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침해’ 인정된 홀트 입양…국가 연대책임은 인정 안 해
재판부 ‘홀트 후견인 의무 위반’ 판단
입양인들 “희망” 유사 소송 잇따를 듯
법원이 국외 입양 알선기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건, 알선기관이 져야 할 ‘입양 아동의 보호 의무’를 처음으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부터 국외 입양을 주도하고 장려해왔던 국가의 연대책임은 묻지 않아 ‘반쪽짜리’ 판결이란 지적도 나온다.
1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재판장 박준민)는 신송혁(48·아담 크랩서)씨가 국가와 홀트아동복지회(홀트)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홀트가 미성년자인 국외 입양인들의 보호 역할을 소홀히 했다며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신씨는 미국 양부모에게 입양됐지만 두 차례 파양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시민권을 얻지 못했고, 결국 2016년 자녀들이 미국에 있는데도 한국으로 추방됐다.
재판부가 인정한 홀트의 의무 위반 행위는 두 가지다. 신씨는 미국으로 입양될 당시 IR-4 비자를 발급받았다. 입양 전 아동과 양부모 사이 이미 가족관계가 성립된 IR-3와 달리 IR-4는 미국에서 입양재판을 거쳐야 입양절차가 완료된다. 보통 양부모가 입양 아동을 직접 보지 않고 대리인을 통해 입양하는 경우 IR-4 비자가 발급된다. 이 비자는 아이에게는 한시적인 영주권을, 양부모에게는 2년간 임시양육권을 부여한다.
신씨는 미국에서 입양 재판을 거친 뒤 별도의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아야 했다. 재판부는 홀트가 신씨 양부모에게 ‘신씨의 시민권 취득 절차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있었다고 봤다. 하지만 홀트는 신씨가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어떠한 후견직무도 수행하지 않았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홀트에게 신씨가 국적을 제대로 취득했는지 확인했어야 할 의무도 인정했다.
입양이 완료된 뒤 아동이 잘 지내는지 점검할 의무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홀트의 입양 아동에 대한 후견인 의무는 신씨의 입양재판 종료로 입양이 완료되는 순간 종료된다고 판단했다.
국가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존 입양 제도나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대응에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공무원들이 고의나 과실로 홀트에 대한 감독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신씨가 한국으로 강제추방되면서 손해 발생이 현실적인 것이 됐고, 이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라며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주장도 배척했다. 신씨는 2016년 추방됐고, 2019년 소를 제기했다.
신씨의 대리인인 김수정 변호사는 재판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어 “불법 해외 입양을 주도해 관리하고 계획·용인한 국가 책임이 인정되지 않아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판결과 무관하게 국가가 신씨에게 먼저 사과하고 신씨가 다시 자란 곳으로 돌아가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원이 국외 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등을 처음으로 인정하면서 유사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1974년 덴마크로 입양됐다 2002년 한국에 정착한 국외 입양인 한분영씨는 이날 <한겨레>에 “이번 판결은 많은 해외 입양인들에게 희망이 됐다. 더 많은 소송 가능성을 열어줬다”며 “국외 입양 관련 기록들이 최근에야 모이고 있는데, 이번 판결을 보니 입양인들이 (소송을)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국외 입양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를 밝혀달라며 진실 규명을 신청한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KRG) 공동대표 페테르 묄레르 변호사는 “그동안 어렵게 산 (국외 입양인) 친구들에게 좋은 소식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기준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관련 집계를 시작한 1958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외로 입양된 아동 24만9959명 가운데 국외로 입양된 아동은 16만8427명으로 전체의 67.4%에 해당한다. 전체 국외 입양 아동 가운데 대부분인 16만3696명은 2010년 이전에 입양됐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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