낮으면 근로조건을 개선해 유휴 간호사를 취업하도록 해야 하고, 취업률이 높으면 간호사가 부족한 것이니 배출을 늘려야 한다. 간호사들은 간호협회 신고 자료를 근거로 취업률이 52%(2019년 기준)에 불과하니 간호사를 늘릴 것이 아니라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건강보험 가입자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간호사 취업률은 72%로 OECD 국가 평균 수준이다. 취업했지만 간호협회에 신고하지 않은 간호사가 약 8만 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2020년 병원간호사회는 자체 조사를 바탕으로 신규 간호사의 절반 가까이가 이직을 한다고 발표했다. 병원 근무 환경이 열악하니 간호사 배출을 늘려봐야 소용이 없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하지만 2021년 건강보험 가입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실제 신규 간호사의 이직률은 20.6%로 병원간호사회에서 발표한 이직률의 절반 이하 수준이었다. 2020년부터 보건복지부와 연구자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보다 정확한 간호사 취업률과 이직률을 발표하고 있지만, 간호사의 절반이 장롱면허이고 신규 간호사의 절반 가까이가 이직한다는 잘못된 통계를 인용한 언론 보도는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 언론 보도에는 ‘가짜 뉴스’가 넘쳐난다. 자기 집단에 유리하게 통계를 왜곡해도 언론이 검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무 말 대잔치’ 수준으로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도 언론은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보도한다. 언론이 가짜 뉴스를 진짜 뉴스로 만들어 주니 여러 이익집단도 더욱 더 과감하게 가짜 뉴스를 생산해낸다.

언론이 하루빨리 팩트를 검증하는 역량을 강화했으면 한다. 다양한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팩트는 합리적인 소통과 타협의 출발점이다. 언론이 팩트를 확인해줘야 이해당사자들 간 소통과 타협을 종용하는 국민 여론도 만들어진다. 이익집단의 아집과 독선, 그로 인한 우리 사회의 소모적인 갈등, 이 같은 갈등을 정쟁의 불쏘시개로 활용하는 정치 등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언론의 정확한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Copyright © 기자협회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