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역사 위스키 5개국 뿐···잘 나가는 'K위스키' 이제 시작이죠"
술이 좋아 시작한 양조비법 탐구
무작정 떠난 스코틀랜드선 '퇴짜'
日 위스키증류소서 연수기회 잡아
제조 노하우 등 독학●식견 넓혀
한국인 최초 싱글몰트 선봬 인기
사계절 한국, 숙성 속도 빨라 강점
내년 '3년 숙성 위스키' 정식 출시
사업가보다는 장인으로 남고 싶어
“위스키를 좋아하는 마음과 사명감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김창수위스키가 나중에 크게 번창하더라도 사업가보다는 위스키를 잘 만드는 장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국내 위스키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K위스키의 아버지’ 김창수 김창수위스키 대표를 16일 경기 김포에 위치한 증류소를 찾아가 직접 만났다. 김창수위스키는 위스키 양조 모든 과정을 한국에서 한국인이 해내는 ‘유일한’ 주류 기업이다. 김 대표는 이날도 작업복 차림으로 직접 증류소 내부 설비를 매만지고 있었다. 김 대표는 “오늘 만든 위스키는 3년 뒤에나 팔 수 있기 때문에 오늘 만들면서 드는 비용은 그대로 빚이 된다”며 “한 달에 수천만 원의 운영 비용이 드는데 돈을 아끼기 위해 설비를 직접 수리해가며 일주일에 절반을 이곳에서 밤을 새운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의 표정만큼은 당당하고 밝았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향해 매일 전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날 인터뷰에서 요즘 젊은층을 중심으로 뜨거운 위스키 인기가 앞으로 계속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1분기 위스키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78.2% 폭증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김 대표는 “고급주로 분류되는 위스키는 기본적으로 그 나라의 경제 수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위스키 인기가 높아진 건 코로나19로 ‘혼술’ 문화가 확산된 영향도 있지만 더 크게 보면 한국 경제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뜨거워진 위스키 인기 덕에 김 대표도 더 유명해졌다. 수입산 위스키에만 익숙하던 국내 소비자들은 ‘우리나라도 위스키 만든다’는 김 대표의 자필이 적힌 위스키에 열광했다. 지난해 출시된 김창수위스키 336병은 열흘 만에 완판됐고 대형마트에서 20만 원대 거래되던 가격은 리셀가가 최대 200만 원대까지 뛰었다. 김 대표는 “1990년대에도 위스키 붐이 크게 인 적이 있지만 IMF 금융위기로 기세가 꺾였다”며 “지금은 당시보다 경제 수준이 좋기 때문에 위스키 열풍이 꽤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위스키 사랑은 스무 살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도 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맥주·와인·증류주·전통주 등 다양한 종류의 술을 탐구했다. 맥주와 전통주를 직접 제조해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피트’ 계열의 ‘라프로익’ 위스키를 접하게 되고 위스키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막상 취업 시장에 문을 두드려보니 술과 관련된 직종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중국어 전공을 살려 술과는 무관한 영업직으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갈망을 크게 느끼고 퇴사했다. 이후 술과 관련된 일을 찾아 바텐더, 판매·수입·유통 등의 직종을 전전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술’ 그 자체보다는 술과 관련된 ‘사업’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막상 해보니 술보다는 마케팅이나 판매·유통 등 일반 직장인들이 하는 일과 비슷했다”며 “잠깐 몸담은 위스키 수입 업체에서 절세를 위한 ‘원가 후려치기’, 본사의 배당금 폭리 등 한국 위스키 산업의 어두운 면을 접하니 직접 술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14년 28세의 나이에 무작정 위스키의 본고장 스코틀랜드로 떠났다. 수중에는 그동안 모은 돈과 퇴직금을 합해 1000만 원 남짓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양조장 102곳을 돌며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비자 문제 등으로 모두 거절당했다. 김 대표는 “당시에도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산업은 모두 대기업화돼 있었는데 한국으로 치면 삼성전자에 찾아가 무작정 일을 시켜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모했다”고 회상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는 10개월 만에 귀국을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운명처럼 스코틀랜드에서의 마지막 날 한 위스키 바에서 일본 지치부 증류소 직원을 만났다. 그와 인연을 쌓은 김 대표는 한국에서도 연락을 계속하며 위스키 제조 노하우를 공유했다. 그러던 중 일본 NHK방송 서울지국에서 취재 요청이 왔다. 김 대표를 한국의 ‘맛상’으로 촬영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다케쓰루 마사타카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가 대히트를 치면서 위스키 열풍이 크게 일고 있었다. NHK 취재 덕분에 그는 지치부 증류소 연수 기회를 얻었고 이 경험은 훗날 증류소를 차리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됐다.
김 대표는 10여년간 위스키 경험을 쌓은 끝에 2020년 7월 김포에 ‘김창수위스키 증류소’를 열었다. 그리고 2년 뒤 한국인이 최초로 만든 싱글몰트를 내놓는다. 김 대표는 “한국은 스코틀랜드보다 사계절이 뚜렷해 상대적으로 숙성 속도가 빠르다”며 “기후 환경 측면에서 한국은 큰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증류소에는 200여 개의 캐스크가 즐비해 있다. 모두 김 대표와 그의 친구가 손수 재료를 구입하고 증류·발효해 만들어낸 위스키다. 그는 내년에 ‘3년 숙성’ 위스키를 정식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일본은 위스키 생산 역사가 100년도 넘었어요. 위스키 역사가 100년이 넘은 곳은 스코틀랜드·아일랜드·미국·캐나다·일본 5개 국가밖에 안 돼요. 한국은 이제 시작입니다.”
김포=강동헌 기자 kaaangs10@sedaily.com김포=오승현 기자 story@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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