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 아닌 ‘대치’로 법안 폐기 소모전…피해는 국민 몫

조미덥·문광호 기자 2023. 5. 16. 21:1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야당 단독 처리 → 거부권’ 반복…사회적 갈등은 그대로
전세사기 특별법도 난항…여당 ‘윤심 눈치’ 협상에 한계
총선 앞둔 결집 전략도…“윤 대통령이 야당 만나 풀어야”
대통령은 강행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20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야당은 반발하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발표할 즈음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는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야당 단독으로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협치가 사라지고 강행과 거부만 있는 한국 정치의 민낯이었다. 여야가 이렇게 ‘힘 대 힘’으로 맞서다 법안이 폐기되면 사회적 갈등은 치유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펼쳐지는 여야의 소모전에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여야는 합의보다 서로가 가진 힘을 최대치로 사용하는 ‘완력 정치’를 펴왔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부터 여야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야당 단독 상임위 통과→본회의 직회부→여당 반대 속 본회의 통과→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가 반복됐다. 야당은 강행 처리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정부·여당은 이렇다 할 중재·절충안을 내놓지 못하고 반대만 하다 대통령 거부권으로 맞서는 것이다.

지난달 양곡관리법이 이 과정을 거친 후 재의에서 부결돼 폐기됐다. 간호법도 이달 중 재의에 부쳐졌다 폐기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야당 단독으로 상임위 문턱을 넘은 방송법과 ‘노란봉투법’도 여권에서 공공연하게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

이날 상임위 문턱을 넘은 학자금 상환 특별법도 이러한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이례적이어야 할 다수당 단독 처리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일상화되는 모습이다.

전세사기특별법처럼 다수 피해자에게 시급한 지원이 필요해 여야 모두 제정 필요성에 공감한 법안도 쉽게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 여야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소위에서 지난 1일부터 보름 넘게 협의를 했지만 이날도 피해 구제 범위를 넓히려는 야당과 그에 신중한 정부·여당이 맞서면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거대 양당은 이렇게 된 책임을 서로에게 묻는다. 국민의힘의 한 원내 지도부 인사는 이날 “민주당이 우리가 합의할 수 없는 것들을 내놓고 거부권을 행사하게 해 독선적인 정부 이미지를 만들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에서는 “집권 여당이 먼저 합의할 만한 안들을 내놔야 논의를 할 수 있는데 그럴 의지가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힘이 없지만 양보하지 않는 여당과 힘을 믿고 버티는 야당의 역학 관계가 바탕이 되고 있다. 여당은 협상 주도권을 쥐고 양보를 하면서 합의를 이끌어야 하지만 현재 여당은 대통령실의 강경한 처지를 대변하다 보니 자율성 있는 협상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예산안이나 이태원 핼러윈 참사 국정조사 등에서 여당 원내 지도부는 대통령실에 막혀 협상을 틀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1년이 넘도록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와 원내대표 중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민주당 역시 끈기 있게 합의를 시도하기보다 다수 의석에 의존해 강행 처리를 선택하는 일이 반복됐다.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통화에서 “간호법은 여야가 충분히 협의해서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법안인데도 마주 오는 열차처럼 강행과 거부를 하면서 정치가 아닌 감정싸움을 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가파른 대치의 피해는 결국 서민들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그는 “총선을 겨냥해 지지층 대 지지층 결집의 대치가 이뤄지고 있다”며 “(대선에서 시작된 싸움을) 총선에서 최후의 승부를 보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결국 윤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를 만나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협치로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는 지적이 여당에서도 나온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서 민생 법안을 과감하게 직접 해결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마음이고 국민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조미덥·문광호 기자 zorr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